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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 Jun 05. 2021

엄마가 한창 필요한 나이 서른

그리고 바다뱀자리.



<언나>는 강원도 사투리로, 갓난아기라는 뜻이다. 엄마는 내가 서른 가까이 나이를 먹을 때까지 주위에 나를 “우리 언나”라고 소개했다. 그러면 대개 사람들은 이렇게 큰 애가 어딨냐며 웃었다.


요즘은 삶의 방식이 굉장히 다양해졌지만 예전으로 치자면 서른여섯은 사회 정서나, 신체적으로도 아이를 갖기에 늦은 나이였다. 스물 초반에 언니와 오빠를 낳고 엄마는 서른여섯에 늦둥이로 나를 낳았다. 그때부터 나는 우리 집의 유일한 언나가 되었다. 그녀의 거친 삶의 여정을 함께 하며 나는 철이 빨리 들어갔고, 언나라는 호칭이 어색하도록 너무나 무뚝뚝한 딸이었다.





서울에서 사랑니를 빼고 온 다음 날이었다. 짧지 않은 여행에서 비롯된 피로와 사랑니를 뺀 자리의 허전함으로 몸 상태가 영 좋지 못했다. 1년에 한두 번은 꼭 크게 아프던 나였지만, 시골에 온 뒤 신기하게도 정말 감기 한 번을 안 걸렸었는데, 이런 부자연스러운 몸의 감각이 참 오랜만이다. 억지로 일어나서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강아지 밥을 챙겼다. 입맛도 없는데 약을 먹는다고 짜파구리를 끓여 달걀 반숙을 얹어 야무지게 먹으면서도 별안간 내가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플 때 밥을 해 줄 사람이 아니라, 밥 먹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고 머리카락을 만져줄 사람이 필요한 날이었다. 잔소리 없이도 약 먹는다고 끼니를 알아서 챙기고 항생제와 위장보호제를 함께 먹을 만큼 자신을 아낄 줄 아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런 누군가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몸이 아프니 유난히 그렇다.


라면을 먹는다고 등 맞는 상상을 해보니 우습고, 또 쓸쓸했다.


다음날도 몸은 회복되지 않았다. 하루 청소 안 했다고 집이 어수선하다. 화장실을 가다 바닥에 떨어진 긴 머리카락을 바라보면서 “저 가시내, 똥꾸녕 졸졸 따라다니면서 치워야 한다.”며 머리 좀 묶으라고 잔소리하던 엄마를 들여다본다. 머리카락 치우는 걸 귀찮아하면서도 묶지 않는 괜한 오기를 부리면서, 서른 먹은 여자도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라고 여전히 생각한다.





꼼짝 않고 누워 엄마를 생각하며 천장을 향한 눈을 뻐끔뻐끔 거려 보았다. 콕콕 천장에 과거를 찍어 놓고 그 자취를 따라 눈으로 지이익- 선을 그어보니 4평 방 안이 온통 후회의 자리다. 그 크기가 어찌나 큰 지 밤하늘에서 가장 큰 바다뱀자리보다도 넓은 것 같다. 바다뱀자리는 어두운 별이 많이 끼어있고 동에서 서로 길게 퍼져 있어 실제로 밤하늘에서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고들 하는데, 저렇게도 넓은 후회의 바다뱀자리를 찾게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아주 조금 삶을 알아가기 시작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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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뱀자리에는 헤라클레스와 엮인 신화가 있다. 머리가 아홉 개인 바다뱀 히드라는 그 머리 중 하나가 불사였고, 나머지 머리들은 베이고 베어도 그 자리에서 새 머리가 나왔다고 한다. 헤라클레스는 조카 이올라오스를 데리고 그런 히드라를 물리치기 위해 떠났는데 헤라클레스를 미워한 헤라가 거대한 게를 보내 히드라를 돕게 했다. 헤라클레스는 그 게를 죽이고, 히드라의 머리를 계속해서 베었으나 새 머리가 자꾸만 자라났다. 함께 간 이올라오스가 그 베어낸 자리를 불로 지지니 더 이상 새 머리가 자라지 않았고, 헤라클레스는 그렇게 히드라를 물리쳤다. 그 후 히드라는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되었고, 도와주었던 게는 히드라의 머리 부근에 자리하여 게자리가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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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 생각을 하다 가뭇 잠이 들었는데, 약기운 때문인지 꿈도 꾸지 않고 그대로 푹 잤다. 열두 시간이 넘도록 자고 일어나니 기운이 좀 차려져서 모래바닥에 그려진 바람자리 같은 이불을 정리했다. 머리카락을 줍고 화분에 물을 주고 대대적인 청소를 시작한다. 가만있다 꼭 한 번씩 집을 와장창 뒤엎어 대청소를 하는 나의 습관은, 유전자가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증명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유전자가 행동에 끼치는 힘은 사회화로 학습된 행동보다도 엄청나서, 엄마의 살림살이 가꾸는 맵시를 똑 닮은 나는 깔끔하고 꼼꼼한 성미 때문에 몸이 많이 고생한다. 내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자라 내가 엄마에게 내내 그랬듯, 엄마는 왜 사서 고생을 하냐 타박을 할 것을 생각하니 어우, 조금 소름이다. 이래서 너 닮은 딸 낳으란 소리가 무섭다고들 하는 거구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이렇게 아무 대책도 없이 시골에 내려와 버린 것을 엄마가 알게 된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엄마는 도대체 넌 무슨 정신머리냐고 한소리를 하면서 온갖 남의 아들 딸들을 소환하다 결국은 자식복 없는 불운한 자신을 탓할 것이다. 그럼 나는 예의상 약간의 미안함을 비추며, 그래도 그저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지 않겠냐고 성의 없는 설득을 하겠지. 몇 개월이 무심하게 흐르면 엄마는 이것저것 묻지도 않고 그저 내가 먹고 싶다는 조기가 들어간 김치를 해서 보내면서 이건 입맛은 쓸데없이 고급이어서 손 많이 가는 것만 좋아한다며 짧은 구박을 할 것이다. 그래 분명 그럴 것이다.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 다짐하던 열세 살 여자아이는 서른이 되어 그녀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많은 부분에서 그녀를 닮아있다. 그런 점이 기쁘지도 억울하지도 않다. 그저 엄마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종종 혼잣말처럼 한다. 당신을 이렇게도 많이 닮은 나는 어떻게 해야 당신과 다르게 살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물으며 그녀의 늙은 목소리를 듣고 싶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어디에서도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안다. 사는 내내 혼자 힘으로 알아내야 하겠지. 잘라도 잘라도 자꾸 자라나는 바다뱀의 머리 같은 후회들을 힘껏 지져가면서, 그렇게 당신을 그리워하면서.


내가 삶의 모든 것에 부여한 의미를 하나 둘 거두어들이며 오직 무의미만이 의미임을 깨닫는 고고한 나이가 되더라도 나는 여전히 그녀의 언나일 것이다. 그러니 요 며칠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던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한다. 귀촌 통보를 하는 나와 엄마의 통화 내용을 상상한 것을 바보 같아 하지 않기로 한다. 별 수 없겠지. 그냥 이렇게 문득문득 바다뱀의 머리나 하나 또 자를 수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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