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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Karl Jun 23. 2021

역사적이면서 로맨틱한

런던 4

7.

오늘은 런던을 가이드 투어 하는 날이다. 크리스마스 여행을 준비하며 파리와 런던을 의미 있게 둘러볼 방법을 오랫동안 찾았었다. 나와 아내만의 여행이었다면 발 닿는 대로, 시간 나는 대로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짜리 아들들이 있다. 


세상은 넓고 다양한 형태의 가이드 투어들은 정말로 많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중에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 유로 자전거나라였다. 지식가이드라는 확실한 컨셉으로 기존 투어와 명확한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 맘에 들었다. 현지의 한인 또는 유학생들을 가이드로 선발해서 전문성을 강화한 것이다. 사실 몽마르뜨나 에펠탑 같은 명소만 여행한다면 굳이 가이드가 필요 없다. 문제는 루브르나 오르세 같은 곳이다. 전문적인 가이드가 없으면 개 발에 편자가 되기 십상이다. 


파리에서도 가이드 투어를 했었다. 특히 오르세가 포함된 두 번째 투어가 좋았었다. 열정적인 지식가이드 덕분에 아이들은 온종일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유지했었다. 현대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다른 가이드 투어에서는 좀체 들을 수 없는 풍성한 이야기들이 매력적이었다. 프랑스혁명 같은 역사적 사실들을 파리의 명소와 연결시켜 공간에 대한 몰입감을 높여준 것도 인상적이었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만큼 확실한 투어였다. 파리의 루브르와 오르세를 위해 그랬던 것처럼 런던에서는 대영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를 그렇게 투어하기로 정했다. 오늘 투어는 내셔널 갤러리를 포함해서 런던 중심가를 걸어서 여행하는 런던 클래식 A투어다.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워킹 투어라 자동차는 필요 없다. 우산을 펼쳐 들고 길을 나선다. 버스를 타고 뉴몰든에 내려 지하철을 탄다. 9시 30분 웨스트민스터 역이 집결 장소다. 처음 런던의 지하철을 탔던 오래전 그날이 떠오른다. 배낭여행의 첫 도착지가 런던이었다. 늦은 밤 히드로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지하철을 탔었다. 좁고 어둡고 침침하고 축축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오늘 런던 지하철의 내부는 밝고 넓다. 


지하철은 영국의 발명품이다. 1890년 런던에 건설된 튜브tube가 최초다. 튜브의 깔끔한 변신이 반갑기도 하지만 역사적이면서 로맨틱한 분위기가 사라져 가는 것은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라인과 라인을 연결하는 오래된 지하 통로에는 그 시절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어 반갑다. 미로 같은 통로를 지나 환승한 지하철 안은 파란색 손잡이 기둥들로 환하게 꾸며져 있다. 뉴몰든에서 처음 탔던 지하철은 노란색 기둥이었다. 라인마다 다른 컬러를 사용해서 기둥을 구분하는 모양이다.  


어느덧 웨스트민스터 역으로 가는 환승역인 빅토리아Victoria 역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빅토리아 역에 지하철이 서질 않는다. 당황하지 않고 다음 역인 그린파크Green Park 역에서 환승한다. 이번에는 웨스트민스터 역을 그냥 지나친다. 워털루Waterloo 역에 내려 웨스트민스터 역으로 빠르게 걷는다.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늦었다. 우리보다 더 조바심이 난 자전거나라 직원이 서둘러 우리를 맞는다. 웨스터민스터 역이 속한 District 라인 전체가 잠시 멈췄다는 이야기를 여기 와서 듣는다. 변변한 안내문이 없는 것도 신기하지만, 불평하는 사람 하나 없는 웨스트민스터 역내의 평온한 풍경에 살짝 짜증이 난다.


하루를 함께 보낼 투어 멤버들은 빅토리아 타워 가든에 모여 있다. 프랑스 칼레에서 이미 봤던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들’ 앞이다. 지식가이드의 열정적인 강의를 경청하는 멤버들의 모습이 진지하다. 우리를 발견한 지식가이드가 웨스트민스터 구경을 끝내고 방금 이곳에 모였다는 짧은 설명을 덧붙이고는 하던 강의를 계속 이어간다. 


The Burghers of Calais

칼레는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1347년 에드워드 3세가 칼레를 점령한다. 영국 군대에 1년 가까이 거칠게 저항했던 칼레의 시민들은 학살당할 위기에 처한다. 영국 왕은 칼레의 지도급 인사 6명을 넘기면 시민들은 살려주겠다고 제안한다. 칼레의 주요 인사 6인은 죽음을 향해 서로의 몸을 묶고 교수대 앞으로 나아간다. 로뎅은 500여 년 전에 벌어졌던 이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어 19세기에 작품으로 부활시킨다. 


