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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Karl Apr 10. 2021

박물관에서 도서관 사이

런던 2

5.

어제는 크리스마스 여행 중 가장 느긋한 하루를 보냈다. 본격적인 런던 여행을 위해 에너지를 충전할 필요가 있었던 까닭이다. 오늘도 산뜻하게 아침을 맞는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분위기가 충만한 워런하우스의 아침은 활기가 넘친다. 어제처럼 여유롭게 아침을 즐기고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과 그 주변을 둘러볼 작정이다. 


런던 서남쪽에서 강북에 있는 시내로 차를 몬다. 1827년에 개통했다는 런던 최초의 현수교로 템즈강을 건넌다. 런던 서부를 남북으로 잇는 왕복 2차선의 해머스미스 Hammersmith 다리다. 현란한 조각품들이 화려하게 다리를 치장되어 있다. 1887년 대규모 보강 공사를 할 때도 조각품만큼은 이전의 것들을 그대로 보존했다고 한다. 리전트the Regent’s 공원을 지나자 금세 대영박물관이다. 주차할 곳을 찾아 주변을 돈다. 건물 전체를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처럼 공들여 치장한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19세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러셀Russell 호텔이다. 러셀 스퀘어를 한 바퀴 돌아봐도 주차할 공간은 찾을 수가 없다. 생각을 바꾼다. 박물관에서 조금 떨어진 대영도서관the British Liberary 근처로 올라가 차를 주차한다.


도서관에서 박물관은 1킬로미터 남짓 떨어져 있다. 유스톤Euston 도로를 따라 걷는다. 길 건너 여인상 기둥caryatids 조각이 낯이 익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에레크테움the Erechtheum 신전에 있다는 그것과 똑 닮았다. 그리스 여인상 기둥이 있는 곳은 세인트판크라스St Pancras 교회다. 원래부터 고대 교구가 있던 자리로 오래 방치되고 있던 곳을 1819년에 리빌딩했다. 런던의 자랑인 세인트폴 대성당 다음으로 재건 비용을 많이 들였다고 한다. 


교회 재건은 건축가 Henry William Inwood에게 맡겨졌다. 그때 마침 그는 아테네에 있었다. 그는 여인상 기둥의 주형과 출토된 파편들을 가지고 귀국한다. 당시에는 고대 그리스 건축 양식이 꽤나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런던의 여인상 기둥이 아테네의 그것과 다른 점은 꺼진 횃불과 텅 빈 항아리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를 소개하는 브로셔에는 죽은 자의 수호자라는 그들의 역할을 좀 더 충실히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적어놓았다.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그 유명하다는 UCL(University College London) 앞을 지난다.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조금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무런 감흥도 반응도 없다. 부모 된 사람의 자기만족이다. UCL은 런던 최초의 대학이다. 1826년의 세워졌다.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사상이었던 제레미 밴덤의 공리주의에 고무된 설립자에 의해서였다. 이런 전통에 힘입어 UCL은 종교나 출신에 상관없이 학생들을 입학시킨 영국 최초의 대학이 되었다.  UCL에 무관심하던 아이들이 다윈Darwin이라는 이름이 붙은 바로 옆 빌딩에 관심을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이고 반응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빌딩은 과거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이 살았던 곳으로 지금은 연구소로 쓰이고 있다.


Great Court in the British Museum


러셀 가로 접어들어 몇 걸음을 내딛자 대영박물관의 모습을 보인다. 전형적인 그리스 양식의 파사드가 이국적이다. 높이가 14미터에 이르는 이오니아식 기둥이 좌우 균형을 제대로 맞췄다. 박물관에 들어선다. 새롭게 리모델링된 그레이트코트Great Court의 압도적 풍광에 입이 쩍 벌어진다.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이다. 3,312개의 유리를 통과한 밝은 빛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그레이트코트의 유리 지붕은 평면적이지 않다. 자연스럽지만 정형적이지 않은 굴곡이 묘한 입체감을 선사한다. 유리 하나하나의 크기와 모양을 달리 한 덕분에 비현실적인 공간이 빚어진 것이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유리 지붕의 굴곡을 따라 하얀 구름이 흘러간다.


그레이트코드 중앙에는 원형도서관이 중심을 잡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1997년까지는 그랬다. 1857년 Sydney Smirke가 건축한 원형 건물은 1997년까지 대영도서관British Liberary으로 쓰였다. 이후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2000년에 이르러 재개장했다. 지금은 도서관이 아니라 기획전이 열리는 전시실로 쓰인다. 오늘은 ‘국민국가의 기억들’이란 주제를 가진 독일 관련 전시와 중국 명나라를 지칭하는 Ming이라는 제목의 중국 관련 전시가 열리고 있다. 


