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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Jul 04. 2021

포지타노에서 노숙을 했다.

이태리 덕후의 시골 산책 8.  라벨로와 포지타노

우물 안 개구리 중에서도 우물 벽도 한번 안 타본 순종적인 개구리로 살았던 내가, 문득 휴학을 하고 4개월간 혼자 여행을 하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를 쉬고 여행 한가는 것이 참 별일도 아닌데, 그때는 얼마나 불안해 보였는지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전쟁을 해야만 했다. 주입식 교육으로 떠먹여 주는 공부에 익숙하다가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는 대학생활이 혼란스러웠고 재미가 없었다.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는 스스로에게 매일 살망을 거듭했다. 잠시 모든 것에서 먼 낯선 곳에 나를 덩그러니 던져놓고 싶었다. 학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주의 짧은 여행을 한 적이 있지만, 혼자 멀리 여행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영어는 지금보다도 더 못했고, 스마트폰은 있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대학생이었으니 내 이름으로 된 신용카드도 하나 없었다.


남들은 장기여행을 어떻게 가는지, 무슨 가방에 어떤 짐을 넣고 가는지, 숙소는 어떻게 예약을 하는지, 도착해서 숙소는 또 어떻게 찾아가는지 모든 게 막막하기만 했다. 아무리 장기여행이라고 하더라도 짐을 많이 들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긴 고민은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들고 다니던 책가방에 짐을 꾸렸다. 여름에 남부 유럽을 다니는 것이니, 짐이 얼마나 필요하겠나 싶었다. 정말 여벌의 옷 한 벌씩과 수영복, 속옷, 그리고 론니플래닛과 운동화 한 켤레만 넣고 떠났다. 이태리로 출국하는 항공편 중 가장 저렴한 표를 샀다. 로마에 있는 호스텔을 이메일로 예약했고, 나머지 숙박은 그때 가서 정하기로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작부터 대단한 결심을 하고 자신만만하게 자유여행을 떠난 것도 같지만, 현실은 나에게 정보도 대책도 그냥 없었을 뿐이다. 짐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여행의 일정을 짜고 목적지에서 어떻게 여행을 하고, 남아도는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재미있게 꾸려야 할지 아무런 감이 없었다. 론니플래닛의 로마 챕터를 읽고 또 읽으며 관광지들을 돌아다니기만 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볼거리를 보고 음식을 먹었지만 크게 재미를 못 느꼈다. 누가 말을 걸까 봐 무서웠고, 말을 걸어주지 않아서 섭섭했고,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시간이 어색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짐을 줄이기 위해 론니플래닛 이탈리아편에서 로마를 찢어내어 호스텔에 놓고, 아말피해안으로 가기 위해 살레르노의 호스텔을 예약했다.


호스텔에 묵는 사람이 6명밖에 없었다. 독일에서 온 가족과 나를 포함해 혼자 여행을 온 여자 셋이었다. 한 명은 금방 다른 곳으로 떠났고, 또 한 명은 미국에서 온, 나보다 스무살이 더 많은 샐리였다. 피부가 아직 뽀얀 데다 폴로 모자와 폴로셔츠를 세트로 곱게 입고 눈만 껌뻑이는 나에게 샐리는 친절하게 말을 걸어왔다. 미국, 그것도 명랑함의 상징인 캘리포니아에서 와서 그랬을까? 샐리는 모두에게 친절하고, 무슨 말을 해도 쾌활했다. 영어가 서툴고 모든 게 어색한 나조차도 무장해제시키는 특유의 무드가 있었다. 지금이야 ‘N잡러’가 곧 당연해 질 것 처럼 여기기도 하지만 그 때만 해도 직업을 한 번 정하고 나면 평생 다녀야만 했던 부모님 밖에 보고 자란바가 없었을 때다. 샐리는 여행사에서 일하면서 타투 그림을 그려 팔기도 하고, 엽서나 카드를 디자인하기도 하며, 밤에는 바텐더로도 일한다고 했다. 그렇게 벌어서 일 년에 두 번씩은 꼭 길게 여행을 한다고 했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피부에 등 전체에서 팔까지 장수하늘소와 무당벌레, 꽃 그림으로 타투를 새긴 외모도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았다. 스치는 사람 모두에게 코를 찡긋하며 '챠오!(Ciao)'하고 인사한 뒤 윙크를 잊지 않는 것도 못내 충격적이었다. 우선 아말피에 오긴 왔지만, 어디를 가야 할지도, 거기서 뭘 해야 할지도 몰랐었던 나는 샐리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다. 나와 샐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카페에서 카푸치노와 페이스츄리를 먹으며 오늘은 어디를 가볼지 결정하고, 버스 종일권을 사서 아말피해안 중 하나를 정해 거기에서 낮 시간을 보내는 식으로 여행했다.

