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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ie Jul 30. 2021

감정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감정의 손아귀에 있거든요


정신과 진료 초반 내가 의사 선생님께 가장 자주 했던 말이 있다.


“감정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힘든 나를 알아봐 달라, 위로해달라 등의 의미가 담긴 말이 아니었다. 정말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나는 나의 감정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다소 메마른 사람이 되어도 좋으니. 로봇 같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으니.


나의 말에서 진심을 읽은 선생님은 내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감정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고. 감정은 우리를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고, 또 감정은 틀린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게 해 준다고.


맞는 말이다. 선생님은 한 번도 틀린 말은 한 적이 없으니 어김없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때론 알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렇게 인간에게 꼭 필요한 요소라고 하더라도 나는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 감정이란 것이 오히려 내 목을 세게 쥐고 나를 죽이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의 동물이라고 했다. 우리는 예민한 감정으로 다른 동물과는 다른 특별한 사회를 구축해왔고, 조금 더 고차원적인 진심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좋은데 싫은 미묘한 마음, 혼자 있고 싶지만 같이 있고 싶은 역설적인 마음 등 조금 더 세분화된 감정도 익숙하게 느낀다.


난 이게 인간이 다른 동물과 차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족보행을 하며 도구 사용이 가능해졌다는 것도 현대 문명 발달에 큰 기여를 했지만, 곰곰이 떠올려보면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꼭 인간만은 아니다. 다른 영장류와 그 외 소수의 동물들도 도구를 사용한다. 하지만 그들이 인간만큼 꼼꼼한 감정을 느낄 리는 없다고 확신한다.


감정은 때론 인간에게 큰 재앙을 몰고 온다. 정복욕, 질투, 복수심 등은 전쟁과 살인, 보복 행위 등 아주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인간은 감정을 좋은 쪽으로 사용한다. 동정심은 불우한 이웃을 가엾게 여기게 만들고, 친근함은 인간으로 하여금 무리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하고, 부러움은 새로운 발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후회라는 부정적인 감정조차 우리를 일깨워 한 걸음 나아가게 한다.


특히 그중 가장 상위에 위치한 사랑은 인간을 숭고하게 만들고, 이 사회를 유지시키는 근간이 된다. 사랑은 위대하고, 사랑은 거룩하다. 사랑 하나만으로도 감정은 인간에게 퍽 중요한 존재라는 걸 증명해낸다.


이렇게 스스로도 감정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면서도, 감정이 사라지기를 간절하게 바랐던 건 그만큼 괴로웠기 때문이다.


이토록 이로운 감정은 이따금 사람을 잡아먹는다. 나도 몸을 반쯤 잡아먹혔기에 그 느낌을 너무 잘 안다. 그땐,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지배당하고서 육체만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다. 잘못된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 나쁜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강요당한다.


어느 날은 끝을 알 수 없는 우울함을 느꼈다가, 또 어느 날은 끝을 알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또 또 어느 날은 그 두 개가 24시간 동안 무한히 반복되기도 했다.


내가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감정 기복이 이어지면 나도 힘들었지만, 내 주위 사람도 힘들어했다. 영문을 물어도 나조차도 몰랐기에 답해줄 수 없었다. 우린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며 점점 미워하게 됐다.


나는 주위 사람들은 원망하면서도 내심 모든 원인이 나라고 생각했다. 그런 날은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감정은 나를 최악의 상황까지 밀어붙였다. 살 이유를 느끼지 못했고, 큰 사고가 나서 고통도 없이 죽길 바랐다. 죽고 나서는 적어도 감정 기복으로 힘든 일은 없을 테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위험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의사 선생님께 말했다. 멍하니 아무것도 못한 채 하루를 보내도 좋으니 최대한 센 약을 써달라고. 그냥 바보가 되게 만들어 달라고.


물론 내가 그렇게 애원한다고 한들 의사 선생님이 부탁을 들어줄 리는 없다. 모두가 정신과 약의 부작용에 대해 걱정하지만, 사실 정신과 약 처방에 가장 보수적인 사람은 정작 정신과 의사들이다.


의사 선생님은 긴 상담을 통해 나를 설득했다. 종이에 나의 장점에 대해 쓰라고 했고, 이렇게 좋은 사람이니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충동적인 생각이 들 때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알려주셨다.


그 결과 다행히도 나는 현재 살아있고, 나를 바보로 만들 만큼 독한 약을 먹지도 않는다. 적당한 선 내에서 약을 먹으며 자꾸만 나의 존재의 필요성에 대해 상기했다. 어찌저찌 오늘도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주 가끔은 좋은 하루를 보낼 때도 있다.


여기서 이만. 나는 모든 걸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렇게 끝이 나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인생은 동화가 아니다. 불행이나 우울의 끝은 없다. 많이 나아졌긴 했지만 감정 기복이 아예 없을 순 없다.  나는 종종 감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실행에 옮겨서도 안 될 못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여태껏 나를 지탱해 온 약에 대한 의존도 높아졌고, 감정이 널뛰기를 하는 날이 있다. 완치는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오늘 이 글은 모든 걸 극복한 사람으로서 아직도 극복한 못하는 사람에게 힘을 주기 위한 희망적인 글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절망적인 글이다. 우리는 평생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고 언제 또 심연 속에 빠질지 알 수 없다.


허탈하겠지만, 이 글은 그저 나의 상태 관찰기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감정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뭐, 내일은 또 감정으로 인해 행복해질 수도 있겠지만 일단 오늘은 그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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