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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스 Dec 15. 2023

탄생이 “외상”이 아니라 “축복”이길

비인간 동물의 탄생은 어떠할까?

이 글의 주인공이 될 아기 강아지들!

지금 우리 집에는 진도믹스 강아지 두 마리가 와 있다. 이들은 원래 마을 지인 분이 데려온 1살 강아지들로 원래는 비닐하우스 안에 묶여 살고 있다. 숨이와 눈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반가워 꼬리를 프로펠러마냥 흔들고 통통 뛰어오르지만 대부분의 시간 그들은 혼자 있다. 애정도 듬뿍 못 받고, 산책도 못 하고 있다. 예방 접종이나 심장 사상충 예방과 같은 제대로 된 돌봄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속상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보호자가 중성화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숨이만 수술된 사이 눈이가 임신해버렸다. 시골 마을에 풀려 돌아다니는 어느 수컷 개와 교미가 된 것이겠지. 배가 점점 부풀고 있는 지금, 곧 출산할 것 같은 눈이에게 비닐하우스는 영 적합한 출산 환경이 아닐 것 같아 일단 우리 집으로 데려 왔다. 출산이라도 좋은 곳에서 하게 하려는 부족한 노력이다. 그러나 숨이와 눈이도 제대로 돌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 태어날 새끼 강아지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배가 부풀어질수록 걱정과 한숨도 늘어간다. 새롭게 세상에 나올 생명들의 삶에 걱정이 앞선다.

왼쪽 숨이 / 오른쪽 눈이 (엄마 개)

“탄생은 외상(trauma)이다.” 미학자 양효실은 책 <불구의 삶, 사랑의 말>에서 말한다. 그는 정신분석학 이론을 토대로 동물은 스스로 생존해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인간만이 “외상”을 가진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목숨은 처음부터 타인의 것이므로, 다른 인간이 태어난 인간을 떠맡지 않는다면 그가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탄생이란 그 자체로 충격, 즉 “외상”이 된다. 하지만 나는 이번 눈이의 임신, 출산 과정을 지켜보며 이제는 동물에게도 ‘탄생이 외상’이라는 말이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비인간 동물이 가축화/반려동물화된 현대 인간 중심적 사회 속에서 동물 또한 인간의 개입이 없다면 살아남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반려동물부터 말해보겠다. 경기도의 한 동물 보호소에서 안락사/자연사한 개들이 올해 10월에만 414마리였다. 그 중 자연사를 가장 많이 한 존재들은 아기 강아지였다. 태어나자마자 죽은 것이다. ‘반려동물화’되어 인간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개는 태어나서 어미 개나 인간의 돌봄이 없다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혹 목숨을 부지하더라도 (시골인 경우 특히) 숨이와 눈이처럼 ‘분양’되어 평생을 묶여 살 가능성이 높다. 중성화가 되지 않아 또 같은 운명의 새끼들을 가지게 되거나, 무수한 수가 유기되고 안락사 된다. 개농장 혹은 번식장에 끌려가거나 일평생 방치나 학대에 노출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외력에 의한 손상, 이것이 “외상”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에 의해 직접적인 외상을 입는 사례를 살펴보자. 공장식 축산의 동물들에게는 태어나자마자 글자 그대로 ‘죽을 운명’이 지워진다. 태어난 직후 죽거나(방치사, 압사, 영양결핍 등), 몇 달 뒤 살이 찌워진 채 도살되거나 둘 중 하나다. 세상에 나와 바로 죽지 않더라도 이들은 인간에 의해 잔인하고도 심각한 ‘외상’을 입는다. 돼지들은 새끼 때부터 마취도 없이 귀와 꼬리, 이빨이 잘린다. 좁은 우리 속에 돼지들이 잔뜩 갇혀 사육되다 보니 스트레스 때문에 서로를 깨물기 때문이다. 이는 ‘돼지고기’로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인간에 의해 의도적으로 ‘장애’를 입는다. 소나 닭도 마찬가지다. 송아지들은 출산 후 바로 어미와 분리되어 좁디좁은 우리에 갇힌다. 자신의 몸을 돌릴 수도 없는 숨 막히는 우리에서 그들은 ‘연한 스테이크’가 될 때까지만 살아 있을 수 있다. 닭은 병아리 때부터 부리가 잘리고 A4 용지 반도 안 되는 크기의 뜬 장에서 짧은 삶을 산다. 이들에게는 탄생이 곧 외상이라는 말이 어떠한 비유가 아니다. 완전한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절대적이고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육식’을 하고자 하는 탐욕 때문에 만들어진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태어난 직후!
첫째 탄생!

이 글을 쓰던 날 새벽, 다섯 명(命, 목숨 명 자를 일부로 택하여 쓴다)의 아기 강아지들이 태어났다. 한 시간이 넘게 온몸을 부르르 떨며 진통을 견디던 눈이는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내놓았다. 왈칵 터지는 새끼 강아지의 울음은 생명의 경이, 그 자체였다. 눈이는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이 한 마리 한 마리를 핥고 쓰다듬고 젖을 내어주었다. 이 사랑스러운 꼬물이들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비인간 동물의 탄생이 글자 그대로 “외상”이 될 확률이 너무나도 높은 세상이 원망스럽다. 하지만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고자 한다. 뜻이 맞는 친구들과 입양 보낼 계획부터 세워본다. 부디 어젯밤 탄생이 “외상”이 아니라 “축복”이길 소망한다.

태어난 지 이틀 째!
젖을 주고 있는 눈이

참고자료

https://www.instagram.com/p/C0JENG-rn8z/?igshid=MzRlODBiNWFlZA==      


*숨이와 눈이, 그리고 아기 강아지들 입양 홍보 인스타그램을 공유합니다! 

많은 관심과 홍보 부탁드립니다! 입양 문의!! 기다립니다!!

https://www.instagram.com/soomnun_and_puppies/ 


글쓴이: 토란

책에 파묻혀 사는 비건 퀴어 에코 페미니스트.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사랑스러운 존재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모든 존재의 평화를 바라며 글을 읽고 쓰고 목소리 내고 있습니다. 현재는 제주 강정마을에서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평화, 동물권, 페미니즘, 환경, 퀴어 등 온갖 경계를 넘나드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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