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를 퇴고하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by Carrie


2019년에 썼던 유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죽음에 부정적이고 보수적이다. 그런 이유로 유서를 쓰는 것에 대해서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나도 그랬다.


유서 그거, 곧 죽을 사람들이 쓰는 거 아닌가.

지병 있는 부자들이 미래의 유산 분배를 위해서 미리 써두고 변호사한테 맡겨두는 그런 거 아닌가.


하지만 우울증 진단을 받고 생각이 바뀌었다. 유서는 누구든 쓸 수 있고, 언제든 쓸 수 있다. 어디가 아프든, 건강하든 상관없이 죽음을 대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내가 갑자기 떠나버렸을 때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편지 한 장, 인사 한 마디 남겨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불어 나의 마지막 일기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무서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위에 첨부한 유서는 내가 정말 우울할 때, 나의 가장 아래에서 끌어올린 문장들이다. 단어마다 눈물을 흘렸고, 문장에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피를 토해내는 심정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유서를 쓰고 난 후 진짜 죽으려고 했다. 살고 싶지가 않았다. 죽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게 아니라 그저 살 용기가 없었다. 아무도 이런 나를 구제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힘들다고 소리쳐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운이 좋게도, 그날 사정이 생겨 죽지 못했다.

대신 내일은 꼭 죽자. 굳게 다짐했다.

그런데 내일도 죽지 못했다. 그다음 날도 죽지 못했다.

그렇게 2021년을 맞이했다.


살길 잘했다는 날과,

역시 죽을 걸 그랬다는 날이 연달아 이어졌다.


그러다 나는 요령을 터득했다. 죽고 싶을 때마다 유서를 퇴고하기로 했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을 때마다 오타를 찾고, 문장을 추가하기로 했다. 작가로서의 직업병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유서에서조차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고 싶었다.


그 결과 나는 살았다.

2021년 4월 27일, 여전히 힘들지만 살아있다.

녹록지 않지만 호흡을 하며 약간은 버겁게 버티고 있다.


그러니 오늘 당장 죽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유서를 퇴고하세요.

당신이 사랑하고, 또 당신을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되도록 흠 없는 유서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세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글을 수정하세요.

그러다 보면 우린 또 오늘 하루를 살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탈고 없이, 미완성의 유서를 움켜쥐고 이 빌어먹을 세상을 함께 견뎌봅시다.


이 세상 많은 유서들이 쓸모없어지길 바라며.

당신과 다를 게 없는 우울증 동료들이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음에 위안을 얻길 바라며.

불행했던 당신의 오늘이 당신의 마지막 날이 되지 않길 바라며.

남들과 다른 당신이 나에겐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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