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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 May 25. 2021

무모하고 철없음을 사랑하기

일단 합니다.



새벽 다섯시. 알람을 끈다. 능숙하게 꿈을 이어 붙이며 다시 잠에 든다.



일찍 깨어 공부를 좀 하고 싶었는데 오늘도 역시 잠 기운에 지고 만다. 5일째 일찍 일어나기에 실패하고 있다. 전엔 늦게 일어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전혀 없었는데 시골은 여섯시만 되도 다들 논에 나가시니, 이른 아침 그 분주함을 따라 살포시 눈을 떴다가도 결국은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게으름이 좀 더 부각되는 것 같다. 내일은 꼭 새벽바람에 일어나서 차를 마시면서 공부를 해야지. 매일 같은 다짐을 하며 잠들고 곧 새벽을 맞으며 이내 실패하지만 그래도 내일은 다시 일찍 일어나 봐야지, 하고 마음을 챙긴다. 시골에 오고 난 뒤 나는 무모하게도 “일단 하기”의 힘을 믿기 시작했다. 나이키의 유명한 카피처럼.





어제 오후의 막걸리 담그기도 그런 흐름을 탔다. 처음 해보는 일인데 그저 직접 담근 술맛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술항아리부터 샀다. 술이 될 수도 있지만 그냥 썩은 물이 되어 쌀만 버리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손맛을 믿고 무작정 막걸리를 담갔다. 맛이 없어도 맛이 있을 참이었다.



토독 토도독 톡 토독.



눈 뜨자마자 전기담요로 감싸 둔 막걸리 온도를 체크하며 술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니 뭔가 걸작이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누룩을 볕에 말리고, 쌀을 한 시간 넘도록 씻어 불리고 찐다. 그걸 식혀 다시 치대면서 '아, 그냥 사 먹을 걸'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술을 빚어낼 시간이 있는 내 일상에 그저 감사하고 소중하단 마음으로 열심히 술을 빚었다. 소소하게 갖는 이런 시도들과 혼자만의 작은 경험들이 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는 믿음, 직접 빚은 술을 2주 뒤에 동네 할머니들과 나눌 수 있다는 기대로 가득한 내 마음의 생김새를 이리저리 둥글게 매만져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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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간에 충실한 사람이지만 의외로 꽤 계획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일단 예상되는 계획 안에 스스로를 가둬두어야 아무렇게나 순간의 흐름을 타버리는 나를 그나마 통제할 수 있겠단 생각에, 계획을 먼저 세우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그런 노력에도 나는 삶에서 줄곧 계획과는 아주 먼, 심지어 보편적이지 않은 선택들을 하며 온통 삐뚤빼뚤한 글씨로만 일기를 적어 내었다. 내가 정했던 모든 계획대로 삶을 꼭꼭 바르게 눌러 적어 두었다면 한 장 한 장 제대로 채워 좀 더 단단하게 삶을 엮어둘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책이라도 한 권 나왔으려나. 이러나저러나 밑줄을 벗어난 그 글씨들이 어쩔 때는 그림 같이 보일 때도 있었으니, 손해는 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미리 꼼꼼히 생각을 해두는 과정에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하거나 애써 짠 계획을 확 뒤엎어 버리는 멍청한 짓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늘 계획을 앞세워야 마음이 편하다. 나의 계획은 지키기 위해서라기 보단 나를 통제하는 동시에 불안을 잠재우기 위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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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장보기 목록>

콩나물, 불고깃감 돼지 앞다리살.


'오늘 콩나물 할인하니까 두 봉지 사자. 그럼 몇 주먹은 데쳐서 무치고, 그 데친 국물에 반을 넣어 국을 해야지. 나머지는 원래대로 콩나물 불고기에.'



마트에서 천 원짜리 콩나물을 사면서도 저런 계획을 세워대던 내가 한 달 만에 무턱대고 시골에 내려와 버린 것은, 내가 써 내려간 그 숱한 삐뚠 일기들 중에서도 꽤 의외의 사건에 해당한다. 잠깐이라도 어떻게든 이 곳에서 나를 살려내고 그다음 일은 그다음에, 아니 그냥 아예 다음이란 걸 생각하지 말자는 말도 안 되는 무계획을 계획 삼아 마음이 가는 대로 먹고 생활하기를 두어 달 하다 보니, 새삼 그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신기한 것이었다. 이런 엉망진창인 방식으로도 살아지는 게 놀라웠다. 습관처럼 짜던 계획이 없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고, 벌이 역시 없었지만 돈에 얽매이지 않고 계절에 맞는 옷을 입고 먹고 싶은 음식을 해 먹으며 나는 무척이나 ‘잘’ 지내고 있었다.


