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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J Jul 15. 2024

대표가 말했다고.
"정신이 이상해져서 걔 짤랐어 "



함께 일하던 시간 내내 기쁜 일에 웃으며 슬픈 일에 울었다. 진짜 어른이라고 생각했기에 믿고 따랐다. 친구들과 지인들은 이상한 곳이라고 빨리 탈출하라 했지만 가스라이팅당한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항변했다. 이상한 곳 아니라고.

 

얼마 걸리지 않았다. 퇴사한 즉시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리라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는


같은 바운더리안에 들어있다는 소속감은 꽤 큰 방어막이 되기도 한다. 그 바운더리를 벗어나니 서로를 지켜주던 방어막은 비눗방울처럼 사라졌고 그 자리엔 부끄러운 허물만 남아있었다. 자리에 없는 사람은 잘못 처리된 업무의 잘잘못을 떠넘기기에 꽤 좋은 대상이 되었다. 자리에 없으니 말도 없다. 안 풀리는 일들은 모두 내 탓이 되어가고 있었다. 술이 한 잔 들어가게 되면 남들에게 말하지 못한 진짜 얘기가 나오는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 분위기는 상대방이 내뱉는 말을 은밀하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너한테만 하는 말인데, 이번에 그 사람. 정신이 이상해져서 자른거야. '


그 이야기는 퍼지고 퍼져 나에게까지 들어오게 된다. 나는 어느새 정신이상자가 되었다. 사하는 이유는 말했다. 쉬어라는 병원의 권고가 있었기에 그만둬야할 같다고. 호르몬 약을 먹고 있기에 감정기복이 있을수도 있다고. 그들에겐 정확한 병명으로 진단받은 몸상태보다 호르몬 약이 매력적인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조직에서 정신병자로 남겨졌다. 


인간적으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그가 원망스러웠다. 배신감에 길길이 날뛰었다. 모든 감정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니 그 자리에는 점점 이성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인간적으로 못난 그들이 그 못난 본성을 드러내었을 뿐이라고. 우리라는 가림막에 가려 보지 못했을 뿐. 서로의 본성을 숨기고 있었을 뿐.


직장이라는, 우리라는 옹벽은 우리의 눈높이에 맞춰 세워져있다. 눈 높이를 높이면 그 벽 뒤의 세상이 눈에 보이더라. 그들이 나를 그렇게 대하는 이유는 우리를 묶어줬던 옹벽의 높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냥 그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이다. 중요하지 않고 언제든 쉽게 넘어설 수 있는 사이. 



잔인하게도, 부당한 처사에 대해 우리는 분노해야하지만 깨달아야한다. 우리의 위치를. 그 조직이 생각하는 나의 가치와 쓸모의 범위를. 어른이 되면 당당하고 멋있게 살 줄 알았지만 그 이면에는 냉정하게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자신의 힘을 키우며 30년 넘는 레이스를 펼치는 고독한 인간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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