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는 30대 처음 봐요?

집도, 차도, 돈도 없어요

by Carrie
이미지 출처 : '안녕하신가영' 님 앨범 커버

내가 정말 좋아하는 뮤지션 ‘안녕하신가영’님의 ‘어른인 듯 아닌 듯’이라는 노래가 있다. 보편적인 ‘어른’이 되려 하지 말고 스스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는 아주 교훈적인 내용의 노래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소개해드리고 싶다.




“그래도 왠지 어른이 되면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돈도 많아야겠지.”




이 사회가 흔히 ‘어른’이라 분류되는 이들에게 하는 기대를 꼬집은 가사다. 나 역시 그랬다. 30대가 된 나는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돈도 많을 줄 알았다. 나의 부모님들이 그랬듯이 이 사회에 자리를 잡고, 기둥까지는 아니더라도 타일 한 장 정도의 역할은 하고 있을 줄 알았다. 다 자랐으니까. 더 이상 어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서른이 된 1월 1일에 깨달았다. 30대도, 20대와 다를 바 없는 그저 미성숙한 나날들의 연속이겠구나. 역시나 나는 여전히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돈도 없다.


물론 30대가 되어 아주 멋진 사회 구성원이 된 친구들도 많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 같은 ‘어른이’도 분명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 어른이들은 뒤처지고, 낙오된 걸까.


때로는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같은 학교에서 같은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과 점점 경제적인 격차가 생기고, 사회적인 격차가 생겼을 때 극도로 초조해졌다. 거기다가 난 꿈도 못 꿀 가정을 이루었을 때 박탈감은 극치에 달했다. 이번 생은 아무래도 망한 것 같기도 했다. ‘리셋’ 버튼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누르겠노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나보다 보수적인 부모님은 더 했다. 너는 왜 꿈만 좇니.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지 않니. 연애는 안 하니. 결혼은 안 하니. 내겐 아직 벅차기만 한 질문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그래. 어쩌면 나는 낙오자일지도 몰라. 패배자일지도 몰라.


그날부터 깊은 슬럼프가 찾아왔다. 굶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만큼 사랑했던 꿈도, 사부작사부작 즐겼던 집순이로서의 취미도 모두 시시해졌다. 내 인생 전체의 회의감이 찾아왔다.


이제라도 직장을 찾아볼까. 소개팅을 해 볼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까.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고민이 이어졌다. 번듯한 직장도, 결혼도, 공무원 생활도 모두 준비된 자들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던 시절의 오만한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내 기준 아주 안정적이고, 서른다운 생활을 하는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 참 부럽다.”


처음엔 나를 놀리려는 건 줄 알았다. 내가 뭐가 부러워. 제대로 된 보험 하나 제대로 없고, 당장 다음 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내가. 열등감에 사로잡힌 나는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잖아. 난 네가 용기가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어진 말에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 얼얼해졌다. 맞아. 나는 용기를 내고 있었다. 남들이 오른쪽으로 갈 때 왼쪽으로 가는 용기. 남들이 여유로울 때 가난할 수 있는 용기. 나름대로 나는 꿈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그런 노력을 폄하하고 있었다니.


양쪽 모두를 가질 수는 없다. 하나를 가지려면 무릇 다른 하나를 놓아야 하기 마련이다. 내 친구는 안정을 택했고, 난 꿈을 택했을 뿐이다.


그건 다른 거지, 절대 틀린 것이 아니다.


우린 앞으로도 비슷한 선택지를 놓고, 무수히 많은 갈림길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하나의 질문만 던지면 된다. 무얼 포기했을 때 덜 불행할까. 그 질문을 끝없이 상기하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슬퍼질 일은 없다.




나처럼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는 서른이들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어김없이 이런 질문이 돌아오리라 생각된다.


“집도 없어?”

“차도 없어?”

“모아둔 돈도 없어?”


하지만 괜찮다. 집이 없어도, 차가 없어도, 모아둔 돈이 없어도. 어른스럽지 않아도. 어리광을 부려도.


어른이란 건 단순히 12월 31일 12시 59분과 1월 1일 0시 0분을 기점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린 아직 충분히 미숙해도 되는 나이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도 되는 나이다. 인간의 기대수명은 늘어났고, 우리는 어른이 되는 것을 유예할 수 있다. 등 떠밀려 억지로 어른이 되지 않길 바란다. 나를 진짜 걱정하는 말과 나를 깔아뭉개려는 말을 구분하길 바란다. 나 스스로가 준비가 되었을 때 어른이 되길 바란다. 그래도 늦지 않으니까.


부디 급하게 성장해 체하는 일이 없기를. 이 순간에도 방황하고 있는 모든 어른이들이 힘을 내길. 물론 나를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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