작품은 그들을 영웅의 모습으로 그리지 않았다. 죽음의 공포에 질려 서로를 의지하고 걸어가는 비통한 인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분명 칼레 시청사 앞에 있던 '칼레의 시민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분명한 주제 의식과 치욕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굳은 다짐처럼 보였었다. 그런데 웨스트민스터 앞에서 보는 로댕의 작품은 느낌이 왠지 다르다. 마치 전승국의 전리품 같다. 가해자의 나라 영국에서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나 미래 세대를 위한 교훈적 메시지를 명판에 담았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거푸집에서 나온 같은 작품이지만, 작품이 서 있는 공간에 따라 의미가 이렇게나 달라진다는 사실이 놀랍다. '칼레의 시민들'은 전 세계적으로 딱 12점만 진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공식 승인을 받은 12번째 주물이 로댕갤러리에 있다.  


빅토리아 타워 가든 속으로 들어간다. 지식가이드가 낯선 분수 앞에 멈춘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충분히 기념할 가치가 있는 분수라며 설명을 잇는다. 낯선 분수는 1834년 노예 해방을 선언한 포웰 벅스톤Fowell Buxton과 그와 연대했던 사람들을 기리는 기념 분수다. 보통 노예해방이라고 하면 링컨을 떠올린다. 하지만 벅스톤의 노예 해방 선언은 링컨의 그것보다 30여 년이나 앞선다. 해방시킨 노예의 숫자도 링컨은 40~50만 명이지만, 벅스톤의 선언으로 해방된 노예는 75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노예무역으로 세계의 부를 축적한 영국이다. 이런 사실로 면죄부가 주어지진 않겠지만,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빅벤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버킹엄 궁으로 장소를 옮긴다. 근위병 교대식에 맞추느라 걸음이 바쁘다. 버킹엄 궁의 근위병 교대식은 영국의 히트 상품이다. 이미 엄청난 인파가 광장 주변을 겹겹이 에워싸여 있다. 사람들 사이로 겨우 시아를 확보한다. 마침 엘리자베스 여왕이 차를 타고 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근위병 교대식을 수없이 봤다는 가이드도 여왕의 행차는 처음 본다며 놀라워한다. 말을 탄 근위병들이 버킹엄 광장을 이리 지났다가 저리 지났다가를 몇 번 하더니 행사는 금세 끝이 난다. 


광장을 빙글 돌아 세인트제임스파크 입구에 들어선다.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어 있다. 그 사이로 곧게 뻗은 오솔길을 걷는다. 런던의 심장부에 이렇게 큰 공원이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부럽다. 지식가이드는 공원 중앙에 있는 길쭉한 호숫가로 우리를 불러 모은다. 점심을 먹고 한 시간 후에 다시 모이자고 한다. 간단히 주전부리로 끼니를 해결하고 백조들과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Horse Guards


오후 첫 방문지는 호스가드Horse Guards다. 지식가이드는 무슨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것처럼, 호스가드의 퍼레이드가 버킹엄 궁의 근위병 교대식보다 더 훌륭하다고 귀띔한다. 입구를 지키는 근위기병의 자태가 예술적이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말 위에 앉아 오른쪽 어깨에 칼을 놓고 근엄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근위기병의 황금색 투구와 빨간 외투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아이들이 근위기병 주변을 움직인다. 말의 머리가 아이들을 쫓아서 요리로 조리로 흔들린다. 하지만, 근위기병은 마네킹처럼 미동도 없다. 호스가드 벽에 걸린 문구를 보고 아이들을 달랜다. Beware! Horses may kick or bite! 말이 종종 사람을 물거나 걷어차는 일이 있는 모양이다. 


1745년에 지어진 역사적 건물로 들어선다. 원래 이곳은 기병들이 막사와 마구간으로 쓰던 건물이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호스가드는 그것을 허물고 여왕 친위대의 훈련을 목적으로 새롭게 만들어졌다. 곧이어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멋진 복장의 기병들이 절도 있는 움직임을 뽐낸다. 일종의 열병식이다. 지식가이드의 말대로 버킹엄의 그것보다 훨씬 근사하다. 


역사적으로 호스가드는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생일잔치가 열렸고, 세계대전 시기에는 영국군 사령부로 쓰였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는 비치발리볼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시대가 요구하는 다른 쓰임새를 호스가드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래도 로얄Royal이 붙은 건축물에서 비치발리볼을 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윤여정 배우의 말마따나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snobbish)' 영국 사람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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