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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Karl Jun 21. 2021

전 지구적 보물

런던 3

6.

도서관에 들어선다. 왼쪽에는 흔한 기프트샵이 있다. 오른쪽에는 책을 형상화한 거대한 벤치가 커다란 족쇄를 열쇠고리처럼 매달고 있다. 조각품처럼 기품이 있다. 완만한 계단이 있는 중앙으로 시선을 옮긴다. 거대한 빌딩이 실내에 솟아 있다. 단아한 외관에 이런 거대한 공간을 숨기고 있는 줄은 몰랐다. 


우뚝하고 솟은 빌딩의 실체와 대면한다. 6층 높이의 유리 서가가 탑을 이루고 있다. 서가 안에는 국보급 고서적들이 가득하다. 비주얼이 압도적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잠깐 넋을 잃는다. 빌딩은 '킹조지 컬렉션 the King’s Library Tower'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컬렉션의 고서적들은 조지 3세(1790~1820)가 수집한 자료들로 한 권 한 권이 희귀본이면서 초판본들이다. 장서는 65,000점, 소논문은 19,000점에 이른다. 15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영국과 유럽, 북미에서 출판된 모든 책들을 망라하고 있다. 때문에 킹조지 컬렉션은 계몽주의 시대, 가장 위대한 컬렉션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King's Library Tower


타워 주변에는 다양한 공간들이 자유롭게 포진하고 있다.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간식을 먹고, 토론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떠는 공간들이다. 컬렉션은 과거나 권위의 상징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자유의 공간으로 스며들어 있다. King’s Library Tower가 뿜는 엄숙함과 권위에 압도당한 사람은 나 같은 관광객들 뿐이다. 나는 층을 옮겨가며 타워를 올려다보기도 했다가 내려다보기도 한다. 어디서 봐도 한결같이 아름답다. 20여 년 전, 대영박물관의 원형도서관에서 느꼈던 아우라와는 같은 듯 또 다르다.  


리딩룸을 찾아간다. 영국 운전면허증으로 본인임을 증명하고 출입증Reader Pass을 받는다. 리딩룸 이용은 꽤나 까다롭다. 사운드 오프 된 개인용 노트북과 모바일 외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연필밖에 없다. 대출도 촬영도 불가다. 가방이나 우산은 물론 외투를 입고 입장할 수도 없다. 반입이 허용되는 연필이나 지갑 같은 소지품도 반드시 도서관이 제공하는 규격화된 투명한 비닐백에 넣고 입장해야 한다. 이방인에게는 신기방기한 입장 의식이다.


리딩룸은 럭셔리 그 자체다. 1,200개의 열람석 책상과 의자는 모두 참나무 원목으로 제작되었다. 마감재는 전부 고급스러운 가죽이다. 지식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이 배는 분명 호화 유람선임에 틀림없다. 높은 천장에선 햇살이 쏟아진다. 리딩룸의 넓은 공간 전체가 자연광을 한껏 머금었다. 가만히 한켠에 한동안 서서 멋진 공간 속을 유람한다. 그리고 여기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또 다른 마르크스와 오스카 와일드와 마크 트웨인을 상상해본다.


대영도서관 투어에서 마지막으로 남겨둔 곳을 향한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 도서관의 역할도 크게 바뀌고 있다. 이제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고 빌리는 본래의 기능을 넘어 문화를 향유하고 만드는 공간이 되고 있다. 250석을 가진 콘퍼런스 센터에선 각종 공연과 행사들이 쉼 없이 펼쳐진다. 대영도서관만 해도 갤러리가 3개나 된다. 그중에 존 리트블랫 갤러리Sir John Ritblat Treasures Gallery는 이곳의 보고 중 보고다. 


Sir John Ritblat Treasures Gallery


처음 만난 보석은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컬렉션이다. 그들의 작품이 아니라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그들이 남긴 메모와 습작 노트들을 전시하고 있다. 작품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감동과 희열이 밀려온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노력의 징표들인 까닭이다. 최초로 왕권 제한을 법으로 명시한 마그나 카르타 원본을 둘러보고, 모차르트가 죽기 직전까지 들고 다녔다는 음악 노트를 감상한다. 셰익스피어가 자필로 쓴 문장도 연습장에 적혀 있다. 세상에 딱 한권만 존재한다는 연습장이다. 책이나 관념 속에만 존재하던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재구성되는 신기한 경험들이다. 


진귀하고 놀라운 문서들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구텐베르크가 찍어낸 성경, 헨델의 <메시아> 친필 악보, 루이스 캐럴이 딸에게 선물하려고 썼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초판본, <오만과 편견>의 제인 오스틴이 어릴 적 사용하던 습작 노트, 버지니아 울프, 오스카 와일드, 샬롯 브론테 작품들의 초판본들과 찰스 다윈과 마르크스의 편지, 존 레넌의 습작 노트와 폴 메카트니가 친필로 쓴 Yesterday 가사들이 눈앞에 마구 펼쳐진다. 자료들의 진위가 진심으로 의심될 만큼 엄청난 자료들이다. 존 리트블랫 갤러리는 도서관의 보물Treasure of the British Library이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하다. 전 지구적 보물이다.