수도관을 몽키스패너로 꽉 조이는 일이라든가 세탁기를 옮기는 일 같은 것을 할 때면 혼자 힘으로 집을 고친다는 게 역부족으로 여겨질 때도 많았지만 나는 어떻게든 해 냈다. 온통 태어나 처음 해 보는 일이지만 스스로 터득하고 공부하다 또 실패하면서도 마침내는 마무리를 지어내고 있었다. 아마 미리 계획했더라면 계획을 세우다 말고 못할 일이라 단정 지었겠지. 다행히도(?) 어느 날 퇴근을 하며 무턱대고 귀촌을 결심해버려 아무런 계획이 없었고, 그래서 일단 그냥 집부터 고치기 시작했고, 이미 시작했으니 돌아가거나 멈출 수가 없어 또 그냥 차근히 내가 해야 할 오늘의 일을 해치워 갔다. 그러면서 나는 “일단 하기”의 힘을 믿게 되었다. 나는 비로소 "일단 해보니 되더라."라는 말을 나의 존재로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어떻게 되든 1년을 이 돈으로 살겠다!’는 마음으로 1년 치 생활비 계획을 세웠다. 다시금 계획적인 자아가 각성하고 등장한 참이었지만 그 계획은 이전과는 달리 치밀하기보단 맹랑한 쪽이었다. 난 그저 적어도 1년은 돈 걱정 없이 살고 싶었다. 그렇게 1년 치 예산을 편성해 놓고 나니 통장에는 남은 돈이 없었다. 그러니까 당장 다음 해 1월 1일에는 가진 돈이 0원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 가당찮은 계획을 감행하기로 했다. 계획을 세웠어도 계획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나 나의 우주가 마치 홀로 12월에 멈춰 버릴 것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일단 하기"의 힘으로 밀고 가다 보면 어떻게든 그다음 질문에 대한 답이 자연스레 나오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아, 이립을 앞둔 이의 이 무모하고 철없음이란! 그런데 나는 그 무모함이 마음에 꼭 들었고, 철없는 계획을 세운 스스로에게 만족했다. 내가 마침내 다음 레벨로 넘어가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나는 결국 그 막연한 기대를 이어버렸고 1월 1일을 지나 2년째 같은 일상을 잘 연장하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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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익은 (것으로 추정되는) 막걸리를 걸러 마시면서, 나의 무모한 막걸리 담그기 시도는 역시 '느린' 중소기업이 잘 만든다는 생각으로 귀결했지만 애초에 술의 맛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을 테다. (기왕이면 맛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직접 담근 술맛을 보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버리지 않고 술을 걸러낸 것으로 이번 막걸리 담그기는 성공적인 시도였다. 내 막걸리에서 풍기는 어설픈 누룩 내를 동네 이웃과 나누면서 지금 나의 오롯함과 이 적절한 어울림에 대해 만족했다.


아무런 계획 없이 나중에 막걸리를 또 툭하고 담가야지. 어느 날 눈을 뜨며, '오늘은 이걸 좀 해볼까?' 하고 항상 갑작스럽고 새로운 모험을 즐기면서 살아야지. 머리보단 종종 몸이 먼저 따르는 일들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글을 쓴다. 쓰면서도 무엇을 쓰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비문일 것 같은 의심을 품고도 글들을 마구 쏟아낸다. 일단 한다. 술맛이 어떠하냐는 상관없듯이, 지금 순간 그냥 글을 빚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설픈 누룩 내가 나는 문장을 여기에서 나누는 경험을 적립한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언제까지나 나의 이 무모하고 철없음을 사랑할 것이므로. 그리하여 오타 조차도 결국은 나만의 언어가 되고, 헝클어진 비문도 완벽한 쉼표 하나 정도는 가지게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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