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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Karl Jul 06. 2021

Iron Man의 도시

버밍엄

9. 

오늘은 크리스마스 여행의 마지막 날이고,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워런하우스에서의 럭셔리한 아침도 마지막이다. 런던에서 집까지는 500킬로미터가 넘게 떨어져 있다. 요크에서 도버로 이동하며 캠브리지를 찾았던 여행 첫날처럼, 장거리 이동에는 중간 경유지가 필요하다. 집으로 가는 긴 여정에 우리는 버밍엄Birmingham을 들르기로 했다. 아내의 지인이 가족과 함께 거기 살고 있다. 


버밍엄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M40 고속도로를 타는 것이다. 그래도 2시간 30분 이상을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 내일이 새해 첫날만 아니었다면 훨씬 여유를 부렸을 것이다. 아마도 런던에서 옥스포드를 거쳐 바이버리와 버톤 온 더 워터 같은 아름다운 전원마을들이 모여 있는 코츠월드Cotswolds를 지나 스트라포드 어폰 에이번에서 셰익스피어의 생가를 구경하고 버밍엄으로 가는 여정을 꾸렸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남은 여행일은 하루뿐이고, 마음은 바쁘다. 다행히 화창한 날씨가 긴 여정의 부담을 다소 덜어 준다. M40 고속도로의 끝, 버밍엄 인근에 있는 서울 플라자 마트에 들른다. 버밍엄 지인의 아이들에게 줄 한국 과자와 간식들을 챙긴다. 그래도 약속했던 시간보다 이르다. 가볍게 버밍엄 시내를 둘러볼 시간이 남았다. 


버밍엄은 잉글랜드에서 런던 다음으로 큰 도시다. 18세기 산업혁명의 세례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도시다. 세계 최초의 공업도시라는 타이틀로 종종 소개되곤 한다. 승승장구하던 버밍엄이 잠시 움찔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다. 당시 버밍엄은 ‘버밍엄 대공습’으로 불리는 독일군의 공습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그럼에도 다시 번창하던 버밍엄은 1980년대 초반 영국에 불어닥친 경기 침체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후 현재까지도 뾰족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실 아내가 영국 유학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염두에 두었던 도시가 버밍엄이었다. 일단 지리적으로 영국의 정중앙에 있기 때문이다. 남으로 북으로 다니기가 참 좋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전 정도의 위치다. 또 한국 유학생들이 런던 다음으로 많은 도시라는 것도 이점이었다. 당연하게도 한인회 등 낯선 영국 생활에 의지할 것이 많은 도시였던 까닭이다. 버밍엄과 요크를 두고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아내가 마지막에 버밍엄을 배제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다. 너무 대도시라는 점, 게다가 많은 지역이 슬럼화 되어 있다는 점, 한국 사람이 너무 많다는 점, 더불어 인도나 아랍계 외국인들이 넘쳐나는 도시라는 점이었다. 반면 요크는 정반대였다. 한인과 외국인이 거의 없고, 작고 역사적이며 안전한 도시였다. 


아내가 버밍엄에 대한 내 생각을 처음 물었을 때,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버밍엄 대학 때문이었다. 사회학을 전공한 나에게 버밍엄 대학은 현대문화연구소BCCCS가 있던 의식 있고 매력적인 학교였다. 비록 2002년에 사라지고 말았지만, 현대문화연구소는 전 세계 문화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곳이었다. 결론적으로는 이미지에 끌린 나보다는 실질을 숭상한 아내의 판단이 옳았다. 내가 바둑을 가르치는 버밍엄 출신의 요크 대학생의 증언에 따르면, 런던의 노숙자를 버밍엄이 돈을 받고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버밍엄으로 가지 않은 것이 정말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을 그때 했었다.


Victoria Square


빅토리아 광장으로 가는 길은 썰렁하다. 오래된 건물보다 신축 건물이 더 많은 영국의 거리가 생경하다. 어설픈 크리스마스 장식은 거리의 풍경과 겉돈다. 거추장스럽기까지 하다. 영국이라는 나라를 떠올렸을 때 어울리는 어떤 이미지도 이 길에는 없다. 버밍엄을 버린 아내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이다. 


버밍엄의 도심을 이렇게 만든 이는 허버트 만조니라는 사람이다. 그는 1935년부터 1963년까지 버밍엄의 도시 계획 담당자였다.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는 것은 감상적이고 가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 건축물들을 철거하고 새로운 버밍엄을 만들고 싶어 했다. 덕분에 버밍엄은 콘크리트와 철제 건축물이 가득한 도시가 되었다. 누군가 30년 가까이 한 가지 일에 매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버밍엄에게 이것은 재앙이었음에 틀림없다. 


