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요."
불면증은 나의 오래된 지병이었다. 오죽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머리만 대면 바로 잠드는 사람’ 일 정도였다.
그러고 보면 사춘기를 겪은 이후부터 편히 잠든 날을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학창 시절엔 그 시간을 아주 유용하게 썼다. 미래에 대해 고민했고, 멋진 어른이 된 장면을 상상했고, 이불속에서 야밤의 라디오를 즐겨 들었다. 그때의 난 불면을 제대로 이용하는 감성적인 학생이었다.
하지만 ‘어, 이건 아닌데.’ 싶은 나날들이 찾아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만 빼고 모두 잠들었다는 기분이 묘한 서운함으로 다가왔다. 시끌벅적하던 세상이 고요하게 셔터를 내리고 난 후 홀로 뒤척이는 밤이 외로워졌다. 이 지구에 나뿐이라는 다소 허황된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정말이지 고독한 밤이 두려워졌다.
동시에 애써 밀어두었던 잡념이 비처럼 내렸다. 가랑비였던 그것은 점점 더 크기를 불리며 나를 폭삭 젖게 만들었다.
내가 오늘 누군가를 서운하게 했던가.
또는 누군가가 오늘 나를 서운하게 했던가.
그때 왜 그런 말을 해야 했을까.
그때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했을까.
결론도 없지만, 결론이 난다고 한들 딱히 달라질 것도 없을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각각의 꼬리들은 미움을 만들어냈고, 죄책감을 만들어냈다. 나는 이불 아래 숨어 숨죽여 울었다. 조그마한 소리도 요란한 소음으로 부풀려지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나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날이 밝곤 했다. 누군가에겐 활기찬 새로운 시작이, 나에겐 끝날 듯 끝나지 않은 긴 하루의 연속이었다. 당연히 내 건강은 망가졌고, 나는 짜증스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딱 하루만,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자고 싶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매일 소망했다.
결국 나는 출근 시간이 정해진 직장인 대신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있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덕분에 짧은 수면 시간으로 인해 고통받던 나날들에서 구원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푸근한 밤을 염원한다.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잠을 짝사랑하는 나는 아무도 시키지 않은 '잠 잘 자기' 캠페인을 혼자 실천 중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정보와 의사 선생님의 조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나만의 원칙들을 지키는 아주 간단한 캠페인이다.
나와 같은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나의 원칙을 공유하려 한다.
1. 억지로 잠을 자려는 강박 버리기.
2. 내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해 미련과 후회를 남기지 않기.
3. 아주 잠깐이라도 햇빛을 보며 산책하기.
4. 커피 줄이기 또는 디카페인으로 대체하기.
5. 낮잠을 자지 않는 것은 물론 누워 있는 시간도 줄이기.
6. 걱정거리 해결하기.
7. 정 힘들면 주치의와의 상의하에 수면제 도움을 받기.
매일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지킨 것들을 체크한다. 그래도 오늘은 두세 개를 제외하곤 모두 지킨 것 같다.
늘 그렇듯 오늘만큼은 잡념이 아닌 즐거운 꿈과 함께 밤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누구에겐 제일 쉬운 말이겠지만, 누구에겐 제일 어려울 수도 있는 말.
“잘 자요.”
오늘 하루도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고생했어요. 잘 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