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티 플레져, 엽기 떡볶이
배달 기다리면서 쓰는 글
누구에게나 소울푸드는 있다.
먹으면 행복해지고, 나빴던 기분을 만회할 수 있고, 힘이 나는 그런 음식 말이다. 고작 한 끼로 그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니 정말 가성비 갑 힐링 아이템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나의 소울푸드는 소고기와 초밥이다. 그것들이 합쳐진 불초밥은 평생 먹을 수 있다고 자부할 정도다.
그런데 내겐 소울푸드 말고도 내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음식 하나가 더 있다.
그건 바로 나의 길티 플레져, 동대문 엽기 떡볶이.
음식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일탈이다.
물론 코어 팬이 많은 음식이라 “이게 왜 길티 플레져죠?”라는 반응도 많을 것 같은데, 내겐 확실히 길티 플레져이다.
출처 : 동대문 엽기 떡볶이 홈페이지첫째, 가격이 미쳤다. 지금이야 만원이 훌쩍 넘는 떡볶이들이 많아졌지만 내가 처음 엽기 떡볶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땐 떡볶이 삼천 원 어치면 친구들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시대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난 초등학교 때 오백 원짜리 컵떡볶이를 먹고 자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떡볶이를 만원 넘는 돈을 주고 산다고?
게다가 떡볶이는 보통 다른 음식과 곁들여 먹는다. 이를테면 튀김이라든가, 주먹밥이라든가, 달걀찜이라든가. 그래서 엽기 떡볶이를 시키면 늘 이만 원이 훌쩍 넘는다.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여담이지만, 떡볶이 등의 분식류를 그 돈 주고 주문한다는 것이 부모님에게 등짝을 맞을 일이라 이따금 엽기 떡볶이의 가격을 속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역시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나 보다.
출처 : 동대문 엽기 떡볶이 홈페이지둘째, 내 위에 해롭다. 처음 엽기 떡볶이는 말도 안 되게 매운 떡볶이로 떴다. 우리가 흔히 분식집에서 먹던 달짝지근하고 매콤한 떡볶이와는 다르다. 말 그대로 맵고 자극적이다. 먹고 나면 입 주위가 아릴 정도로 지독히도 맵다. 가학적인 수준이다.
위염을 달고 사는 나는 엽기 떡볶이를 시키면 어김없이 탈이 난다. 아무리 위장약을 먹어도 하루 종일(심하면 다음 날까지) 속에선 난리가 난다. 어느 배달 음식이나 몸에 좋은 건 없다지만 이건 특히 더 내 건강을 깎아 먹는 기분이다.
출처 : 동대문 엽기 떡볶이 홈페이지셋째, 내가 사는 곳 주위엔 엽기 떡볶이가 없어서 배달료가 족히 오천 원은 든다. 이건 뭐 진짜 체감상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같다.
출처 : 동대문 엽기 떡볶이 홈페이지넷째, 현재 나는 다이어트 중이다. 목표 체중까지 한참 남은 이 마당에 떡볶이가 도움이 될 리가.
이것이 바로 엽기 떡볶이가 나의 길티 플레져인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다.
먹고 나면 왠지 모를 죄책감과 허탈감이 몰려온다. 반도 못 먹고 남긴 음식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얘야. 오늘 이걸 꼭 먹어야 했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엽기 떡볶이를 먹는다.
기운이 없을 땐 소울푸드가 생각나는데, 희한하게도 도가 지나치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땐 엽기 떡볶이가 떠오른다. 그 감당하지도 못할 매운맛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배달책을 펴고 있다. (배달 어플에도 안 나오는 거리)
아마 스스로를 괴롭혀서 현재의 골칫거리를 잠시 잊는 공포영화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지금 막 떡볶이가 도착을 했다. 나는 잠시 후 또 쓰린 속을 붙잡으며 다신 안 먹는다고 다짐하겠지. 내 3대 허언 중 하나이다.
왜냐면 동그랗게 뭉친 주먹 김밥에다 떡볶이 국물을 슥 비벼서, 어묵, 소시지 탑을 쌓아 먹으면 기분이가 좋거든요. 한계라고 느껴질 땐 달걀찜과 복숭아 맛 우유를 마시면 다시 시작할 수 있거든요.
그냥 이 상상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다.
절대 못 잃어.
힐링 음식이든, 킬링 음식이든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행복해지면 됐지.
우리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마음껏 길티 플레져를 즐기자고요.
독자님들의 길티 플레져는 무엇인가요?
궁금함을 안고서 저는 떡볶이 포장을 뜯습니다.
약하고 소중한 내 위. 오늘도 언니 때문에 고생이 많다. 조금만 참아줘.
그럼 이만. 배가 고파서 사라집니다.
쥐꼬리만 한 인세로 먹는다, 나, 엽기 떡볶이, 오늘도, 행복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