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과 평가 사이
이 사회엔 여러 가지의 칭찬이 있다. 뛰어난 능력에 대한 칭찬, 값진 노력에 대한 칭찬, 착한 마음씨에 대한 칭찬, 숭고한 희생에 대한 칭찬…… 그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이고, 어느 시대에나 있던 칭찬이 있다. 바로 수려한 외모에 대한 칭찬이다.
뗀석기로 사냥을 하던 시절에도, 청동기로 신분을 과시하던 시절에도, 곰이 동굴에서 인간이 되던 시절에도, 삼국이 치열하게 힘겨루기를 하던 시절에도, 궁예가 관심법을 쓰던 시절에도, 새로운 문화가 빗장을 풀고 들어왔던 시절에도 외모에 대한 칭찬은 인류에게 제일 쉽고, 가벼운 칭찬이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데 쓰이기도 할 만큼 흔하다.
나도 어릴 땐 예쁘다는 말을 좋아했다. 빈말이라도 좋았다.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은근슬쩍 나의 외모를 향한 칭찬을 즐겼다. ‘못생긴 것보다는 이왕이면 예쁜 게 좋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20대 중반에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와 친하게 지냈는데 하루는 그 언니가 잔뜩 화가 나서 씩씩댔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이유를 물었고 언니는 대답했다.
“김 교수님(가명)이 나더러 귀엽다고 앞으로 ‘예쁜이’라고 부른다잖아. 그래서 내가 기분 나쁘다고 했더니 나를 방에서 내쫓았어.”
언니는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도, 저급한 애칭으로 저를 부르는 것도 싫다고 했다. 얼굴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니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들을 이유가 없으며, 또 제가 불쾌하니 그것만으로도 성희롱이라고 했다.
그 당시 예쁘다는 말이 그저 칭찬인 줄 알았던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겉으로는 언니를 위로했지만, ‘이 언니는 왜 이렇게 예민하지?’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좋은 의미로 한 말 가지고 괜히 사람을 이상하게 몰아간다느니, 분위기 싸해지게 만든다느니, 괴짜라느니 뒤에서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속된 말로 그 언니는 찍혔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은근한 따돌림을 당했다. 언니와 나는 다른 부서에서 일했기에 도와주고 싶어도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결국 그날의 일이 직접적인 이유가 되진 않았지만 여러 일들이 서서히 쌓여 언니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말았다.
그다음에 들어온 사람은 나와 동갑이었는데 싹싹한 아이였다. 예쁘다는 칭찬을 들으면 감사하다며 웃는 아이였다. 그 결과, 그 부서 모두가 그 아이를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언니는 참 깨어있던 언니였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었던 데다 그러한 발언에 문제의식조차 없던 시절에 꽤나 당돌하게 윗사람을 지적했으니. 사실 대놓고 성희롱을 당해도 내부고발이 쉽지 않았던 시기였는데 말이다.
시대가 바뀌며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었다. 당연시하던 생각들에 의문이 제기되었고, 그땐 문제가 되지 않던 발언들이 지금은 문제가 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그 언니가 옳았던 거다.
누군가는 요즘 세상이 너무 예민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선의의 칭찬도 마음대로 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이건 칭찬과 별개의 문제다.
A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일이 서툴고, 업무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피나는 노력으로 점점 성장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마침내 회사 내 에이스가 되었다. 이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또 A는 지하철에서 무거운 짐을 든 노인을 만났다. A는 본인도 몹시 고된 출근길이었지만 노인을 도와 계단 위까지 짐을 옮겼다. 덕분에 노인은 무사히 지하철 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것 역시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반면 A는 준수한 외모를 가졌다. 더불어 키가 크며, 길고 고운 손가락을 가졌다. 직장동료들은 그에게 ‘잘생겼다’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그런데 이건 과연 칭찬일까?
위의 예와 아래의 예는 확연히 다르다.
우선 위의 예는 이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고, 착한 마음씨를 베푼 것에 따른 칭찬이다. 게으르고 못된 마음이었다면 A는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또 난처한 노약자를 보고도 지나치는 매정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고 한결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우린 그 과정을 칭찬해줘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래의 예는 이 사람이 그저 타고난 것들을 한 번 더 짚고 넘어갔을 뿐이다. 난 개인적으로 이것을 칭찬이 아닌 단순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그냥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한 것이다.
만약 A가 평가하는 사람의 성에 차지 않는 외모였다면 그는 분명 ‘못생겼다’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이게 어떻게 칭찬이란 말인가.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부분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이 칭찬인가. 난 아닌 것 같다.
이건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 남자든, 여자든 누군가에게 외모를 평가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렇게 생겨도 나고, 저렇게 생겨도 난데 왜 타인이 감상평을 말하는 건지. 감상평을 듣는다고 한들 달라지는 문제도 아닌데.
물론 외모에 대한 칭찬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더불어 서로 그러한 평가가 용인된 사이에서 주고받는 이야기까지 잘못된 것이라 규정할 생각은 없다. 그건 그 사람들의 취향이거니와 그들 관계의 특수성이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외모 칭찬을 불쾌해하는 사람을 예민하다거나 특정 성별 우월주의로 몰고 가지 않았으면 한다. 상대가 싫다고 하면 되도록 하지 말았으면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성별에 국한된 게 아니다.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나뉘는 문제다.
나 역시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기에 매일 돌이켜보며 반복한다. 누군가의 얼굴을 평가하지 않았는가. 누군가의 몸매를 평가하지 않았는가. 칭찬이라는 미명 하에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진 않았는가.
시대마다 선호하는 외모는 다르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외모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처를 받는 사람이 생겨난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병폐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외모에 대한 칭찬을 멈춰야 하는 이유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이 생겼으며, 비슷한 몸매를 가졌다는 게 더 기괴하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시대가 선호하는 외모’를 동일하게 가졌다면 그건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개성이 있어 아름답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과 나는 다르게 생겼지만, 그래서 나는 타인과 구별이 되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콤플렉스라고 여겨왔던 부분은 오히려 나를 돋보이게 해주는 나만의 특성이다.
그러니까, 자존감을 갉아먹는 외모 평가는 멈춰!
자신이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동경하는 사람처럼 되지 못해 괴로운가.
하지만 난 이름도 모르는 모니터 머너의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뻔한 말이겠지만 당신은 당신이라 아름답다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은 고유의 매력으로 빛나는 것이라고.
그러니 무례한 사람들의 가벼운 말에 너무 상처 받지 말라고.
어차피 시대가 선호하는 외모는 돌고 돈다. 현재의 미인상도 언젠간 지나간다. 그런 줏대 없는 기준 때문에 나 스스로를 비하할 필요는 없다.
나는 아름답다.
당신도 아름답다.
우리 모두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