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 없는 유일한 다이어트 : 인맥 다이어트
어릴 때부터 쓸데없는 고민이 많았다. 내가 지금 당장 결혼식을 올린다면 축하해줄 친구가 몇 명이나 될까. 내가 지금 당장 죽는다면 추모해줄 친구가 몇 명이나 될까. 이게 무려 내가 중학교 때부터 해왔던 고민이었다.
나는 분명 어딘가가 결핍된 아이였던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남들보다 불안했고, 타인의 시선에 민감했다. 나는 모두의 중심이어야 했고 아등바등 사랑받기 애썼다. 나를 빼놓고 오가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견디지 못하는 편이었다. 인정한다. 그때의 난, 참 피곤한 친구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필사적으로 쌍방이라 세뇌했던 그 관계는 모두 일방이었다. 나만 놓으면 다 끝나버릴 얄팍한 관계였다. 알면서도 힘겹게 외면하던 어느 날, 나는 너무 지쳐버렸다. 꽉 쥐고 있던 손에 서서히 힘이 풀렸고 그와 동시에 나를 둘러싸고 있던 관계들이 모두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다.
가지 말라고 붙잡아도 풍선 같은 그것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래를 내려보았을 때 남은 것은 텅 빈 손바닥뿐이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그토록 허무하고 매정한 것이다.
내 생각의 변화가 찾아온 것은 역설적으로 그때였다. 모든 걸 잃었을 때, 나는 초연해졌다. 차분히 책상에 앉아 몇 가지의 결론을 냈다.
첫째, 어차피 끊어질 관계였다. 그런데 내가 억지로 쥐고 있었던 것뿐이다. 아마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끝났을 관계다. 그러니 아쉬워할 것 없다.
둘째, 내가 결혼을 할지,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에 결혼식이 없을 수도 있다는 소리다.
셋째, 나의 장례식엔 어차피 내가 없다. 그러니 살아있는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내 삶의 중심이 타인이 아닌 오롯이 내게로 옮겨졌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탐구하기 시작했다. 정말 학구적으로 파고들었다. 남에게 쓰던 에너지가 남아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내가 생각보다 내향적인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 제법 낯을 가리고, 사람이 북적한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내가 밖에서 노는 것보다 집에서 영화를 보는 걸 선호한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내가 번화가의 술집보다 작은 방에서 홀로 술을 먹는 걸 즐긴다는 걸 알게 됐다.
정말이지 나란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미안할 정도로.
탐구가 끝난 후 나는 나만을 위한 삶을 살게 됐다. 본격적인 집순이가 되었고,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취미들을 늘려나갔다. 새로운 사람은 굳이 필요하지 않으면 사귀지 않았고 나를 지루해하는 사람은 쿨하게 놓아주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인맥 다이어트’라는 걸 하게 된 것이다. 다이어트를 수도 없이 시작하고 실패해봤던 사람으로서 ‘인맥 다이어트’는 요요가 없는 유일한 다이어트다. 그러니 한 명의 친구를 내 삶에서 빼낸다고 해서 두 명의 친구가 딸려 들어올 일이 없다는 의미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요요가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 결과 나는 현재 몹시 마른 인맥을 가지고 있다. 휴대폰 전화번호부도, 메신저 친구 목록도 빈약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이 삶에 매우 만족한다. 나는 이전의 나보다 더 행복하다. 더불어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는 사람만이 내 곁에 남았다. ‘진짜 내 사람’ 말이다. 그들은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고, 초조하게 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들도 그러리라 감히 단정해본다.
요즘 인간관계가 정말 많은 사람의 고민거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각기 다른 타인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인만큼 우리는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고받기 마련이다. 그로 인해 기진맥진한 사람이 있다면 인맥 다이어트를 추천하고 싶다. 물론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고립되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진작 끊어져야 했는데 내가 아등바등 쥐고 있는 관계가 없는지 돌아보라는 것이다. 만약 의심되는 관계가 있다면 과감하게 손을 놓아보는 거다. 천천히. 그럼에도 떠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평생 내 곁에 머물러줄 사람이다. 하지만 놓자마자 저 높은 곳으로 사라져 버리는 사람은 그대로 보내주자. 아쉬워하지 말자. 자책하지 말자. 내가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도 어차피 언젠가는 떠났을 사람이다.
우리, 우리를 위해 살자. 그리고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서 살자.
결론 : 내 장례식에 조문객이 몇명이나 올 것 같냐고? 그건 아무도 모르지. 혹시 아나. 내가 죽기 전에 불로장생 약이 발명되어 평생 살 수 있을지. 그러니까 그건 지금 해봤자 하등 의미 없는 질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