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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ie Aug 16. 2021

난생처음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봤다

오로지 생계유지를 위해서


요즘 들어 일이 잘 안 풀렸다.


야심 차게 준비한 공모전은 줄줄이 고배를 마셨고, 함께 일해오던 플랫폼과 출판사에서도 원고를 거부당했다. 어쩌다 운 좋게 이어오던 ‘글로 먹고살기’가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사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글로 생계를 유지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까지 약간의 요행을 누려왔는지도 모른다. 그럴 가치가 있는지 모호한 원고로 ‘작가님’이라는 과분한 호칭을 들었으며, 거대 플랫폼은 매월 내게 원고료를 쥐여줬었다.


나는 요행이 나의 능력이라 생각하며 취해 있었고, 미래에 대한 대비보단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에 몰두해왔다. 이런 나날이 계속 이어지리라 착각했으니까. 나의 원고를 원하는 곳이 적어도 한 곳은 있으리라 자만했으니까.


그렇게 6개월에서 1년 사이의 시간이 흘렀다. 길다면 긴 그 기간 동안 나는 수입도 없이 좁은 작업실 겸 방에서 글을 쓰는 행위를 반복했다. 그렇다고 하여 내가 나태했던 것은 아니다. 실패했을지언정 나는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사적인 시간은 거의 보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처참했다. 나의 메일함은 반려 메일이 넘쳐났고, 독자님들에게서 서서히 잊히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현실적인 부분에서 발견되었다. 나는 더 이상 ‘자유로운 예술가’인 척할 여유가 없었다. 통장 잔고가 완전히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자유도 결국 돈에서 나온다.


소위 대박 난 작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난 벌이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수익이 없는 통장은 어떻게든 결국 점점 야위어갈 뿐이다.


약 한 달 전부터 금전적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야 하나. 아무런 경력이 없는 나라도 뽑아줄 회사가 있나 찾아봐야 하나.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그럭저럭 버티던 20대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30대의 나는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 최소 백만 원은 넘어가는 어른이 된 것이다.


종합보험료(실비 포함)

휴대폰 요금

건강 보험료

국민 연금

카드 할부 값

OTT 3곳 구독료 + 유튜브 프리미엄 요금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요금

부모님께 드리는 몹시 소소한 생활비

각종 병원비


이건 내가 정말 숨만 쉬는 상황에서 나가는 돈들이다.


그런데 지금의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숨만 쉬지 않았다. 매달 창의적인 지출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러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나의 소비 성향에 되돌아보게 되었다.


확실히 나는 미니멀리스트는 아니었다.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무조건 사야 한다. 그게 내게 필요가 있을지 없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결제를 해버린다. 어쩌다 대견하게 참아낸다고 하더라도 그게 하루 종일 머릿속에 맴돌아 결국 자기 전에 결제 버튼을 눌러버린다.


특히 신용카드가 생기며 나는 그게 고가든 저가든 가리지 않게 되었다. 할부란 좋은 시스템이 있었으니까. 덕분에 나의 좁은 작업실 겸 방에는 필요 없는 물건들이 쌓여가고 있다. 그나마 명품에는 흥미가 없어졌으니 더 나락으로 가는 것은 피할 수 있었는지도.


믿거나 말거나 어떤 무속인께서는 나는 평생 과소비를 할 팔자라고 하셨다. 그러지 않으면 몸이 아플 거라고.


그다음, 우리어떤 민족인가. 배달의 민족이다. 나는 자타공인 배달 광이다. 대식가는 아닌데, 매일 새로운 음식이 먹고 싶은 편이다.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에서 먹방을 보면 반드시 그것을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배달 지역이 아닌 음식점엔 웃돈을 얹어주고서라도 기어코 배달시키고야 만다. 하루에 식사와 디저트까지 2~3 배달을 시켜먹을 때도 있다.


또 그다음, 최근 들어 내겐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바로 게임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30년 가까이 게임에 관심조차 없다가 뜬금없이 게임이 하고 싶어 졌다. 게이밍 컴퓨터를 구매하고, 스팀에서 유명한 게임은 모조리 다운받아 놨다. 마음이 허하거나 무력감이 생길 때 게임 수집은 극에 달한다. 아마 게임을 할 때만큼은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어서 중독되는 모양이다. 아직 손도 못 댄 새로운 게임들이 보관함에 넘쳐난다.



사실 이 모든 게 얼마 전 ‘소확행을 찾아서’라는 글에서 소개했던 소확행 목록과 겹쳐 다소 이율배반적인 면이 있다는 걸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이다.


