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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Mar 03. 2023

주머니 속 기차표

곰스크로 가는 기차

 어떤 남자의 꿈은 곰스크에 가는 것이다. 남자는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아내와 곰스크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행복에 겨운 남자와 다르게 아내는 시큰둥하다. 오히려 중간에 내린 작은 마을을 마음에 들어 한다. 아내는 다음에 오는 기차를 타면 된다고 남편을 채근한다. 남자는 하는 수 없이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그 마을에 정착한다. 일자리를 구하고, 집을 짓고, 아이를 낳으며 세월을 보낸다. 주머니에 곰스크행 기차표를 여전히 간직한 채다. 그러나 남자는 결국 곰스크에 가지 못했다.


우리도 각자 주머니에 곰스크로 가는 기차표를 가지고 있다. 다음에 타면 된다고, 그렇게 될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계속해서 기차를 놓친다.

 나는 남미로 가는 비행기를 놓쳤다. 우유니 사막에 가는 게 꿈이었다. 치안 문제로 부모님이 반대했지만 내심 나도 주춤했는지 모른다. 솔직히 모은 돈을 다 털어 가는 것도 두려웠다.

 다음에 가면 된다고 미루었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 코로나가 터졌다. 그렇게 나는 또 기차를 놓쳤다.

 팬데믹에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홀가분하게 뜰 자신이 없다. 이번에는 관성적으로 흘러가는 일상을 타파하고 머나먼 곳으로 떠날 수 있을까. 미지의 세계에 동경과 기대를 걸고 뛰어드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오늘은 다른 길로 가볼까. 그 사람에게 연락해 볼까. 다른 회사로 이직할까. 해보지 않았던 걸 시도할까. 기차는 다양한 이름의 종착지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모두 곰스크로 가는 기차표를 끊는다. 과정은 곰스크에 가기 위한 잠시의 희생이라 최면을 걸고 자신을 달랜다. 하지만 중간에 내리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경우는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남자의 푸념에 어떤 늙은이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 그것이 그의 운명이요, 운명은 곧 자신의 의지인 것이지요. 당신이 원치 않았다면 당신은 그때 기차에서 내리지 않았을 테고 기차를 놓치지도 않았을 거요. 그 당시 바로 그 순간,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겁니다.”

 순간의 선택이 모여 우리는 저마다 운명의 역에서 내리고 타기를 반복한다.

 곰스크에 가지 못한 남자를 보고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왜 그랬냐고 탓할 수 없었다. 그가 곧 나였기에, 나는 침묵할 뿐이다.

 나는 과연 곰스크에 갈 수 있을까? 오늘도 주머니 속만 만지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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