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진료는 시작이 반

자, 일어나서 옷을 입고 현관문을 나섭시다

by Carrie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했다.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언제든 올 수 있는 그런 바이러스 같은 것. 생각보다 흔한 것. 요란 떨 것 없이 병원 가고 약 먹으면 낫는 것.


하지만 말이 쉽지. 막상 나와 내 주위 사람이 앓으면 쉽사리 감기라고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없게 된다.


나조차 그랬다. 내가 우울증 환자란 것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내 최측근들은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정말 처참한 충돌들이 있었다.


“네가 약한 거 아니야?”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 누구나 아파. 그런데 다 참고 살아.”

“네가 뭐가 힘들어? 배가 불렀구나.”


놀랍지만 실제로 내가 들은 말이었다. 우울증에 무지한 사람들이 주는 상처였다. 모두가 내 병을 외면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내가 유난 떠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들 힘든데 나만 엄살부리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은 자책으로 이어졌고, 나는 나를 더욱더 사랑할 수 없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남들과 똑같아지기’다. 스스로의 본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튀기 싫어한다. 남들과 다른 자신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더 장난을 쳤고, 가벼워졌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해도 피곤한 척을 하지 못했다.


모두가 내가 괜찮아졌다고 생각하길 바랐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나의 마음은 점점 더 곪아갔다. 감기는 폐렴으로 악화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조차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어느 날 나는 식은 밥을 데우다가 울었다. 너무 지쳐서. 겨우 전자레인지에 그릇을 넣고 돌리는 것뿐인 그 간단한 행위가 웬만한 달리기보다 숨이 가빠서.


그다음 날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에도 큰마음을 먹어야 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귀찮았다. 그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파도처럼 밀려오는 일상을 두려워했다.


또 그다음 날엔 아침이 싫어졌다.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내가 당장 내일, 모레까지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혼자 외딴 섬에 묶인 채 버려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기력에 잡아먹힌 것이다. 에너지가 바닥난 것이다. 그건 삶이 아니었다. 나는 단순히 나의 작은 방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대로 바스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그때 내 나이 스물아홉 살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꽃 같은 나이였지만, 그때의 난 꽃이 아니었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20대를 보며, 나는 다행히도 아주 큰 결심을 했다. 딱 하나, 거창하지 않아도 좋으니,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도 좋으니 나에게 선물을 주자. 다시 누워도 좋으니 일단 일어나보자.


나는 침대로 스며들기 직전인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친구에게 좋은 정신과 선생님을 추천받았다.


30대의 선물로 ‘정신과 진료’를 준 것이다.


정신과에서는 내게 심각한 무기력증과 우울증이 있다고 진단했다. 스트레스에 취약해진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불안과 불면은 마치 내 몸의 일부처럼 딱 붙어 있다고 했다.


나는 즉시 약물과 상담 치료를 받았다.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어떤 약은 나를 멍한 바보로 만들었고, 어떤 약은 나를 물조차 소화 못 하는 예민쟁이로 만들었다. 결국 세 번째 약에 이르러서야 나는 정착할 수 있었다. 상담은 또 어떤가. 부끄러울 정도로 울었다. 선생님과 눈만 마주쳐도 울었다. 화장이 지워질 정도로,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다. 나는 과거의 상처받은 나를 마주보며 통곡했다.


정말 힘들었고, 버거운 길이었다. 물론 아직도 나는 그 길을 걷는 중이다. 사람의 육체는 약해빠졌으니 나는 또다시 넘어지고, 울고, 좌절하겠지.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나의 우울을 인정함과 동시에 나의 우울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긴 여정의 반은 온 것이다. 유달리 높은 그 문턱을 나는, 기특하게도 넘은 것이다.


그리 내세울 것 없는 20대에서 가장 잘한 일이 감히 정신과를 스스로 방문한 것이라 자부할 수 있을 정도다.

너 정말 장하다. 잘했구나.





과거의 나처럼 우울증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울증, 감기 맞다. 약을 먹고 정성껏 돌보면 분명 차도가 보이는 병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사리 인정할 수 없는 민감한 병이란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과 진료는 시작이 반이다. 일단 시작하면 다음 진료 일정이 잡힌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긴다. 상담으로 내 응어리를 풀고, 약으로 에너지를 끌어올리면 무수한 다음들이 서서히 수월해진다.


그렇게 극복하는 거다. 완치는 장담할 수 없으나 분명 좋은 변화는 있다.


자, 일어나서 옷을 입고 현관문을 나섭시다. 그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절반은 온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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