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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ie Jul 21. 2021

소확행을 찾아서

소소하다는 것보다 확실하다는 게 중요하지


언제부턴가 ‘소확행’이란 단어가 유행 중이다. 일본 유명 작가의 에세이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을 줄인 것이다.


사실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난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행복’이란 우리 삶의 궁극적 목표이자 종착점이라 생각했고 매우 거대하고 의미있는 것이라고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확행은 그동안 우리가 정의했던 ‘보편적인 행복’과는 거리가 있다. 남들에겐 의미 없을지도 모르는 행동을 하고, 남들에겐 조잡스러워 보이는 물건들을 구매하고, 남들에겐 낭비 같아 보이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행복’이라 칭한다. 오롯이 내게만 초점이 맞춰진 행복이란 것이다.


우선 나의 소확행을 소개하고 싶다.



1. 표지가 마음에 드는 책을 사서 모으기.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


2. 다소 비싼 가격이라 하더라도 먹고 싶은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기.


3. 천둥이 치는 날 밤, 공포영화 보기.


4. 아날로그 소품 사서 모으기. 역시나 굳이 사용하진 않아도 된다. 수집에 의의가 있다.


5. 예쁜 텀블러 사서 거기다가 커피 마시기.


6. 새로운 바디워시 사용하기.


7. 스팀 게임하기. 특히 ‘유로 트럭’이라는 게임을 좋아하는데, 말 그대로 온종일 트럭을 운전하고, 물품을 배송하는 일이다. 이걸 위해 핸들까지 구매했는데 실제로 운전하는 느낌을 준다.


8.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나만의 소설 쓰지 않기. 상업적으로 이용할 생각은 없다.


9. 스도쿠 풀기.


10. 넷플릭스 목록 구경하기.


11. 전자기기 구매하기.


12. 보석 십자수 하기.


13. 컬러링북 채색하기.


14. 에어컨 켜고 이불 덮기.



이외에도 여러 소확행이 있지만 쓰자고 마음만 먹자면 끝도 없기에 이만 줄이려고 한다.


이토록 내겐 많은 소확행이 있다. 누군가는 이런 내가 과소비를 한다고 했고, 시간 낭비를 한다고도 했다. 그 돈으로 실생활에 더 필요한 실용적인 물건을 살 수도 있을 테고, 그 시간에 미래를 위해 투자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알기 전에는, 아니, 그 단어의 참뜻을 비로소 이해하기 전에는 나도 그런 말들에 동의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의 소확행은 나의 미래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들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지갑은 점점 가벼워지고,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갈 뿐이다.


그래서 한 때는 모든 소확행을 접고 정말 ‘필요한’ 쇼핑과 노동만 했다. 아침에 깨어나서부터 밤에 잠들기 전까지 조금도 새는 시간 없이 꼬박 일과 자기 계발만 했다. 지갑은 두둑해졌고, 나는 빠르게 발전했다.


그런데 행복했느냐고 묻는다면 절대로 아니다. 나는 그저 ‘궁극적인 행복’을 위해 달려가는 과정 중에 있을 뿐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데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있을 리 없다.


그렇게 계속 달려갈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사람은 으레 지치기 마련이다. 한계를 넘어서면 전력이 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인간인 나의 발걸음은 점점 느려졌고, 어느새 거북이보다 느린 속도로 걷고 있었다.


땀을 닦으며 주위를 바라보았다. 주위는 말 그대로 그늘 하나 없는 사막이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발이 푹푹 빠지는데 도와줄 손 하나 없었다. 목이 마른데 허리에 찬 물통은 이미 바닥났고, 일사병에 걸리기 일보직전인데 그늘막은 보이지도 않았다.


더 절망적이었던 건 궁극적인 행복은 달리면 달릴수록 더 멀어진다는 것이다. 사람이 가장 기피해야 할 감정인 막연함이 나를 뒤덮었고, 이윽고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방전된 나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렸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사막에 있었다. 이대로 살다가는 메말라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나를 약 올리는 궁극적인 행복을 노려보다 작은 오아시스를 찾기 시작했다. 궁극적인 행복보다는 비교적 찾기 쉬웠던 그것은 확실히 나의 갈증을 없애주었다. 목을 적신 것만으로도 나는 에너지가 생겼다.


그렇다. 무릇 소확행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마지막 종착점 중간에 있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 언뜻 보면 옆으로 새는 것 같지만 결론적으로는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친구.


그날 이후 나는 나의 소확행을 합리화했다. 기나긴 인생 중에 이 정도의 게으름과 일탈은 아무것도 아니잖아? 잠깐 시간 낭비는 괜찮잖아?


우리는 소확행이란 단어에서 ‘소’보다는 ‘확’이라는 글자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확실한 행복. 이것만큼 위대하고 기쁜 것이 없다. 거기다가 부수적으로 작기까지 하단다. 적은 돈과 시간으로 확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그러니 우린 소확행을 더욱 즐겨야 한다. ‘그런 걸 뭐하러 사니?’, ‘그런 걸 뭐하러 하니?’, ‘그런 델 뭐하러 가니?’라는 모든 타박을 무시하고서.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린 중간중간 쉬지 않고는 끝까지 달려갈 수 없는 나약한 부품으로 조립된 생명체니까.


본인의 소확행이 무엇인지 아직 못 찾은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앉아 스스로를 생각해보길 바란다. 어떤 특정한 행위를 했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고, 들뜨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 기저에 어떤 뿌리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남들이 느끼기에 아주 하찮아도 좋다. 남에게 내비치기 부끄러운 몹시 은밀한 것이어도 좋다.


‘이런 것도 소확행이라고?’라는 의심은 잠시 접어두고 그것에 집중해보기 바란다. 이전과 같은 편안함이 반복된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소확행이다. 여정이 힘들고 길어질 때마다 꺼내서 목을 축일 수 있는 바로 그 소확행 말이다.


나는 오늘도 소확행을 즐긴다. 예쁜 텀블러에 아메리카노를 내려 먹었고, 게임상에서 트럭 운전사가 되었고, 브런치에 이 글을 올리고 나선 공포 영화를 볼 생각이다. 물론 에어컨을 켜고 얇은 이불을 덮은 채로.


이런 나를 두고 쓸모없는 시간을 보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쿨하게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나는 손에 잡히지도 않는 궁극적인 행복을 위해 아주 잠깐 소소한 행복을 즐기는 것뿐이니까. 이 시간이 나에겐 새로운 원동력이 될 테니까.


행복을 딱 하나로 정해두고 사는 사람은 결국 행복에 도달할 때까지 불행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행복을 작게 쪼개어 즐기는 사람은 최종 목표 때까지 행복한 사람일 수 있다.


그러니 우리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즐기자.


죄책감은 잠시 접어두고서, 행복하다는 사실에 집중하자.


행복할 자격이 없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행복해야 할 사람들이다.


크든 작든 행복이란 것을 마음껏 들이마시며 콧노래를 불러야 할 사람들이다.


소소한 행복을 따라 걷다 보면 언젠가는 거대한 행복이 눈앞에 있을 것이다. 확신한다.


우리, 정작 행복을 위해서 불행해지진 말자.


행복의 의미를 퇴색하지 말자.


그럼 저는 여기서 이만.


지금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즐길 수 있길 바라며.


저는 발락을 보러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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