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굿바이 스물

by Carrie


여러모로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다는 것은 인생에서 큰 사건이다.


19살에서 20살이 될 때의 내가 생각난다. 그때의 난 정말 말 그대로 ‘천둥벌거숭이’였다. 10대의 미성숙한 생각을 가지고, 덜컥 어른이 되어버렸으니 얼마나 천방지축일지는 쉽사리 예측하실 수 있으리라.


12시 59분에서 1시로 넘어가는 순간에 포효를 질렀다. 난 이제 자유다. 아무도 나에게 체벌을 내릴 수도, 벌점도 매길 수 없다. 내 시간을 마음대로 써도 혼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다! 엄마의 잔소리도 끝이다! 아빠의 귀찮은 질문들도 끝이다!


19살까지 살았던 고향을 떠난 나는 낯선 도시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나를 차로 데려다준 부모님은 고향으로 내려가는 순간까지 걱정에 가득 차 계셨지만, 나는 그저 설렘에 눈이 반짝였다. 좁지만 깔끔한 원룸에 누워 집을 어떻게 꾸밀지에 대한 고민만 주구장창 했더랬다.


20대 초반. 나의 생활은 딱 두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유흥’.


그래. 나는 고삐가 풀린 망아지처럼 술을 마시고, 놀았다. 새로 사귄 대학 친구들은 나를 즐겁게 해 줬고, 무엇보다 술집에 당당하게 앉아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새벽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내 원룸에서 다 같이 잠을 잤다. 그러다 꾸물꾸물 일어나 학교를 갔고, 수업을 들으면서도 오늘은 어느 술집에서 술을 마실지 상의했다. 그땐 생활비가 다 떨어져도, 난생처음 위염이란 것에 걸려도, 일상이 망가져도 그저 행복했다. 아니,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에게 걸려온 전화를 못 본 체하며 나는 그저 철없이 나의 찬란한 시간을 보내기 바빴다. 잦은 탈색으로 인해 머리카락이 버석해지는 만큼, 그 건강하지 못한 생활은 나의 건강을 버석하게 만들었다.




20대 중반. 친구들이 하나, 둘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심지어 일찍 결혼하는 친구도 생겼다. 자연스럽게 바빠졌고 다 같이 모이려면 서로의 빡빡한 스케줄을 맞춰보아야 했다. 즉흥적인 술자리는 거의 없어졌다.


그 사이에서 나는 덩그러니 떨어져 나왔다. 나는 꿈도 잃어버렸고, 취업도 하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로 힘겨운 하루하루를 전전하던 나는 털썩 주저앉아 고민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그제야 진정한 ‘20대’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 것 같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낭창하게 있어도 자연스럽게 학년이 바뀌고 저절로 살아지던 10대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20대는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대로 정체되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는 멈춰있는데 내 주위가 빠르게 바뀌어 간다는 것은. 남은 20대가 몇 년인지 헤아려 보기 시작했고, 뒤늦게 성장통도 찾아왔다. 다른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갈 때, '나는 무얼 했나.' 하는 자책도 거듭했다.


적막이 흐르는 방구석에 누워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뭘까. 내가 뭘로 먹고살 수 있을까. 나는 죽도록 노력해본 적이 있나. 미래를 어떤 식으로 대비하고 있었나.


그저 내가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는 것 외엔 어떠한 것도 결론을 낼 수 없었다.




20대 후반. 여전히 나는 방황하고 있었지만, 나의 상태에 문제가 생겼다. 불면증이 심해져 잠을 전혀 이루지 못했고, 체력은 약해졌다. 20대 초반의 업보로 위염을 달고 살았으며 나는 피폐해졌다.


오랫동안 하던 아르바이트에도 회의감이 생겼고, 생기가 없어졌다.


어느 날 문득,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생겨났다. 숨이 막히고 한계가 찾아왔을 때쯤 나는 그토록 설레게 하던 서울 생활을 스스로 청산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19살의 나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할 귀환이었다.


차가운 세상을 맛보고 돌아온 나는 변함없는 엄마의 잔소리와 아빠의 질문에 오히려 안정감을 느꼈다. 아직도 서울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스물아홉 마지막 계절, 나는 마침내 나의 마음의 병을 인정했다. 부모님께는 다소 낯설고 무서울 ‘정신과 진료’를 고백하며 치료를 시작했다.


우울하기 짝이 없는 시절이었지만 그나마 딱 하나 있는 희소식은 내가 드디어 글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짧게 요약해 본 나의 20대다. 전혀 아무것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많은 것을 이루지도 못했다. 10년이란 시간은 강산이 바뀔 정도로 긴 세월이었는데 말이다.


한때는 나도 20대를 낭비했다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을 바꿨다. 가뜩이나 서러운 나 자신을 더 사랑해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저 꿈을 찾기 위한 여행이 길었던 것뿐이다. 나란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느렸을 뿐이다. 누구나 인생에서 나태한 순간이 있다. 나는 다만 그 나태함을 한창 치열할 20대에 먼저 느꼈던 것뿐이다.


덕분에 나는 여한 없이 놀아봤고, 인생에 대한 고민도 오래 해봤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또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30대가 된 지금, 나는 늘 울상을 짓던 나의 20대를 토닥여주고 싶다.


"괜찮아. 어린 네가 너무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조금 더 자란 내가 열심히 살 테니까 그만 움츠러들렴. 네 덕분에 나는 잘 살 거야. 빛나는 너를 조금 더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애써 붙들고 있던 나의 20대를 놓아주려 한다.


이건 작별 인사임과 동시에 프롤로그이기도 하다.


안녕. 잘 가. 내가 너고, 네가 나라서 정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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