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했는데 안 돼

아니, 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by Carrie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실패는 ‘최선을 다한’ 실패다. 나는 정말 죽을 만큼 노력했는데, 더 이상 뭘 할 수 없을 만큼 애썼는데 돌아온 실패다. 열심히 하지 않았더라면 나태한 스스로의 탓으로 돌려 실패의 쓴맛을 중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을 때의 실패는 사람을 정말 벼랑 끝으로 밀어버린다.


핑계가 없다. 내가 뭘 해도 이 사회는 날 받아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나를 원하지 않는다. 희망이 없다. 아마 다시 도전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이 위치에서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끝도 없는 무력감이 나를 덮친다. 진짜 슬럼프는 그때 온다. 힘이 빠지고 바삐 움직이던 걸음이 멈춘다. 그사이 나와 비슷하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나를 앞질러 가기 시작한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눈앞에 보이는 타인의 등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조금이라도 더 힘을 내서 격차를 좁혀도 모자랄 판에 나는 경기를 포기하기 직전에 이른다.


그렇게 포기하고 싶은 충동과 형편없는 발걸음이 번갈아 지속되던 어느 날,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미생’을 다시 정주행하게 되었다. 바둑이란 혼자만의 세계에서 살다가 정글 같은 직장 세계에 아무런 준비 없이 떨어진 장그래. 모두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이던 안쓰러운 장그래가 보란 듯이 팀의 주축이 되어가는 그 발칙한 반란(?)이 더할 나위 없는 대리만족이 되었다.


그러던 중 지금 이 순간 내게 가장 필요한 독백을 하나 발견했다. 그건 정체된 나에게 큰 울림을 줄 독백이었다.




사진 출처 : tvn 드라마 '미생'
난 그냥 열심히 하지 않은 편이어야 한다.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 한 것으로 생각하겠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으로 나온 거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정말 처절하면서도 공감되는 독백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노력을 부풀리길 원하지, 축소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장그래는 제게 주어진 경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자신의 노력을 축소하다 못해 아예 없는 취급을 한다. 그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내레이션은 덤덤했지만, 나는 서럽게 펑펑 울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한 적 없던 자기 최면을 걸었다.


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너는 게으른 사람이다.

너는 열심히 하지 않았다.


서글픈 자기 비하였지만, 덕분에 나는 다시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느리게나마 앞 사람과의 격차를 좁히고 있는 중이다. 죽을힘을 다해 다리를 움직이고 있겠지만 또 실패할 수도 있겠지. 아마 나는 그때도 ‘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라며 이 노력을 지워버릴 것이다.


잔인하지만 그래야 다음이 있으니까. 오늘의 실패를 납득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난 내가 성공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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