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앞으로의 나의 일, 이 년의 계획에 대해 B에게 털어놓은 일이 있다. 비밀로 할 만큼 거창한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괜히 시작도 전에 떠벌리는 일이 산통을 깨는 것 같아 아무에게도 말을 않고 있었는데, 그래도 나 아닌 누군가 한 명쯤은 그 계획의 끝에서 오늘 나의 이 다짐을 기억해 주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B는 조금 놀란 듯 보였지만 좋은 생각인 것 같다고 말해주면서 문장 뒤에 혼잣말을 작게 흘렸다.
“나도 이상주의자라서… 아, 아니다.”
그 말 뒤에 나는 “그런가요?” 하고 멋쩍게 웃었는데 며칠 밤을 자고 나서도 불쑥불쑥 그 말이 내 생각을 뒤따르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B가 이상주의자라서 내 계획을 응원한다는 건, 내 계획이 타당성 같은 건 배제된 채 허무를 쫓기만 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는 말이 아닐까.’ 나는 B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혼잣말을 흘렸는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늘 나를 좋게 봐주는 사람이었다. 단지 중요한 건 나로부터 그 말이 이렇게 주목받고 있다는 것에 있었다. 나는 대체 왜 하루 이틀간을 그 말을 되새김질하며 보내고 있는 것일까. 표현하자면 마치 ‘파팟’ 같은 소리를 가진 채 콕 날아와 박힐 것 같이 생긴 그것은 단지 B의 말이었을까.
‘이상주의자라서.’
나는 지나간 나의 좀 더 젊은 날들이 어지러웠다고 느껴졌던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찾아낸 원인이 있었다. 그건 바로 현실과 이상의 괴리였다. 현실주의, 이상주의 어느 한쪽으로라도 좀 치우쳐져 있었더라면 삶은 덜 고단했을 거라 감히 짐작해 본 것이다. 나는 자신을 이상주의자의 뇌와 현실주의자의 심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틀림없다고 여겼다. 내게 이상은 의외로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 있어 발현되지 못한 채 항상 머릿속에서만 그려졌을 거라고. 그리고 그건 따뜻하고 허황하기보단 외려 치밀하여 슬픈 쪽이었으리라고. 이상을 머리에 담을 때면 나는 잠시나마 현실을 잊으며 조금 웃기도 한 것 같다. 그렇게 담긴 생각 안에서의 나는 늘 처한 환경을 보란 듯 이겨내고 그럴싸한 무언가를 쟁취한 서사를 가진 자의 모습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도 얼마 머무르지 않았고 가슴은 늘 현실 앞에서 작게 더 작게, 가을볕에 바싹 마른 콩과 같이 보잘것없어져 자꾸만 현실과 닿은 방향으로 나를 끌었다. 그래서 삶은 이도 저도 아닌 방향으로 흘렀다. 꿈을 이리저리 놓아두었다가 얼마 안 있어 그것들을 다시 흩트려놓기를 반복하면서.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그랬다. 그러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채로 지금의 나로 흘러온 것이다. 여기까지가 삶의 고단을 견디려 꾸역꾸역 찾아낸 이유다. 그러니 결국은 실패와 주저를 엮었던 건 어쩔 수 없는 어중간한 나의 탓이라 더는 다른 이유를 찾으며 괴로워지지는 말자고, 단지 내가 나처럼 살아온 것일 뿐이라고.
B와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B에게 나는 내가 그려놓은 앞으로의 계획이 얼마나 지금의 나의 상황과 시기에 딱 들어맞은,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내게 가장 가기 적당한 길을 고른 것인지를 설명했다. 묻는 이가 없음에도 스스로 계속 설명하려 하는 것을 보니, 아닌 척하면서 나도 내 계획을 B의 생각과 비슷하게 여기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며칠을 생각하다 알아내었다. ‘이상주의적인’이란 표현은 언제나 ‘이룰 수 없는’으로 치환되어 자꾸만 나를 주저앉히기에 그래서 결국 나는 그 말을 밖으로 내는 대신 그저 아닌 체하는 것으로, 나의 계획에 힘을 보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남의 입을 빌어서야 계속 외면하던 것이 그저 조금 더 선명하게 위로 떠 오른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내가 그 며칠을 B의 말과 함께 보낸 것이었을 테다.
나는 내 계획을 점검해 보았다. 시작을 열기에 괜히 서성거려지는 마음에 그래도 문고리를 내 쪽으로 아주 조금이라도 가깝게 당겨 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도 확인받고 싶었을지도. 조금 용감한 시도긴 해도, 너의 상황에 딱 맞는 계획이라 실현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고 그러니 마음 놓고 그 길을 가라고, 그런 구구절절한 응원의 말을 누구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가녀린 마음으로. 그러나 내가 기대하는 말을 듣기 위해 계획을 뜯어고치면 고칠수록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길지 않은 새에 깨달았다. 마치 잘못 스친 붓 하나를 고치려 어두운 색으로 자꾸만 덧칠해댄 탓에 알아볼 수도 없게 된 그림 같이 말이다. 그 그림이 작품으로 완성된다면 그 작품명은 필시 <타협-이전엔 거창한 계획이었던>이라 붙을 것인. 나는 새 컨버스를 챙기는 화가처럼 다시 원래의 의도를 마주했다. 그리고 어떤 것도 수정하지 않은 채 구상한 계획 위에 그저 한 문장을 추가할 뿐이었다.
‘나는 이상주의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면서 “취향은 참 변하기가 쉽지 않지, 암만.”이라는 혼잣말을 덧붙였다. 나는 여전히, 바등거리며 삶이 고된 이유를 찾던 어린 날의 나와 같다. 지난날보다 조금은 더 늙어진 내가 새로운 시작에 앞서 그때 그 이유와 표현만 달리하는 것일 뿐, 나는 좀처럼 변하질 못하여, 게다가 자신에게 모질지도 못하여, 누가 뭐라 한들 나를 언제나처럼 응원하고 있다. 아무에게 확인받지 못하더라도 괜찮음을, 불안해하면서도 여태 그랬듯 내가 나답게 맹랑하게 살아갈 것임을. 그러니 부디 중간에 멈추지 말고 그냥 정진하는 것이 나의 온전한 몫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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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적 취향
현실에서 가능한 타당성을 무시하고 현실을 이탈하여 이상을 지향하고자 하는 취향. (출처: 우리말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