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벌레는 몇 마리나 될까? 벌레는 해당 생물들을 “벌레”라고 칭할 명확한 기준이 있지 않고, 인간이 벌레라고 보면 벌레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정확히 개체 수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다. 곤충과 벌레를 혼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흔히 우리가 아는, 가느다란 다리가 있는 곤충은 모두 벌레에 들어간다. [동물계 절지동물 육각아문 곤충강에 속하는 무척추동물]이 곤충의 정확한 개념이다. 앞으로의 글에서는 모든 범주의 곤충과 그 외에 “벌레로 볼 수 있을 만한” 생물들을 통틀어 “벌레”라고 부르려고 한다.
지구상에서 기록된 곤충 종만 동물의 4분의 3을 차지할 정도로 그 수와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 곤충만 따졌을 때는 그 개체 수가 수십 해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벌레들을 평소에 쉽게 보지 못하는 게 어쩌면 더 이상한 일 같은데,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 번쩍번쩍한 콘크리트 건물들로 가득한 도시에서 벌레는 잘 보이지 않는다.
벌레는 쉽게 혐오(disgust)의 대상이 된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한국의 도시 환경에서 벌레는 징그러운 공포의 대상, 혹은 마주치면 죽여 없애버려야 할 공공의 적 정도로 인식이 되어왔다. 물론 자연재해 급의 벌레 무리(메뚜기 떼, 소나무재선충 등)는 생태계 파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 다만 궁극적인 원인은 인간 문명의 발달과 막대한 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 변화에 있지만 말이다.
나 또한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벌레를 마주치면 심장이 철렁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의 벌레공포를 가지고 있다. 일단 내 근처에서 존재를 깨닫게 되면 만지고 죽이는 것은 물론이요, 그 벌레가 있는 곳을 쳐다보는 것조차 힘들고 두렵다.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모기와는 함께 내내 생활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심했을 때는 모기가 내 방에 들어오면 그에게 방을 건네주고 밖으로 도망간 적도 많았다. 내 몸뚱이의 백만분의 일은 될까 싶은 생명체를 보고 왜 온 몸이 얼어붙는 공포감을 느끼는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벌레공포는 ‘특정공포증’이라는 정신의학 진단명 하에 포함된다고 한다.
나 정도의 벌레공포가 아니더라도 인간이 벌레를 무서워하고 기피하는 이유는 진화심리학적, 학습된 혐오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전자는 벌레를 기피하는 심리를 가진 조상들만이 생존해서 살아남았으며, 모든 벌레를 일단 해롭다고 인식하고 피하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관점이다. 후자는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학습하는 벌레의 이미지나 벌레와 관련되어 경험하는 개인적인 일들로 인해 후천적으로 혐오감이 발생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혐오를 조장하는 미디어, 방역 회사 광고 등을 접하면서도 무의식 중에 “벌레는 무섭고 피해야 하는 것”이라는 학습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단순히 인간이 벌레를 기피하기 때문에, 혐오감을 가졌기 때문에 많은 인간들이 살아가는 환경(특히 도시, 작게는 인간이 살아가는 집)에서 다양하고 수많은 벌레를 발견하기 힘들게 된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그 많은 벌레들은 다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사람 한 명당 곤충의 수가 2억 마리라는데, 벌레들은 왜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이며, 우리 눈에 이렇게나 보이지 않는 것도 맞는 일인 것일까?
<이어서>
참고
철종
임금님 아닙니다. “철종”이라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음. 벌레 공포증이 있는 비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