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는 말의 무게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by Carrie


우울한 사람들은 때로는 아주 나약해진다.


우울한 사람들은 이따금 아주 무력해진다.


그런 순간에는 ‘힘내’라는 말조차 무겁게 나의 육체를 짓누르고 결박한다.


‘힘내’라는 두 글자는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무거운 무게를 지니고 있다. 나를 향한 걱정, 곧 나아질 거라는 기대, 얼른 어두운 곳에서 나와 밝은 곳으로 돌아오라는 재촉. 그 모든 것들이 응집되어 어깨를 억누른다.


우울함에서 오는 무기력은 단순히 체력이 달려서, 또는 귀찮아서가 아니다. 말 그대로 에너지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로 무기한으로 정체되는 것을 의미한다. 굳은 의지만으로는 쉽사리 끌어올릴 수 없다.


당사자도 안다. 널브러진 발을 세워, 도움닫기 하듯 폴짝 뛰기만 하면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 간단한 ‘도움닫기’가 아주 버거운 일처럼 느껴진다. 발가락 하나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들은 적 있다.


우울증 환자에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것이란 에베레스트산을 등반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농담 같겠지만, 진짜다. 조금 더 한국적으로 바꾸자면 밥 한 숟갈 뜨기 위해 부엌으로 가는 과정이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기나긴 여정으로 느껴진다. 밥을 데우기 위해 전자레인지를 여는 것이 오늘 일과의 가장 큰 목표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끼니를 굶게 되고, 야위어 간다. 더불어 영양 부족으로 가뜩이나 없던 에너지가 더욱 사라지고 거의 소멸에 이른다.


만약 소중한 사람이 그런 몰골이라면, 사람들은 으레 화를 내기 마련이다. 나의 주변 사람들도 그랬다. 뼈밖에 남지 않은 나를 꾸짖고, 매일 숙제를 검사하듯 밥 먹는 것을 확인했다.


‘게으르게’ 침대에만 누워있지 말고, ‘힘’을 내라고 했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에겐 그 말이 정말 고마운 걱정으로 들린다. 사실 바쁘고 개인주의적인 현대 사회에서 타인의 끼니를 걱정하고, 본인보다 더 속상해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에겐 그 말이 또 하나의 부담이 된다. 이상하게도 힘을 내라는 말을 들을수록 힘이 빠진다. 왜 내가 힘을 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이렇게까지 억지로 힘을 내야 하는 게 삶이라면 누가 강제로 멈춰줬으면 좋겠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런 우리가 이해되지 않겠지만 문장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는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정적이고, 희망이 없는 상자 속에 갇히고 마는 사람들이다.


상자를 찢고 나오기보다는 약간 작은 그 상자에 몸을 맞추고 천천히 순응하는 게 편한 사람들이다.


상자 밖의 사람들은 묻는다. 그러다 영영 상자 속에 갇히면 어떡해?


상자 안의 사람들은 답한다. 뭐, 그럼 어쩔 수 없고.


그만큼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과 겪고 있지 않는 사람은 사고방식이 다르다. 짚어두고 싶은 건 둘 중 틀린 삶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조금 아픈 사람과 건강한 사람의 차이일 뿐이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그러니 주위에 우울한 사람이 있다면 너무 조급하게 상자를 열고 나오도록 재촉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신 상자 표면에 작은 구멍을 뚫어 속삭였으면 한다. 우리 한 시간만 살아 볼까? 우리 오늘만 살아 볼까? 우리 이번 달만 살아 볼까? 그렇게 서서히 상자의 구멍 크기를 늘리고, 밝은 빛에 눈을 적응시켜주길 바란다.


물론 쉽지 않은 여정일 수도 있다. 때론 답답하고, 지겨운 마음에 짜증이 날 수도 있다. 끝이 보이지 않아 아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상자는 찢어지기 마련이다. 그때, 사랑하는 사람을 꼭 안아주면 진정한 도움닫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죽고 싶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누구든 처음엔 살고 싶어 발악했으니까.


생각보다 죽음과 삶은 가까이 붙어 서 있다.




마지막으로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힘을 내기를 강요받는 사람들에게.


힘을 내지 않아도 된다. 억지로 상자를 찢고 나오지 않아도 된다. 곧 나아질 거라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를 게으르다며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문득 상자에 난 작은 구멍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거든, 또는 아주 신나는 소리가 들려오거든, 또는 아주 흥미로운 볼거리가 생기거든 그 본능적인 끌림에 집중하길 바란다.


그런 작은 관심들이 커지면 조만간 상자가 좁게 느껴질 날도 올 것이다. 이대로 평생 갇혀 지내도 괜찮다던 마음이 전환될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을 살아내는 거다. 의미 없어 보이던 하루들이 쌓여 마침내 그때 죽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올 것이다. 이 맛있고, 신나고, 흥미로운 인생을 살기를 잘했다는 안도가 들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조금만 더 살자. 거창하게 힘을 내지 않아도 좋으니 조금만 더 살아 보자. 특별할 것 없는 하루라도 조금만 더 살아보자.


사진 출처 : 나

나는 오늘 딸기 케이크가 먹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야겠다. 내일이 되면 또 새로운 음식이 먹고 싶겠지. 또 그걸 먹기 위해 살아야겠다.


아주 사소하지만 당신을 행복하게 할 무언가가 내일을 기다리게 해 주면 좋겠다.

keyword
이전 10화나는 불안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