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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ie Jul 15. 2021

결혼 걱정은 셀프

저는 지금 결혼 비적령기입니다

30대가 되니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이런 것이다.


“결혼 안 하니?”


“만나는 남자는 없니?”


“때 놓치면 영영 못 만난다.”


사람들은 참 웃기다. 20대에 결혼을 한다고 하면 너무 이른 거 아니냐며 무슨 사고라도 쳤냐고 묻는다. 그런데 정작 30대가 되면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조금 더 늦으면 적령기를 놓친다며 겁까지 준다.


그렇다면 거꾸로 되묻고 싶다. 결혼 적령기란 언제를 말하는 거고, 또 누가 정하는 거냐고.


부모님 시대에는 여자가 서른 살만 넘으면 노처녀 취급을 받았다. 우리 부모님도 20대 중후반에 결혼을 하셨고, 20대 후반에 나를 낳으셨다. 그러니까 지금 내 나이쯤에는 벌써 둘째를 낳고 치열한 육아를 하시는 중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일까. 나의 서른과 부모님의 서른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나는 아직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어설픈 어른이고, 부모님은 아이를 둘이나 책임져야 하는 진짜 어른이셨던 것이다. 솔직히 지금의 나에게 아이 둘을 육아하고, 그에 필요한 돈을 벌라고 하면 자신이 없다.


물론 요즘은 사람들의 기대 수명이 늘어나며 인생의 중요 행사를 조금씩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 오죽하면 예전 나이에 0.7을 곱하면 지금 나이라고 할 정도다. 그만큼 우리는 윗세대보다는 미성숙하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아니, 나는 이걸 ‘특권’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는 가족이 아닌 우리 스스로를 위해 살 수 있는 시간을 더 얻은 것이다. 모든 것을 유예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른 살이 넘어가면 여자든 남자든 은근슬쩍 결혼 이야기가 나온다. 심지어 ‘더 늦으면 노산’이라는 무례한 말까지 듣는 경우도 있다. 황당하기 짝이 없지. 당사자한테 애를 낳을 건지, 안 낳을 건지를 먼저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애를 낳을 생각도 없는 사람한테 노산이라니. 그야말로 쓸데없는 기우다.




얼마 전, 친구 어머니가 운영하는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갔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친구 어머니가 나를 보며 대뜸 물으셨다. “너도 결혼 안 할 거니?” 인사도 없이 날아온 물음에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갑자기요? 결혼을요?


그러고선 하소연을 시작하셨다. 딸이 도통 결혼을 하려 하지 않는다며. 혼기가 그토록 찼는데 왜 연애만 하냐며. 어떻게 ‘결혼 생각이 없다’는 말로 엄마 가슴에 못을 박을 수 있냐며. 친구 어머니는 친구가 아주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가 보는 친구는 아주 건실하게  살고 있다. 치열한 패션업계에서 말단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버텨왔으며,  바쁜 와중에 연애도 끊임없이 했다. 묘도  마리나 키우며 너무나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 중이다.


그런 성실한 친구가 고작 결혼을 안 한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불효하는 자식이 되어버리는 걸까. 나는 그게 이해가 안 되었지만 반박도 하지 못하고 맞장구만 치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너도 얼른 시집 가!”라는 말을 듣고서 그날의 대화는 끝이 났다.


그날 이후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이 사회에서 그토록 ‘비정상’적인 일인가. 그래서 나의 부모님께도 물었다. 비록 내게 티는 내지 않으셨지만 우리 부모님들도 내심 내가  결혼을 하시길 바라고 계셨다. 모든 가족이 다 떠나고 덩그러니 남을 나를 걱정하시는 거였다.


그럼 난 이미 지금 혼자만의 삶도 너무 벅차고 힘든데, 여기서 결혼까지 해야 하는 거야? 타인이던 남과 가족이 되어 서로에게 맞춰가며, 서로의 부모님을 챙기고, 곧이어 태어날 아이까지 키워야 하는 거야?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 싫은 게 아니라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떠밀리듯 한 결혼이 과연 행복할까, 하는 염려가 들었다. 그러다 불행해지면 나는 결혼을 종용한 나의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을까? 줏대 없이 남이 하라는 대로 했다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리면 어떡하지?


고민 끝에 나는 생각했다. ‘내 나이’는 결혼 적령기가 맞다. 하지만 ‘나’는 결혼 적령기가 아니라고.


평균이 그러하다고 나도 평균이 될 필요는 없다. 나처럼 늦는 사람도, 나와 달리 이른 사람도 있어 지금의 평균이 된 거니까. 평균은 말 그대로 중간 값이지 절대적인 치수는 아니다. 그러니까 결혼 시기가 달라도 잘못된 인생은 아니라는 거다. 어차피 남들과 다르게 사는 건 내겐 이미 충분히 익숙하다.


물론 내가 인생에서 가장 예쁜 나이를 지나 이대로 홀로 늙을지도 모른다. 정작 결혼이 하고 싶을 땐 주위에 인연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른들 말씀대로 그때 결혼할걸.’이라고 후회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나는 당분간 결혼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비혼주의자라거나 죽을 때까지 혼자 사는 게 행복하다고 단정 짓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은 때가 아닌 거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다. 나는 현재 이루고 싶은 일이 많고, 아픈 나의 정신을 바로 세우느라 정신이 없다. 여기서 또 무언가가 추가된다면 나는 과부하가 오고 말 것이다.


나는 일로 멋지게 인정받고, 나의 병이 낫고서, 조금 여유로워졌을 때, 이왕이면 옆에 멋진 인연이 나타났을 때, 결혼을 할 것이다.


아마 오늘 이후에도 걱정을 빙자한 결혼 닦달이 날아들 것이다. 나의 앞날에 정말 관심이 많고, 나의 현재를 궁금해하며, 나를 몹시 애틋하게 생각하는 그 사람들에게 말하려고 한다.


“결혼 걱정은 셀프입니다. 저를 아끼시는 그 마음, 정말 감사하지만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분식집에서는 물이 셀프이듯, 내겐 결혼 걱정이 셀프입니다.”


셀프라는데 굳이 직접 결혼 걱정을 떠 다주는 사람들에겐 부가세라도 물릴 생각이다.


잔소리하려면 돈 주고 해 주세요.


이 순간 나처럼 결혼을 강요받고 있는 서른이, 또는 마흔이들. 파이팅입니다. 우리 이모 보니까 결혼 안 해도 혼자 잘 살더라고요. 부담 없이 여행도 다니고, 돈도 마음대로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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