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인정해야 할 감정, 열등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이런 옛 속담이 있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꼴을 보기 힘들다는 사람 심리를 표현한 속담이다. 옛 속담, 사자성어 등을 보면 가끔 정말 신기하다. 우리는 다른 시대, 다른 문화 속에 살고 있는데 모든 순간을 관통하는 감정은 같다.
열등감.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소 껄끄럽고 어려운 주제다. 내용 자체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우리의 가장 낮은 곳에 존재하는 감정이며, 남들에게 쉽사리 보여주기 힘든 감정이란 의미다.
물론 소수의 사람은 본인의 열등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우린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던가.
"못났다, 못났어. 그렇게 부러우면 자기가 노력하면 되지. 애도 아니고 왜 저래."
맞는 말이다. 누군가의 노력으로 일구어낸 결과, 혹은 타고 태어난 선천적인 재능이라고 할지언정 남의 성과를 함부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더더욱 열등감 표출로 당사자가 상처를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비판을 하는 사람 중에도 분명 열등감의 씨앗이 숨겨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미 싹이 돋아났을 수도 있고. 표현만 안 할 뿐이다. 그게 예의니까.
우리는 그걸 몹시 부끄러운 일로 여기지만 사실 열등감은 본능적인 것이다. 옆 사람이 살면 내가 죽던 아주 척박한 원시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유전자다.
농사의 발달과 산업혁명으로 우리는 더 이상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하는 극한 상황 속에 놓여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여전히 열등감이 있다. ‘생존’이 아니라 ‘성공’을 위해 경쟁하는 중인 거다.
나도 이따금 텔레비전에 나오는 또래 연예인들의 부유한 모습,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위치에 있는 작가님의 기사 등을 보며 열등감이 생기곤 한다.
하지만 그중 우리를 가장 악독하게 괴롭히는 것은 바로 ‘아는 사람’의 성공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지인의 승리를 기뻐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아예 모르는 사람의 성공보다 약간이라도 친분이 있는 사람의 성공을 더 괴로워한다.
오죽하면 속담에서도 ‘옆 동네 아무개’가 아닌 ‘사촌’이라 하겠는가.
관계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열등감이란 것은 부스터라도 단 듯 미친 듯이 폭주한다. 겉으로는 축하해주면서도 속으로는 얄밉기까지 하다.
이유가 뭘까. 같은 곳에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저 멀리로 나아가버려서? 아니면 비슷한 수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한참 못한 사람이란 걸 자각해서? 그것도 아니면 그 사람과 나의 인간관계가 겹쳐 내게도 은근한 영향을 줘서?
단정 짓지 못하겠지만 심리적으로 무척 복잡한 복합적인 이유일 테다.
그래서 본래 나의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보다 나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내 사람이라고 한다. 그 말에 무조건적으로 공감한다. 나조차도 내 지인 작가의 성공에 은근한 열등감이 생겨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했고, 반대로 내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형식뿐인 축하가 돌아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나 나약하고, 새침한 존재들이다.
나도 이런 모습의 내가 싫었다. 그 사람 인생에서 몇 번 있을지 모르는 그 대단한 일을 왜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할까. 무슨 친구가 그렇게 밴댕이 소갈딱지야. 자책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다그쳐도 나는 열등감을 없앨 수 없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열등감은 인류가 탄생과 거의 비슷하게 생겨났기에. 우리는 아마 평생 우리보다 잘난 이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특히 그 잘난 이가 지인이면 더욱 극심한 질투를 하며 살 것이다.
그렇다고 열등감이 생기면 생기는 그대로 둬도 되는 걸까. 그건 또 아니라고 본다. 내가 마음대로 열등감을 느끼고 차가워지면 그걸 당하는 사람의 심정은? 우리는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므로 일말의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나의 실패의 이유가 너의 성공이 아니다.
이 말을 깊이 새기고 아는 사람과 나는 별개의 존재로 끊어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한 레이스에서 1, 2등을 다투는 것이 아닌 그저 서로의 레이스 위를 달리는 거다. 각자의 레이스엔 절대 침범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저만의 목표를 가지고 혼자만의 승리와 실패를 결정지어야 한다.
내가 실패했지만 친구가 성공한다고 한들 화가 날 일은 아니며 오히려 축하해줄 일이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는 금방 나의 레이스를 두고 친구의 레이스에 끼어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점을 인식하고 다시 내 레이스로 돌아오려는 노력이라도 한다면 전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축하에 단 1g일지언정 진심이 더 담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열등감은 없애는 게 아니라 다스리는 거다. 한창 기쁨을 만끽해야 할 누군가가 나의 열등감으로 인해 기분이 잡치지 않도록.
또, 열등감을 우리 발전의 도구로 잘 활용해야 한다. 적절하게만 사용한다면 좋은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친구가 차를 샀단다. 나는 엄두도 못 내는 차를. 그렇지만 노력해봐야지. 진심을 담아 축하해줄 수 있도록. 그래야 내가 축하받을 일이 있을 때 돌려받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는 아는 사람에게 조금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일반화는 아니에요. 그저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위해 쓴 글입니다. 아는 사람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정말 부럽군요. 저도 언젠간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열심히 수련을 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