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임시수도 정부청사
유산 주소와 위치: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225 (부민동2가)
https://goo.gl/maps/oaisJETEGL4Yh2NS7
'임시중앙청'이라는 표기를 봤을 때는 뭔가 잘 알 수 없었습니다만 '임시수도 정부청사'라고 하니 알겠더군요.
도청 소재지를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기면서 1925년 4월에 건립된 경상남도청이었는데 해방 이후 한국전쟁기에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면서 정부종합청사가 되었습니다.
1926년 4월 18일 경성일보를 보니 17일 오전에 신청사에서 도청 이전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변천사를 보시죠. 왼쪽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당시, 그리고 현재의 모습입니다.
한국전쟁이 휴전기에 들어간 1953년 8월 15일부터는 다시 경남도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83년 7월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하면서 1984년 11월부터 2001년 9월까지 부산지방검찰청 청사로 사용됩니다. 검찰청이 다시 연제구 거제동으로 이전하면서 이 건물은 2002년 동아대학교가 매입하여 건립 당시의 형태로 외관을 복원, 2009년부터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석당 박물관 홈페이지
http://museum.donga.ac.kr/sites/museum/index.do
피란 수도의 기간 동안 모든 정부 소관부처의 업무를 조정, 결정하던 국무 회의소와 국무총리실, 정부 부처 등(총무처, 공보처, 법제처, 기획처, 내무부, 외무부, 국방부, 법무부, 대통령·부대통령·국무총리비서실)이 사용하는 정부종합청사였습니다.
1951년 임시 청사에서 열린 6·25 전쟁 1주년 기념식에 이승만 대통령과 신익희 국회의장, 김병로 대법원장 등 정부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모습입니다. 김병로 대법원장은 국민의 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조부이기도 합니다.
1953년 8월 26일 광복절 이승만 재취임 1주년 기념 때 걸린 현수막. 이 재취임이 가능했던 것이 바로 세 번째 지정 문화재 경무대에서 소개했던 '발췌개헌' 덕분이었지요.
임시 수도 기간 중 부산에서는 ‘국민방위군 사건’, ‘거창 양민 학살 사건’, ‘부산 정치 파동’, ‘발췌 개헌안’ 등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발생했습니다. ‘부산 정치 파동’, ‘발췌 개헌안’ 은 경무대 편에서 소개했습니다.
‘국민방위군 사건’은 사상 최악의 국방비리 사건이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만, 국민방위군으로 소집된 만 17세 이상 40세 미만의 청장년들이 부산·경상남도·경상북도 지역으로 이동·훈련 중 국민방위군 간부들의 횡령으로 보급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약 5만 명의 군인들이 아사·동사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관련자 5명이 처형되고 국민방위군은 해체되었습니다. 본래 비공개인 군사재판을 공개로 하여 재판의 공정성을 알리려 했는데 당시 사령관인 김윤근을 장인인 신성모가 빼돌릴 거라는 소문 때문에 이들은 대구 근교 야산에서 공개 처형됩니다.
처형된 인물들은 사령관 육군 준장 김윤근, 부사령관 육군 대령 윤익헌, 재무실장 육군 중령 강석한, 조달 과장 박창환, 보급과장 박기환입니다. 이때 빼돌려진 막대한 금액은 단순히 개인 횡령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로비자금으로 흘러들어 갔다는 의혹이 여전합니다.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은 지리산 지역의 공비 토벌 차 파견된 국군 제11사단 9 연대 3대 대장 한동석 소령과 그 부대원들이 공비와 내통한다는 이유를 들어 이곳 주민 600여 명을 집단 학살한 사건이었습니다.
임시수도 당시 전쟁의 참혹함에 더해 국내, 국외의 정치적 상황 하에서 비극적인 일들이 많이 벌어졌습니다만, 단순히 덮거나 잊는 것이 아닌, 거기에서 반성하고 성찰해 다시는 이런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에 문화유산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2002년 09월 13일에 제41호 등록문화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