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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J May 04. 2024

30대, 여전히 모르는 게 더 많아요 (1)



30대. 이렇게, 어중간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되는 때가 있을까?


천방지축으로 나이만 믿고 까불던 20대도 지났다. ' 아몰랑' 정신으로 일단 저지르는 시절이었다면 이제는 '아몰랑 했다가는 내 미래도 아몰랑'일 것을 알기에 생각이 한 꺼풀 씌워진다. 


30대가 되니, 직장생활에서는 지난 7년간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어느정도는 대응할 수 있지만 (물론 이제 막 겨우 알을 깨고 나온 수준이지만) 직장 밖 세상을 상대할 때는 여전히 병아리처럼 닭똥같은 눈물을 흘릴때가 많다. 



부모님 집에서 처음으로 독립할 때는 원장님께서 집구하는 걸 도와주셨다. 믿을만한 공인중개사분을 소개해주셔서 좋은 집에 정말 편하게 들어와 살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전세집을 찾는 첫번째 모험은 꽤 악랄했다. 


자칭 자신을 전문가라고 소개하는 첫 공인중개사는 집을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했지만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내가 알아보고 보증보험 가입가능한 물건인지 봐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연락이 곧 오더니, 가입가능한 것이 없다고 다른 물건을 추천해주었다. 실망한 나는 아쉬움이 남는 물건 소개에 등록된 부동산에 직접 전화를 걸었더니 그 중개인은 보험가입이 가능하다 했다. 제대로 보지 않고 자신한테 이익이 많이 떨어지는 물건을 자꾸 들이민 것이었다. 사람을 쉽게 믿으면 안되겠다는 깨달음에 직접 발 벗고 나서기로 했다.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시간이 나는 대로 물건들을 보러다니며 여러 인간 군상을 만났다. 


 중개인과 세입자의 다툼으로 나는 마음에 쏙 든 집을 눈 앞에서 놓쳤다. 그 중개인은 내 옆 의자에 발을 떡 하니 올려놓고 나와 상담했다. (어디가서 눈이라도 찢어셔 못된 년로 보여야 하나) 

가격도 적절한 물건을 찾아 가계약을 진행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본계약일자를 차일피일 미루더니 결국 계약을 파기했다. 집주인의 파기로 인해 위약금은 2배가 되어야하지만 가계약 문자를 보니 계약금을 위약금으로 한다는 문구가 떡하니 있었다. 중개인과 집주인의 짜고친 냄새가 풀풀 났다. ( 처음에 이 문자를 별 신경쓰지 않았는데 이때부터 알아차려야 했다. )

임대사업자 물건을 소개하며 안전한 물건이라고 하는 중개인도 있었다. 점유된 물건들이 꽤 오래된 것 같아 미심쩍어서 여러 부동산에 전화해서 확인을 해보니 여러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못내주고 있는 사업자였다. 물건을 소개하던 중개인은 나에게 이 말을 해주지 않았다. ( 가다가 새똥 맞.....았으면....)

그 오피스텔에 다른 호실을 알아보며 이 사람 물건 아니냐 물어보니 중개인은 확인해보고 연락주겠다 했다.  다시 연락와서는 국세체납사실이 있기에 들어가면 안된다고 했다. 알려주는 호실을 들어보니 그 임대사업자 호실 말고 다른 호실이었다. 이 오피스텔은 지뢰밭이었다. ( 역시 발품은 언제나 승리다. )


임대인과 임차인조차 헷갈리던 부동산 바보는 이 모든 골 때리는 부류들을 겪으며 몇 가지 룰을 정했다.


절대 '이번이 계약이 처음이라..'와 같은 멘트는 하지 않았다. '나를 그냥 잡아먹으쇼' 하고 배까고 드러눕는 것과 같은 호구 멘트다

급한 티를 내지 않았다. 마음은 똥줄이 탈 지언정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했다. 

사람을 너무 믿지 말아야 한다. 1~2만원도 아니고 엄청나게 큰 돈이 오가는 큰 일을 누구에게 맡길거냐. 발바닥에 불이 날지언정 스스로 모든 것을 찾아헤매야 한다. 그런 와중에 경험도 쌓이고 지식도 쌓인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만, 꼭 데여봐야 그 의미를 실감하는 반쪽짜리 어른인 나는 다이나믹한 시간들을 보내고 난 뒤, 마침내 가능한 물건을 찾았고 대출승인을 받았다. 이율은 1.5%, 내 돈 묶이는 것 없이, 보증금 전액 대출이었고 hug 보증보험도 가입했다. 이 모든 풍파 뒤에 만난 집주인분은 너~~~무 착하셨다. 은행에서 연락오는 게 있으면 꼭 나한테도 경과를 알려주셨고 서류와 관련된 부탁을 다 들어주셨다. 



슬픔은 행복의 파수꾼이라 했던가. 


행복은 슬픔을 파수꾼으로 보내 미리 청소를 시키고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냥 좀 와주면 안되나 싶기도 하지만 행복이 오고 슬픔이 오는 것보다 슬픔이 오고 행복이 오는 것이 더 낫다. 늘 행복할수는 없으니까. 찐하게 세상 공부시키던 슬픔은 비가 오던 어느 날 좋은 집주인을 소개시켜주고 훨훨 떠났다. 동사무소에 전월세신고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며 비오는 거기를 걷다가 딱 2주일 전 그날이 생각났다.


은행에 치이고 집주인에 치이고 중개인에 치이며 비오는 거리를 걷던 그날, 나는 나에게 말해주었다.


'상황에 지지 말자. 상황에 지지 말자. 어깨 피고, 나는 지지 않는다. '


자본주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두 팔 걷고 두 발로 무진장 뛰어다녀야 한다는 것을

현실은 종이 위의 몇 글자에 다 담기지 않고 서류 너머의 세상은 훨씬 더 복잡하고 냉혹하다는 것을

아무도 나만큼 나에게 진심일 수 없고, 그렇기에 더더욱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강해지고 싶다면 강해져야 하니까. 


자본주의 시대 진정한 권력자인 은행과 싸운 후기,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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