나는 90년대 초반에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원형의 대영박물관에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은 잊을 수가 없다. 옅은 푸른빛의 넓고 높은 돔 천장과 원형으로 빼곡하게 들어찬 장서들의 웅장하고도 장엄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아우라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 공간은 시간을 저장하기도 한다. 150여 년간 대영도서관이란 공간에서 일어났던 지난 역사들이 공간의 소멸과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곳을 거쳐간 쑨원, 마르크스, 오스카 와일드, 하이에크, 브람 스토커, 간디, 키플링, 조지 오웰, 버나드 쇼, 마크 트웨인, 레닌, 코난 도일 같은 이들의 추억도 함께 잊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옛 원형도서관에서 내려다보는 그레이트코트는 여전히 아름답다. 또 다른 아름다운 면모를 뽐내고 있다. 그레이트코트의 벽체에는 과거와 현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기존 박물관 벽에 새로운 대리석을 덧 데는 방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새로운 대리석은 1753년에 대영박물관을 지었던 대리석과 똑같은 장소에서 채굴된 원석을 사용해서 만들어졌다. 경계는 분명하지만 색조와 분위기는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그레이트코드 한쪽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한다. 그리고 가족들과 잠깐 헤어진다. 몇 개월 만에 경제 활동을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얼마 전 느티나무 도서관이란 곳에서 요크의 도서관에 관한 글을 청탁해 와서 원고를 보낸 적이 있다. 나의 글을 좋게 봤던지 영국의 도서관이라는 주제로 연재를 해보자는 제안이 왔다. 후속 원고의 주제로 선택한 것이 대영도서관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대영박물관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대영도서관을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가이드 투어 시간에 맞춰 아내와 아이들을 박물관에 들여보내고 나는 박물관을 나선다.  


혼자서 런던의 거리를 걷는다. 박물관에서 도서관까지는 혼자서는 10분이면 충분하다. 대영도서관은 1972년 영국도서관법British Library Act을 설립 근거로 탄생했다. 1982년 찰스 왕세자가 도서관 건물 초석을 놓으면서 시작된 공사는 1997년에 이르러서야 마무리되었다. 지상 8층, 지하 6층의 건물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아하다. 


처음에는 새로운 대영도서관도 원형의 형태를 유지하려 했다고 한다. 대영도서관은 원형도서관이라는 오랜 상식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이전 대영도서관의 아우라는 강력했다. 그럼에도 최종적으로 선택된 디자인은 배의 형상이었다. 지식의 넓은 바다를 항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건물은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거대한 배의 형상을 모던한 감각으로 단아하게 만들어졌다. 배의 갑판에 해당하는 도서관 건물 뒤로 유서 깊은 세인트 판크라스 역사가 겹쳐져서 보인다.


Newton after William Blake & British Library


BRITISH LIBRARY라는 타이포그래피로 채워진 예술적인 입구를 지난다. 입구 정면에 있는 예술적인 동상에 시선이 머문다. 허리를 숙여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의 형상이다. <Newton after William Blake>라는 아리송한 제목의 동상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조각가 파올로찌Eduardo Paolozzi(1924~2005)의 작품이다. 처음에는 만유인력으로 초자연적이고 탈우주적인 현상에 대한 과학적 접근의 단초를 제공한 뉴턴을 기리는 동상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 형상이 기괴하다. 


동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를 알 필요가 있다. 시인이자 화가로 살았던 그는 살아서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세기에 들어서야 뒤늦게 영국의 낭만주의 흐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인물이다. 블레이크는 <Newton>이란 그림을 1795년에 그렸다. 캄캄한 바닷속 바위에 앉아 컴퍼스로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 뉴턴을 그린 작품이다. 


블레이크는 뉴턴의 발견 이후, 모든 것을 만유인력으로 환원해서 인식하려는 당시의 세계관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과학은 두 물체 사이에 어떻게 인력이 작용하는지 설명할 뿐, 그 이유는 설명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뉴턴이 블레이크는 못마땅했던 것이다. 상상력과 직관을 강조했던 블레이크에게 뉴턴은 작은 컴퍼스로 세상을 재단하려는 무모한 사람으로 비쳤던 것이다. 그림 속 뉴턴은 바다 밑 어둠 속에 고립되어 있다. 200년이나 지난 지금, 파올로찌가 만든 뉴턴의 인체는 마치 공각기동대에 나오는 기계 인간처럼 진화해 있다. 블레이크의 시대보다도 훨씬 견고해진 과학 결정론에 대한 경고처럼 보인다.


과학이나 이성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영역의 세계, 블레이크가 강조했다는 상상력과 직관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자기 안의 지성을 갈고닦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자기 밖의 세계에 대한 이해와 수용 없이는 우리는 고립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파올로찌가 200년이나 지난 블레이크의 그림을 다시 꺼내어 대영도서관 앞에 펼쳐놓은 이유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탐험한다는 대영도서관의 야심 찬 계획 앞에 지식은 유한한 것이라는 역설을 작품은 직시하게 만든다. 


분명 파올로찌는 200년 전 블레이크를 닮았다. 그는 상상력은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인간 존재 그 자체가 상상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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