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복식
한복 때문에 의상과로 진학했던 나였으나 실제로 내가 한복 한 벌을 만드는 법을 배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것이 입학 당시 꾸었던 '한복의 현대화'를 실현시키는 것을 포기하게 된 계기 중 하나였던 것도 같다.)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는 한복 만들기 수업을 2년에 한 번씩 수강 신청을 할 수 있었는데 이 사실을 입학할 때까지도 몰랐던 나는 그 수업을 4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수강할 수 있었다. 한복 때문에 왔는데 한복을 배울 수 없었던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내가 손으로 뭔가를 하는 것에 흥미가 있는 편이라 전공 수업의 약 90%에 가까웠던 실기 위주의 수업들이 적성에는 맞아 전공 공부를 지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고대하던 한복 수업을 수강했던 당시에는 이미 지난 3년간 수차례 경험한 옷을 만드는 행위에 살짝 질려(?)했던 시기라 막상 기대했던 것만큼 즐기지는 못 했던 것 같다. 참고로 내가 이 수업에서 만들었던 한복은 1~2살 정도의 여자 아이가 입을 수 있는 사이즈의 저고리와 치마, 그리고 조바위였다.
사실 국내 패션, 의류 계열의 학과에서는 한국/아시아 전통 복식의 역사 수업(이론)과 한복 만들기 수업(실기)을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꼭 포함되어 있는 수업 중 하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복식을 전공으로 하는 전임 교원이 없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 복식과 관련된 수업을 단 하나도 제공하지 않는 패션, 의류 계열의 학과는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선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전통복식학과 내지는 한복 디자인학과 등등 구체적으로 이를 명시하고 있는 학과가 아니고서는 전통 복식 관련 수업들은 대부분 일회성에 불가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복 구성(한복 만들기) 수업을 한 학기를 배우면 이에 대해 응용 및 심화 과정에 해당하는 강의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가 현재 입고 있는 서구화된 현대 의복은 다양한 이론 수업과 더불어 평면 패턴, 입체 패턴 등등 여러 단계에 거치는 실습수업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한복에 대해서는 의류학 전공의 학생 모두 아주 기본적인 것만 습득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대학공부는 누군가 가르쳐줘서 하기보단 자신이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하는 공부이다. 그러나 내가 학부생이었던 당시만 해도 한복이나 전통복식과 관련된 책들이 시중에 많이 없었고, 그나마 많았던 한복 만들기 책들은 대체로 패턴(옷본)을 뜨고 재단하는 법에 대해 다룰 뿐 정작 중요한 봉제 법에 대해서는 설명이 미흡해서 홀로 공부하기에도 어려웠기 때문에 심화 과정 전공 수업의 부재가 나에겐 참 많은 아쉬움을 주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것이 어렵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래도 이해한다고 해서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나마 요즘에 다행인 것은 '신(新) 한복'으로 인해 높아진 한복에 대한 관심 덕에 한복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루트가 다양해졌다는 점이지 않을까 싶다.
한복과 서양복(현대복)의 차이
지난 2월에 작고하신 이어령 선생님은 한복의 특징을 "여유"라고 표현하셨다. 한복은 마른 사람이든 체구가 큰 사람이든 모두 같은 크기의 옷을 입는 게 가능해서이다. (마! 이것이 진정한 FREE 사이즈이다.) 한 사이즈에 한 체형만 입을 수 있는 서양복과는 다른 한복의 특징이다. 또 내가 직접 한복을 만드는 법을 배우면서 서양 복식과 다르다고 느낀 한복의 특징 중 하나는 시접(*원단의 끝에서 바느질 선까지의 여유 부분)을 처리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서양 복식을 바탕으로 한 현대 의복은 시접의 처리를 가위로 최대한 잘라내어 0.5mm~1cm 너비로 만든다. 특히 모서리 부분을 사선으로 잘라 모서리 부분이 뚱뚱해지는 것을 방지한다. 반면, 한복은 절대 잘라내지 않고 말거나 접어서 안쪽으로 집어넣는다. 이는 원래 천을 만드는데 많은 노동력과 시간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천이 귀한 물품인 데서 비롯한 봉제법이다. (조선 시대엔 천으로 세금을 돈 대신 걷기도 했으니 그만큼 귀한 물품이긴 하다.)
이런 특징들을 바탕으로 고려했을 때, 신 한복은 사실 서양복의 패턴을 활용하여 전통 복식의 디테일 부분(옷깃이나 동정, 고름 등)을 차용한 옷에 가깝다. 그것 외에도 전통 복식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다양한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또 그래서 국적 불명의 한복이란 평을 듣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큰 틀이 전통 한복과 달라서 한복으로 여겨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신 한복이 침체되어있던 한복 분야를 활성화시킨 역할을 하긴 하였다. 그리고 한복 역시 역사적으로 항상 같은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대의 반영을 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그래도 한복이라면, 한복이 갖는 본질은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개인적으로는 신 한복이 서양복의 형태에 더 가깝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앞서 말한 한복 만들기 심화과정의 부재와 맞물린다고도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패션 및 의류 계열 학과들은 서양 복식을 위주로 커리큘럼이 짜여있기 때문에 한복을 재해석할 때, 보다 익숙한 서양복 패턴을 활용하여 만들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앞으로 미래의 전통 복식 디자이너들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특히나 한류와 더불어 한복이 문화콘텐츠 사업으로서 많이 활용되는 만큼 전통 복식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 함께 행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필수는 아니지만 참고하면 좋을 서적들
<우리 옷과 장신구> 이경자, 홍나영, 장숙환 저 / 열화당
- 이대 박물관에 소장된 복식 유물들을 사진 및 일러스트, 실측 사이즈 등 세세하게 소개한 책이다. 조선 후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의 시기에 만들어진 유물들 뿐이지만 전통 복식의 실제 형태를 알기에 유용하다.
<한국 의복구성> 박현진, 이혜진, 김순영 저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문화원
- 방통대 교재로 나온 책으로 간략하게 시대별 전통 복식의 변천사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한복 제작 시 필요로 하는 기초적인 바느질법, 전통 직물, 명칭 등등 입문자가 보기에 설명과 구성이 잘 되어있다.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홍나영, 신혜성, 이은진 저 / 교문사
- 고대 시대부터 현대까지 한, 중, 일의 복식 변천을 알 수 있는 책이다. 지리적으로 위치가 가까운 나라들인 만큼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였기 때문에 나라 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함께 이해해가면서 시대 따른 변화를 살펴보기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