완만한 언덕길 끝에 빅토리아 광장이 보인다. 현대에서 시간을 거스른 것처럼 광장 안은 빅토리아 시대의 건축물들로 가득하다. 만조니가 여기까지는 어찌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광장 입구 왼쪽에 그리스 신전을 닮은 건축물은 타운홀Town Hall이다. 그리스 로마 시대 건축이 대유행하던 영국의 19세기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특이하게도 2층이다. 코린트 양식의 기둥은 2층만 에워싸고 있다. 빅토리아 시대에 도시를 특징짓는 건축물로 타운홀이 많이 지어졌다. 버밍엄의 이것은  그 유행을 이끈 영국 최초의 타운홀로 1834년에 문을 열었다. 지금은 각종 행사와 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롤링 스톤즈도 여기서 공연했다고 한다. 외형만으로는 어떻게 그런 공연이 가능했는지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 


빅토리아 광장에서 뜻밖의 것 하나를 발견한다. 안토니 곰리의 작품이다. 쇠로 만들어진 6미터 높이의 거대한 인간이 땅에 기우뚱 박혀 있다. 뒤로 7.5도, 왼쪽으로 5도 기울어진 모양은 분명 어디선가 날아와 박힌 것처럼 보인다. 비스듬한 철제 인간 앞에는 작품에 대한 곰리의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Iron Man


곰리는 버밍엄과 블랙컨트리Black Country 지방에서 쇠를 다루는 전통적인 기술을 동상에 구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블랙컨트리는 버밍엄 일대의 중공업 지대를 일컫는다. 제철공장의 용광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가 밤낮없이 일대를 뒤덮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곰리의 작품은 블랙컨트리에 있는 윌렌홀Willenhall이란 곳에서 주조되었다. 


작품은 쇠를 다루던 옛날 방식을 그대로 사용한 까닭에 거칠고 투박하다. 용접된 흔적도 그대로 남겨져 있다. 덕분에 이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버밍엄의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녹슨 흉물 같아서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만들 때는 작가의 것이지만, 만들고 나서는 시민의 것이니 묵살하고 넘어갈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원래 Untitled라는 이름의 조각상에 Iron Man이라는 별명을 지어 준 것도 시민들이었다. 아이언맨은 1993년에 Trustee Savings Bank가 시에 기증한 것이다. 


광장 가운데 있는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으로 걸음을 옮긴다. 동상은 1901년 대리석으로 세워졌던 것을 1951년에 청동으로 교체되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영국에서는 보기 드문 멋진 시계탑이 동상 뒤로 보인다. 시계탑을 가진 건물은 Museum & Art Gallery다. 그것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겨울이라 물도 흐르지 않는 멋진 분수대를 무심히 보다가 다시 타운홀 쪽으로 돌아간다. 빅토리아 건축물들이 화려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빅토리아 광장도 버밍엄의 썰렁한 기운이 전염된 것처럼 나른하다. 다행히 아내 지인의 집을 방문할 시간이 다 되었다.


톰톰을 따라 큰길에서 골목으로 우회전한다. 이제부터는 주택가다. 요크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쓰레기들이 주택가를 굴러 다닌다. 자기 동네라는 자긍심이나 소속감이 없는 사람들이 거주한다는 반증이다. 요크의 집들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앞뜰과 뒤뜰의 화단도 찾아볼 수가 없다. 작은 정원을 가꾸며 건강함과 부지런함을 자랑하는 영국 사람들의 정서가 버밍엄에는 없는 모양이다. 화단을 주차장으로 개조한 지인의 집에 주차를 한다. 대뜸 건너 집의 할머니가 알아듣기 힘든 말로 뭐라 말한다. 상냥한 인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아내가 지인에게 상황을 묻는다. 자기 집 앞에 쓰레기를 옮겨 놓은 거 아니냐며 의심하는 거란다. 하루에도 3번 이상 말도 안 되는 저런 이야기를 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다. 요크의 상냥한 영국 할머니들이 그립다.


아내의 지인 내외와 두 딸과 가볍게 인사한다. 우리 집 두 아들은 쭈뼛거린다. 영국에서 처음 맡는 감자탕 냄새가 집안에 가득하다. 큰 한인마트가 없는 요크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메뉴다. 성수동의 감자탕 맛집을 떠올린다. 그리고 음식이 힐링이 된다는 말을 체득한다. 커피믹스로 입가심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버밍엄은 어떻고, 요크는 어떻고 하는 이야기들이다. 요크의 완승이다. 공간이나 사람 간의 밀도와 쾌적한 삶 사이에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지역 커뮤니티에서 목공을 배운다는 지인 남편의 이야기는 솔깃하다. 다음에는 요크에서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지인의 집을 나선다.


볼품없는 주택가를 지나 외곽순환도로가 있는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거대한 건물 하나가 온몸으로 빛을 발산하고 있다. 어린 왕자에서 코끼리를 삼킨 보아 구렁이를 닮았다. 건물 외벽에 촘촘히 박힌 동그란 모양의 알루미늄판 수천 개가 내리쬐는 햇빛을 반사하고 있다. 런던에도 있다는 셀프리지Selfridges 백화점이다. 버밍엄에서 본 건물 중에는 가장 모던하고 미래적이다. 하루의 짧은 경험치로 버밍엄의 전부를 알아낸 것처럼 거만했던 나를 반성하게 만든다. 


가까운 스톡 온 트렌트에 잠깐 들른다. 모든 영국 도자기 브랜드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집에서 사용할 밥그릇과 국그릇, 머그잔, 찻잔세트들을 잔뜩 구매한다. 포트메리온, 로열 달튼 같은 어마어마한 브랜드들이다. 그럼에도 팩토리 스토어에 박싱Boxing 데이 할인까지 겹쳐 가격이 너무 좋다. 영국에서 보내는 첫 크리스마스 여행의 멋진 마무리다. 


비 오는 파리만 아니었어도 완벽한 크리스마스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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