여전히 소확행은 나쁘지 않고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보시다시피 지금 나의 소비는 소소함을 넘어서 생계를 위협할 수준이라 살짝 자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규모는 줄일 테지만, 소확행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아무튼, 이렇게 예산과 전혀 맞지 않는 소비 행태를 이어오던 나는 결정의 기로에 서야 했다.


1. 아르바이트를 해서 이 재정난을 해결해야 하나.


2. 일단은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나.


아르바이트를 하면 당장 닥친 재정난은 해결할 수 있었다. 적어도 아르바이트는 일하는 만큼 대가가 돌아오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글은 아니다. 글은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그에 맞는 대가가 돌아오지 않을 때가 부지기수다. 결국 작가는 출판사와 독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죽을 만큼 노력할 수는 있지만 글이 작가의 손을 떠난 후엔 그게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작가의 소관이 아니다.


내 나이와,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했을 땐 나는 아르바이트나 간단한 사무직이라도 찾아야 하는 게 맞다. 내가 수습할 수 있는 선에서 충치가 생겼을 때 바로 치료하는 게 올바른 방법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이번에도 나의 꿈에 배팅을 하기로 했다. 내 글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은 아니다. 다만 글을 쓰는 내가 참 좋기 때문이다. 때론 글은 나를 무기력한 패배자로 만들지만, 반대로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것도 글뿐이다. 다른 일을 하는 나는, 내가 보기에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다.


물론 아르바이트와 글을 동시에 병행하면 어떠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나의 저질 체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실제로 두 개를 병행했을 때, 나는 글에 올인하지 못했다. 100%가 아닌 40%의 에너지를 짜내 꾸역꾸역 글을 썼다. 심지어 그 퀄리티 낮은 글을 매일 쓰지도 못했다. 일이 우선순위가 되고, 글은 시간 날 때 대충 써도 되는 부록 취급을 받던 것을 똑똑히 경험했다.


그건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었다. 인기가 없는 글을 쓸지언정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글은 쓰고 싶지 않았다. 우선 나는 작가니까.


그리하여 아직은 조금 더 불안정해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스스로와도 그렇게 약속했다. 후회 없이 모든 걸 쏟아부어 보고 더 이상 미련이 없을 때 손을 놓자고. 나중이 되어 한이 되지 않을 때까지 집중해보자고. 아직 내 30대는 한참 남아 있으니까.


아마 지금의 이 선택을 후회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 막을 수 있을 때 막아볼걸, 하고 지금의 나를 원망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지금 당장은 만족스럽다. 필연적인 선택이었고, 내 30대를 가장 나답게 보내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거창하게 썼지만 딱히 별 볼 일 없는 고민의 시간을 끝마치고 난 후엔 실질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였다. 당장 빠져나가야 할 돈이 줄줄이 문자로 공지되고 있었고, 두려운 월말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난 돌고 돌아 오늘 글의 제목을 다시 이야기한다.


난생처음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봤다. 다행히도 신용등급은 낮지 않아 승인은 바로 되었다. 다만 개설 직전에 망설였던 건 사실이었다. 학자금 대출도, 전세 대출도 받아본 적 없던 나는 ‘빚’이란 자체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도 비교적 늦은 나이에 만들었으니 막연한 두려움과 부담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테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마이너스 통장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정확히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일단 내야 할 돈은 내야지.


그렇게 나에겐 갚아야 할 빚이 생겼다. 덕분에 나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할 명분도 함께 생겼다.


역설적이게도 그토록 두려워했던 마이너스 통장은 내게 새로운 동기부여가 되었다. 더 열심히 살아야지. 마이너스가 플러스가 되는 그날까지.


또, 생각 없이 쓰던 돈을 줄이려 한다. 대확행이 되어버린 소확행의 본래 취지를 되찾으려 한다. 뒤늦게 소비관을 제대로 확립해보려 한다. 내게 꼭 필요한 물건과 허영심으로 사고 싶은 물건을 구분해보려 한다. 배달 빈도수도 현저히 줄여보려 한다. 나의 분수를 찾아가려 한다. 생계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 하는 일은 없도록.


“사고 싶은 거 덜 산다고, 먹고 싶은 거 덜 먹는다고 죽는 건 아니잖아?”


……라고 마이너스 인생인 30대가 말했습니다.




뭐, 이런 복잡한 사정(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사정) 끝에 어찌저찌 이번 한 달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쓰고 있는 원고는 부디 팔릴 만한 글이길 바라며.


나의 자금난이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되길 바라며.


내 치열한 30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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