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인생은 살아봐야 하는 이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남에게 나를 소개하는 글을 쓸 때도, 내가 만들어 낸 허구의 세상을 묘사할 때도.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없으면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 여덟 글자에서 우리 인생의 반전을 느낀다. 절망적인 일, 허탈한 일, 슬픈 일, 빈정 상하는 일로만 우리의 삶이 설명된다면 정말 끔찍하다. 새드엔딩의 연속, 그것이야말로 아주 형편없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보는 독자들도 답답한 고구마라며 혹평을 남길 것이다.
그러나 그 우울한 문장 바로 뒤에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붙으면 상황은 극적으로 변한다. 우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예를 들어보겠다.
"너는 내 스타일이 아니야. 너는 식탐도 많고, 늦잠을 자주 자. 옷을 못 입고, 술을 너무 좋아하더라. 나와 다르게 활동적인 취미를 좋아하고, 책 읽는 걸 싫어하잖아. 또, 우린 소비 성향도 다르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좋아해."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고 했어. 나는 점점 나약해질 것이라 했고, 곧 일상생활도 하지 못할 거래. 걷는 것도 힘들어질 거고, 보호자 없이는 외출도 하지 못하게 될 거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익숙한 산책길을 걸을 예정이야."
"지갑을 잃어버렸어. 내 전재산이 다 들어있었지 뭐야. 카드는 모두 정지시켰는데, 그 어마어마한 현금은 모두 날려버린 거나 마찬가지지. 딱 죽고 싶더라.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내가 얼마나 억척같이 모은 돈인데, 허무하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세상은 살만 하더라. 누가 내 지갑을 그대로 경찰서에 맡겨뒀다고 찾으러 오래."
"난 자신이 없어. 진짜 죽고 싶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볼 거야."
이 얼마나 역동적이고 거룩한 변화인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의 챕터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들어간 문장으로 마무리지어야 된다.
우리의 인생에서 위기는 매 순간마다 있다. 지금도 충분히 힘들지만 후에 더 힘든 일이 닥치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없다. 우린 이미 수없이 많이 넘어졌고, 또 앞으로도 수없이 많이 넘어질 예정이다. 때론 무릎에 피도 나고, 때론 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겠지.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코너를 돌았는데 그와 동시에 새로운 시련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겠지.
무릇 인생이란 그런 거니까. 고약한 심보로 우리를 시험하고, 상처를 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꿋꿋이 견뎌낼 거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강도를 만나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빼앗겨도 어떻게든 버텨볼 거다. 나는 나의 무수한 챕터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반전을 꾀하며 끝낼 것이다.
내 인생 중 또 하나의 챕터가 지나간다. 이번 챕터의 제목은 '어두운 터널'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홀로 터덜터덜 걷고 있다. 유달리 힘든 챕터지만, 저 멀리 보이는 출구를 향해 포기하지 않고 걷는 중이다. 무섭고 절망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터널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불친절한 인생이라도 일단 끝까지 살아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나만의 주문을 되뇌며. 그러다 보면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장소에 도달해있겠지. 그 좋은 곳에서 우리 다시, 만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다 극복해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