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3화 벌레의 권리는 없나요?
나는 벌레 중에서도 유독 바퀴벌레와의 에피소드가 많은 편이다.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와 다닌 학교가 바퀴벌레가 많기로 유명한 지역들이었다. 나는 하필 시력도 좋아서 벌레의 존재와 그의 작은 움직임도 너무 잘 알아차리는 것이 문제였다. 남들에 비해 나는 바퀴벌레를 정말 많이 마주쳤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바퀴벌레를 볼 일이 별로 없다는 것, 또 누군가는 태어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유전자의 영향인지 학습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바퀴벌레를 그렇게나 많이 봤어도 나는 여전히 바퀴벌레와 마음의 거리가 멀다. 존재를 알아차리는 순간은 항상 가슴이 철렁하고 무섭다.
어쩌다 보니 알바를 포함해 식당과 요식업 일을 많이 해왔는데, 식당 일을 하면서도 참 많이 봤다. 식당이 무조건 더러워서 바퀴벌레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을 하면서 알았다. 벌레의 유무가 곧 식당 청결도와 연결이 되는 사회 인식 속에서 바퀴벌레가 식당에 돌아다니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식당이 있는 곳에는 무조건 바퀴가 있다. 아무리 내 주방과 매장을 청결하게 관리해도, 방역 업체를 불러도 들어올 바퀴는 밖에서 들어온다.
“비건 식당에 바퀴벌레가 돌아다닌다면 비건 영업주가 그 바퀴벌레를 죽여야 하는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은 내가 매우 좋아하는 어느 비건 식당의 후기 글을 보고 난 후였다. “식당 천장에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데도 사장님은 가만히 있더라”는 후기에는 위생 이슈로 다시 그 식당을 방문하지 않을 것이라는 손님의 뉘앙스가 다분히 느껴졌다. 이전까지는 나 역시 그래도 식당인데, 바퀴벌레가 나타나면 죽여야 하지 않나 하고 단순히 생각했었는데, “사장님이 비건이면 안 죽이는 경우도 있더라”는 후기의 답글을 읽고 지금까지의 상식이 깨져 버렸다.
이후로 “방역”을 하고 비건 식당을 “청결하게” 잘 운영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비건 음식을 맛보게 하고 가치관을 알리는 것이 더 크고 합리적인 것인지, 아니면 신념에 따라 다른 생명의 삶을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더 중요한지 돌고 도는 고민을 했다. 공교롭게도 실제로 내가 식당 사장이 되어 이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는데, 막상 내가 당장 손님에게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사장이 되어 보니 가치관이고 신념이고 하는 고민이 무색했다. 후기를 관리하고 손님을 끌어들이는 게 내 먹고 사는 문제와 바로 연결이 되어있는지라, 결국 방역 업체를 불렀던 슬픈 결말로 끝이 났던 것이다.
지금은 요리와 이별하고 손님으로 식당을 찾아다니고 있는데, 모든 손님들이 식당에 바퀴벌레가 보이는 것을 용인할 수 있는 사회라면 어떨까 상상을 한다. 나아가서 더 이상 바퀴가 끔찍한 해충으로 구분되지 않는, 나만의 이상적인 비건 세상을 그려 본다.
친구들과 바퀴벌레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내용들을 추려 공유해 본다.
사람들이 바퀴벌레를 싫어하는 이유가 이것저것 있지만, 사실 인간은 바퀴벌레가 싫다는 결론을 내놓고 이유를 모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그냥 처음부터 바퀴가 미웠던 거다. 가끔 이유 없이 미운 사람이 있듯이. 또 우리는 바퀴가 많다고 불평하고 끔찍해하지만, 이건 그 바퀴를 먹는 천적이 없다는 증거이고 또 이것은 인간에 의해 도시의 생태계 순환 구조가 무너진 결과라는 것이다. 결국 비건인 나와 친구들은 “또 모든 게 인간이 문제”라는 결론에 다다르기는 했다. 그리고 덧붙여서 피해 좀 주면서 살면 어떠냐는 얘기도. 세상에는 완벽한 존재라는 게 없고, 어차피 모든 존재들은 피해를 주고받으면서 어쩌면 그렇게 상호 도움을 주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피해 좀 주면 어때. 모두가 피해를 조금씩은 주고받을 수 있는 세상이 참으로 필요하다.
철종
임금님 아닙니다. “철종”이라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음. 벌레 공포증이 있는 비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