  

각종 브로셔들을 챙겨 들고 도서관을 나선다. 이제 가족과 잠시 떨어진 혼자만의 런던 여행을 멋지게 마무리할 장소를 찾아갈 차례다. 내가 혼자 배낭여행을 떠나왔던 90년대 초반, 당시 유럽 배낭여행객들에게 영국은 접근성과 번잡함 때문에 종종 배재되곤 했었다. 그럼에도 굳이 런던 여행을 고집했던 이유였던 곳이다. 아침에 주차한 곳에서 차를 찾아 런던 북쪽으로 20분가량을 달린다. 수십 년 전과 거의 변한 것이 없는 하이게이트 공동묘지Highgate Cemetery에 닿는다. 청년의 내가 저 앞에 서 있던 모습을 떠올린다. 


런던의 외곽 끝에 있는 하이게이트 역에 내려 한참을 걸어왔었다. 그렇게 늦은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묘지의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출입 시간이 정해져 있으리란 생각은 전혀 못했었다. 쭈뼛거리고 있는 내 앞으로 런던의 캡 택시가 멈췄다. 젊은 일본인 커플이 내리더니 닫힌 문을 확인하고는 타고 왔던 택시를 타고 쉥하고 가버렸다. 나는 다시 한참을 걸어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갔다가 다음날 아침에 다시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걸어 이곳에 다시 왔었다. 


내가 하이게이트에서 만나고 싶었던 인물은 대영도서관과도 인연이 깊다. 1849년 런던으로 도피해서 1883년 사망에 이르는 동안, 대영도서관은 그의 연구실이나 다름없었다. 가장 먼저 도서관에 입장해서 가장 나중까지 연구에 몰두했었다. 연구에 매진하다가 실신해서 들것에 실려나간 것도 여러 번이었다고 한다. 도서관 마감 시간을 넘기는 것도 일쑤였다. 고단한 망명객에게 대영박물관의 원형도서관은 유일한 안식처였다. <자본론> 같은 그의 저작들이 대부분 그곳에서 잉태되었다. 1990년대 초반, 청년의 내가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서 찾고자 했던 사람은 서양 지성사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마르크스Karl Marx(1818~1883)였다.   


Highgate Cemetery

 

청년의 내가 왔을 때는 없던 입장료가 생겼다. 무려 4파운드다. 그때처럼 오솔길을 따라 공동묘지로 걸어 들어간다. 나보다 먼저 마르크스를 찾은 손님이 오솔길 끝에 보인다.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젊은 커플이 마르크스의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동유럽 사람으로 보이는 이들이 떠난 자리에 서서 그때처럼 마르크스를 본다. 커다란 흉상 아래로 사람 키높이의 대리석 받침이 있다. 위쪽에는 전 세계 노동자들은 단결하라WORKERS OF ALL LANDS UNITE는 문장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고, 중간에는 KARL MARX라는 묘비의 주인 이름이 비슷한 크기로 적혀 있다. 그 밑으로 마르크스와 가족들의 연혁이 자그맣게 새겨져 있다. 


마르크스의 흉상 제일 아래쪽에는 당시 청년이던 내가 무릎을 쳤던 그 유명한 슬로건이 적혀 있다. The philosophers have only interpreted the world in various ways. The point however is to change it.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만 해왔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이론보다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 중에 이보다 명확하고 가슴을 뛰게 만드는 문장은 없었다. 청년을 흥분시켰던 문구를 장년은 담담하고 차분하게 다시 읽는다. 


마르크스 묘비 맞은편에는 그때처럼 스펜서Herbert Spencer(1820~1903)의 묘가 있다. 풀숲에 가려 일부러 찾지 않으면 찾을 수가 없다. 스펜서는 동물의 세계뿐 아니라 사회도 약육강식이 자연스러운 법칙이라는 사회진화론을 주창했다. 당시는 <진화론>의 유명세에 올라타 엄청난 인기를 누렸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지배 권력의 이론적 무기로 널리 읽혔다. 마르크스와 대척점에서 세상을 보던 스펜서의 무덤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모습은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시 봐도 역설적이다. 오늘날 스펜서는 그의 무덤처럼 점점 잊히고 있지만,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몰락 이후에도 자본주의의 약점을 예리하게 고찰한 학자로 계속 읽히고 있다. 


하이게이트 공동묘지를 한 바퀴 돌아 입구로 돌아간다. 안내소에서 포스트를 팔고 있다. 마르크스의 흉상이 주인공이다. 유럽의 대표 명지인 이탈리아 파블리아노 종이에 손으로 밀어서 스크린 프린트한 포스터라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오픈 에디션 Open Edition 방식이지만, 작가와 전문가를 통해 정식 에디션으로 퀄리티를 보장받는다며 홍보한다. 액자도 없는 40*30cm 사이즈를 60파운드나 받고 팔고 있다. 마르크스 덕분에 하이게이트 공동묘지는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늦은 오후의 멋진 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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