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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ie Jul 08. 2021

갑자기 폴더폰이 쓰고 싶어졌다

불편했지만 소중했던 그 시절


이미지 : 고아라폰

갑자기 폴더폰이 쓰고 싶어졌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터치가 보편화된 이 시대에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진심이었다. 네모나고 군더더기 없는 ‘바’ 형태의 스마트폰에 질린 것이다.


이것저것 스티커를 붙이고, 자판의 색을 바꾸고, 휴대폰 고리를 달랑거리며 달고 다니고 싶어졌다.


생각해보면 휴대폰 자체의 디자인도 폴더폰을 쓰던 시절이 더 다양했던 것 같았다. 경쾌한 소리가 나며 젖혀지던 폴더폰, 카메라가 360도로 돌아가던 폴더폰, 디지털카메라 모양의 슬라이드폰, 휠을 돌리는 재미가 있던 슬라이드 폰. 다 적지 못할 정도로 다양했다.


결국 ‘폴더폰 병’에 걸린 나는 폴더블 폰을 충동적으로 질렀다. 업무용으로 쓰겠다며 소비를 합리화했지만 솔직히 그냥 갖고 싶어서 샀다. 예전 휴대폰의 레트로함을 가지면서 동시에 고도로 발달된 통신 기술은 그대로 누리려는 영악함을 공략당했다.


그래서 폴더블 폰을 사서 ‘폴더폰 병’이 완전히 완치됐느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다. 하루 이틀은 신기해서 몇 번이고 열었다 닫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다시 시큰둥해졌다.


실컷 돈 낭비를 하고 느낀 건데 나는 그저 ‘접히는 휴대폰’이 아니라 ‘접히는 휴대폰을 쓰던 그 시절’을 그리워했던 모양이다.




‘라떼는…….’이라는 서두를 꺼내면 옛날 사람이 된 거라던데, 그래도 영 틀린 말은 아니니 한 번 꺼내 보겠다.


이미지 : 스카이 휠

내가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던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야말로 폴더폰과 슬라이드폰의 전성기였다. 놀랍겠지만 ‘바’ 형태의 휴대폰은 오히려 옛날 휴대폰 취급을 받았다. 그땐 모든 제조사가 ‘어떻게 휴대폰을 콤팩트하게 만들까?’로 다투던 시대였다. 나날이 휴대폰은 작아졌고, 다양한 디자인으로 각자의 개성을 뽐냈더랬다.


아직도 그 제조사들의 이름이 떠오른다. 애니콜, 스카이, 싸이온, 모토로라. 지금은 삼성(갤럭시)이 애플과 함께 스마트폰 투톱이지만 그땐 애니콜로 불렸다는 걸 아는 사람들도 점점 나이가 먹어가고 있다.


디자인은 만족스러웠지만, 제약은 많았다. 3g가 공급되지 않던 시절이라서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Nate’ 접속 버튼이 있긴 했지만 그걸 누르면 단 몇 초 만에 전화 요금이 10만 원에 육박하게 나온다는 괴담 아닌 괴담이 있어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설령 실수로 누르더라도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지 않으려면 죽을힘을 다해 ‘종료’ 버튼을 눌러야 했다.


그럼 그 시대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뭘 했냐고?


말 그대로 휴대폰의 본래의 기능을 사용하는 것에 열중했다. 베프랑 전화를 하고, 좋아하는 이성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또, 그 시절엔 번호를 바꿔서 연락을 하는 게 가능했기 때문에 ‘1004’ 등의 의뭉스러운 번호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받을 때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 밤을 새울 정도였다.


가끔 조악한 화질의 카메라로 셀카를 찍어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리기도 했다. 즉석에서 바로 SNS에 업로드를 할 수 있는 현재와는 달리 그때는 긴 선을 주렁주렁 컴퓨터에 연결해 사진을 수작업으로 옮긴 뒤 업로드해야 했다.


고작 그 정도인데도 그땐 휴대폰 하나만 쥐고 있으면 왜 그렇게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 당시 학생들에게 가장 잔인한 체벌은 바로 휴대폰을 뺏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걸리면 뺏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가정 내에서도 성적이 떨어지면 휴대폰을 일정 시간 동안 압수하기 일쑤였다.


아빠한테 휴대폰을 압수당했던 중학생 때,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지. 그리고 휴대폰을 다시 돌려받았을 때 밀린 연락들을 확인하느라 얼마나 설렜던지. 겪어본 사람만 알 것이다.


이미지 : 샤인 폰


그 소소한 연락들이 더 애틋했던 건 ‘정액제’도 한몫했을 것이다. 지금도 정액제가 있긴 하지만 와이파이가 있는 곳이면 얼마든지 휴대폰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땐 주어진 요금이 다 동떨어지면 휴대폰은 그야말로 공기계가 되었다. 수신만 가능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통신사에 따라 알, 별 등으로 불리는 요금이 들어오는 날을 정말 애타게 기다렸다. 그날 밤, 밀린 연락에 모두 응답하느라 내내 자판을 두드려댔다.


정해진 메시지 수, 통화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메시지 하나, 통화 한 번에 모든 진심을 담게 만들었다. 불필요한 연락은 되도록 줄였고, 진짜 좋아하는 사람에게 진짜 필요한 말만 했다. 글자 수를 맞추느라 띄어쓰기조차 사치였던 그때의 메시지엔 순수함이 담겨 있었다.


[너를 좋아해. 이따 나랑 노래방 갈래?]


[그때 심한 말 해서 미안해. 화해하자. 급식실도 같이 가고.]


[나 엄마랑 싸웠어. 정말 말이 안 통한다니까. 왜 날 이해해주지 못하는 거지?]


버릴 메시지가 하나도 없었기에 나는 두고두고 받은 편지함과 보낸 편지함을 번갈아 가며 대화를 곱씹었다. 특별한 메시지는 보관함에 넣고 남몰래 꺼내 읽기도 했다. 지금은 그 보관 메시지들을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이미지 : 아이폰 12

시간이 흘러 모든 게 풍족하고, 고성능의 스마트폰을 쓰는 지금, 나는 그때처럼 연락에 진심일까?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다. 아니다. 오히려 제한이 없어졌기에 간절함이 사라졌고, 쓸모없는 메시지를 남발하게 되었다. 심지어 이모티콘 하나만 띡 보낼 때도 있었다. 그땐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거의 버려두고 사는 편이다. 급한 업무용 전화를 받을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 무음으로 방치되어 있다. 일을 할 때 컴퓨터를 사용하기에 검색이나 메일 확인, 메시지 답장조차도 큰 화면으로 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더불어 친구들의 연락에 답변하는 횟수가 줄었고, 설렘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친구의 고민을 심각하게 들어주고, 온종일 답장을 기다리던 순수한 소녀는 없어졌다. 기술이 발전하는 동안 무덤덤한 어른이 되어 버렸다.


결국 나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던 거였다. 폴더폰 자체가 아니라.




그 노래가 그리운 걸까, 그 시절이 그리운 걸까.

대부분 그 시절이다.


그 사람이 그리운 걸까, 그 시절이 그리운 걸까.

대부분 그 시절이다.


그 장소가 그리운 걸까, 그 시절이 그리운 걸까.

대부분 그 시절이다.


이 좋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나 끊임없이 불편했던 과거를 그리워하며, 추억을 간식처럼 한 번씩 꺼내 먹곤 한다. 빠르고 차가운 현실을 견뎌내고 있는 것에 대한 작은 보상이다.


그때가 참 좋았지.


그때의 난 참 사랑스러웠지.


그때의 우린 참 소중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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