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13
글은 쓰고 싶을 때 쓴다. 주제는 그때그때 정한다. 그렇게 쓴 글들은 매번 주제가 다를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완성된 글이 나오기 이전에 많은 미완의 글들을 빙빙 돌다가 도착한다. 게으른 글쓰기, 게으른 작가이다.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다던데 시기보다는 기분을 탄다. 그렇게 나온 글들은 몇 안된다. 더군다나 긴 호흡의 글을 쓰기 원하지만, 짧은 내 호흡으로는 항상 만족하지 못하기에 차라리 곱게 다져서 그 글을 요약하려 노력한다. 그렇게 나름의 방법으로 글쓰기에 맞선다.
기능성과 예술성, 그 사이의 외줄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필요 이상의 예민함으로 몇 개의 단어와 의미를 눌러 담고 던져둔다. 그런 몇 번의 과정이 지나면 거의 탈진상태이다. 그리곤 미완의 글들을 서랍장에 넣어두고 한동안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러곤 마음이 복잡할 때면 서랍장으로 다시 돌아와 그때의 감정을 천천히 되새겨본다.
결과물을 본다면 게으르다는 말을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매일매일 쓰는 노력에 비해 글은 드문드문 나온다. 인풋과 아웃풋으로 보는 글쓰기는 완벽한 비효율의 행위이다. 내가 고민한 것들이 시간이 지나며 작게 느껴지고, 쉽게 썼던 단어들은 돌아와서 보면 텅 빈 검정 테두리에 불과하다. 지우고 쓰고 몇 번 반복하다 보면 다시 제자리다. 글쓰기 습관 혹은 요령 같은 효율적인 말들은 내게 해당되지 않는지, 아니면 소비한 시간이 부족한지 모르겠다. 시간을 교환한 만큼 늘어가는 것이 능력이지만, 언제나 주도권은 나에게 없었다. 어느 순간 내가 썼던 글들이 나를 써 내려가고 있다. 그렇게 관성으로 글을 쓰게 된다.
게으름 인정하는 편이 언제나 편리한 변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