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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 Oct 05. 2022

서울 지하철

물론 그럼에도 서울은 예쁘지만 말이야.

요즘 남자 친구를 만나면서 비교적 자주 서울을 방문하게 됐다. 아직 우린 어리고, 재정적으로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아서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곤 하는데. 서울의 지하철은 기대와 달리 너무 숨 막히는 곳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에서 살 때만 해도 서울의 지하철엔 젊은이들이 멀찍이 앉아 시시한 시집이나 재미없는 소설집이나 들고 읽고 지친 회사원이 제 몸집의 반만 한 가방을 양손으로 끌어안고 흔들거리는 지하철의 격동 속에 양수 속에 있는 태아 같은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그런 광경을 꿈꿨으나 내 생각과는 사뭇 달랐다.


우선 서울의 지하철엔 노인들이 상당히 많으며 또 그런 노인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청년들은 대단히 적고, 공기는 안 그래도 답답한 마스크를 두 겹 세 겹은 착용한 것처럼 답답했다. (이것은 지하철 무료환승과 관련된 이슈 등이 있으니 무조건 청년들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 그것뿐일까, 서울의 지하철은 왠지 모르게 다른 지역보다 더욱 빠르게 달리는 것 같은데. 그런 현상 때문에 지하철이 달릴 때 나는 굉음이 마치 괴물의 거대한 발자국 소리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교통이 불편하던 60년대 많은 사람들이 버스의 조그마한 빈 공간을 향해 비집고 들어가는 모습을 콩나물 버스라고 불렀다면, 지금 서울의 지하철은 특히 환승구간은 콩나물 지하철이란 이름을 붙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런 공간에서는 시집과 소설집은커녕 제 소지품을 지키느라 팟캐스트 하나 집중해서 듣기 어려울 것 같다.


예전에 인서울을 용케 해낸 평범한 대학생의 일상을 듣고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던 도시의 거리가 그렇게 잔인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특히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모여있는 달동네나 쪽방촌 같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 그 어린 청년들이 일종의 등산을 하는 듯한 모습이 눈에 보이니 정말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바라던 인서울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학교를 다니는 그 고뇌의 시간 동안 못해도 관리비를 제한 월세가 4-50은 하는 쪽방촌을, 특히 세가 더 저렴한 곳을 향해 등산을 하고 있는 그 모습은 정말…


물론 지자체와 정부에서 갖가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지표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현실이지만, 이 정도면 무언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 지하철에서 간단히 써내려 가는 이 글도 아마 서울의 환승구간을 지나는 지하철이었다면 쓰기 어려웠겠지. 나도 예술을 하다 보니 그 집합지인 서울을 선망하고 심지어 그곳에 반해버렸지만 멈칫하게 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DDP의 전시나 젊은 이들의 열정이 흐르다 못해 넘치는 홍대 거리나 한국 내 자유의 거리처럼 여겨지는 이태원이나 곳곳이 아름다운 카페가 즐비한 성수, 그곳의 이면엔 여전히 1호선과 9호선을 타고 있는 이들의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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