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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

4화

by 솔스

1화 그 많은 벌레들은 다 어디에 있나

2화 그 많은 벌레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3화 벌레의 권리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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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벌레 중에서도 유독 바퀴벌레와의 에피소드가 많은 편이다.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와 다닌 학교가 바퀴벌레가 많기로 유명한 지역들이었다. 나는 하필 시력도 좋아서 벌레의 존재와 그의 작은 움직임도 너무 잘 알아차리는 것이 문제였다. 남들에 비해 나는 바퀴벌레를 정말 많이 마주쳤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바퀴벌레를 볼 일이 별로 없다는 것, 또 누군가는 태어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유전자의 영향인지 학습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바퀴벌레를 그렇게나 많이 봤어도 나는 여전히 바퀴벌레와 마음의 거리가 멀다. 존재를 알아차리는 순간은 항상 가슴이 철렁하고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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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알바를 포함해 식당과 요식업 일을 많이 해왔는데, 식당 일을 하면서도 참 많이 봤다. 식당이 무조건 더러워서 바퀴벌레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을 하면서 알았다. 벌레의 유무가 곧 식당 청결도와 연결이 되는 사회 인식 속에서 바퀴벌레가 식당에 돌아다니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식당이 있는 곳에는 무조건 바퀴가 있다. 아무리 내 주방과 매장을 청결하게 관리해도, 방역 업체를 불러도 들어올 바퀴는 밖에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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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식당에 바퀴벌레가 돌아다닌다면 비건 영업주가 그 바퀴벌레를 죽여야 하는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은 내가 매우 좋아하는 어느 비건 식당의 후기 글을 보고 난 후였다. “식당 천장에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데도 사장님은 가만히 있더라”는 후기에는 위생 이슈로 다시 그 식당을 방문하지 않을 것이라는 손님의 뉘앙스가 다분히 느껴졌다. 이전까지는 나 역시 그래도 식당인데, 바퀴벌레가 나타나면 죽여야 하지 않나 하고 단순히 생각했었는데, “사장님이 비건이면 안 죽이는 경우도 있더라”는 후기의 답글을 읽고 지금까지의 상식이 깨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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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방역”을 하고 비건 식당을 “청결하게” 잘 운영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비건 음식을 맛보게 하고 가치관을 알리는 것이 더 크고 합리적인 것인지, 아니면 신념에 따라 다른 생명의 삶을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더 중요한지 돌고 도는 고민을 했다. 공교롭게도 실제로 내가 식당 사장이 되어 이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는데, 막상 내가 당장 손님에게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사장이 되어 보니 가치관이고 신념이고 하는 고민이 무색했다. 후기를 관리하고 손님을 끌어들이는 게 내 먹고 사는 문제와 바로 연결이 되어있는지라, 결국 방역 업체를 불렀던 슬픈 결말로 끝이 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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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요리와 이별하고 손님으로 식당을 찾아다니고 있는데, 모든 손님들이 식당에 바퀴벌레가 보이는 것을 용인할 수 있는 사회라면 어떨까 상상을 한다. 나아가서 더 이상 바퀴가 끔찍한 해충으로 구분되지 않는, 나만의 이상적인 비건 세상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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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바퀴벌레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내용들을 추려 공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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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바퀴벌레를 싫어하는 이유가 이것저것 있지만, 사실 인간은 바퀴벌레가 싫다는 결론을 내놓고 이유를 모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그냥 처음부터 바퀴가 미웠던 거다. 가끔 이유 없이 미운 사람이 있듯이. 또 우리는 바퀴가 많다고 불평하고 끔찍해하지만, 이건 그 바퀴를 먹는 천적이 없다는 증거이고 또 이것은 인간에 의해 도시의 생태계 순환 구조가 무너진 결과라는 것이다. 결국 비건인 나와 친구들은 “또 모든 게 인간이 문제”라는 결론에 다다르기는 했다. 그리고 덧붙여서 피해 좀 주면서 살면 어떠냐는 얘기도. 세상에는 완벽한 존재라는 게 없고, 어차피 모든 존재들은 피해를 주고받으면서 어쩌면 그렇게 상호 도움을 주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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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좀 주면 어때. 모두가 피해를 조금씩은 주고받을 수 있는 세상이 참으로 필요하다.




철종

임금님 아닙니다. “철종”이라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음. 벌레 공포증이 있는 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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