샐리의 멋진 타투


카페에 들어가 카푸치노를 주문할 때도, 버스에 내리고 탈 때도, 버스 시간이 언제인지 물어볼 때도 샐리는 매력이 넘쳤다. 애교가 넘치는 말투와 눈빛, 영어를 잘 못하는 나와 이태리 사람들에게도 통하는 유머, 말 끝에 붙이는 어깻짓이나 손짓들도 매력적이었다. 샐리 덕분에 사람들은 모두 우리에게 호의적이었다. 식당에서는 공짜로 와인을 줬고, 마을 사람 중에는 방금 잡아온 문어를 요리해 나눠 주기도 했다. 한 해안에서 다른 마을로 배를 태워준 사람도 있어다. 아말피 해안의 도로는 ‘죽기 전에 가 봐야 하는 해안도로’ 같은 것에 꼭 꼽히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아슬아슬한 절벽길에 좁은 일차선 도로가 뱀 또아리 처럼 구불구불하게 나 있는 도로다. 운전을 하는 사람도, 그 차에 타있는 사람도 스트레스 없이 이동하기 어려운 곳이다. 때문에 덩치가 큰 SITA 버스는 연신 시끄럽게 경적을 울리지 않으면 안 됐다. 나는 이 경적소리가 몹시도 거슬렸다. 그런데 샐리는 경적이 울릴 때마다 “브라보! 빵빵 빠앙!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어요!”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신경이 곤두서 있던 운전기사도, 더운 날 좁은 버스에서 짜증을 부리던 승객들도 피식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샐리는 낮의 일정이 끝나고 밤에 숙소에 돌아와 씻고 나면 숙소 중정에 나가 칵테일을 마셨다. 레몬 첼로에 아이스티를 섞어 만든 칵테일을 나에게도 권하며 론리플래닛을 펼쳤다. 아말피 해안의 세부 지도 페이지를 펼치고 샐리는 나에게 말했다.

“여기에 뭐가 있을 것 같지 않아? 여기 작은 식당이 하나 있나 봐! 너무 귀여울 것 같아!”

샐리는 아말피, 포지타노, 미노리 같은 아말피 해안의 큰 관광지들이 아닌 식당 하나만 있는 아주 작은 해안이나 산속의 마을 같은 곳을 찾아냈다. 론리플래닛에도 자세한 설명이 없고 그곳에 있는 식당 정보만 아주 간단하게 실려있었다.

“식당이 닫았으면 어쩌려고? 진짜 아무것도 없고 식당만 있으면?”

“그럼 점심 천천히 먹고 그 옆에 다른 마을에 뭐가 있나 가보면 되지! 우리 버스 티켓은 종일권이잖아! 여기 안 예쁜 마을이 어디 있겠어! 아말피인데!”

샐리 말이 다 맞았다. 다음날 우리는 아말피에서 SITA 버스를 갈아타고 기사에게 지도에게 본 그 작은 마을로 가달라고 했다.

“콩카데이 마리니 업!! 윗마을이요! 바다 말고요!”

“콩카데이 마리니 수영하러 가려고요?”

“아니요! 마레 말고 업! 마운틴! 위로 가려고요.”

버스 기사는 거기에 뭣하러 가냐는 질문을 내내 던지더니 우리를 내려줬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맛있게 생면 파스타를 먹은 곳은 바로 그곳이었다. 반죽을 조금씩 떼어 손으로 도르르르 말아낸 반죽에 호박과 신선한 생선으로 맛을 낸 파스타였다. 와인까지 한 잔씩 하고 우리는 걸어서 그 마을을 내려왔다.


conca dei marini로 내려가는 길


샐리가 라벨로에 가자고 했다. 라벨로가 어딘지도 몰랐던 나는 샐리가 가자는 대로 갔다. 우리나라에서 ‘비긴 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적이 있지만, 그 전에는 라벨로에 대한 정보가 여행 책자 어디에도 없었다. 샐리는 지금 그곳에서 클래식 음악축제를 하고 있다며, 취소표가 있으면 공연을 보자고 했다. 최소한의 예산으로 배낭여행을 하는 신분이라 공연표 값이 부담스러웠다. 평소 그 돈이면 일주일 간 식사를 해결할 돈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현장에서 구매가 가능한 당일 공연 표가 두 장 있었다. 나는 뭐에 홀린 것 마냥 표 값을 냈다.


라벨로는 낮에도 아름다웠다. 다른 마을에 비해 뭔지 모를 부티가 났다. 건물 하나하나가 고전적으로 아름다웠고, 그곳을 채우는 여행객들도 여유가 넘쳤다. 짧은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을 한 것은 우리뿐이었다. 여자들은 긴 드레스에 높은 하이힐을, 남자들은 셔츠 차림이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어깨 위에 걸친 숄 매무새를 다듬으며 향긋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걸었다. 꾀죄죄하게 광장에 앉아 그런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레스토랑의 밥값도 조금 더 비쌌다. 이미 공연 표 값으로 많은 돈을 쓴 우리는 젤라토로 저녁식사를 대신하며 광장에 앉아 한참 사람 구경을 했다.


저녁이 되고 공연장에 입장했다. 절벽 끝에 설치된 무대에 오케스트라가 올랐다. 근사하게 차려입은 사람들 틈에서 청반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나와 타이다이 원피스를 입은 샐리가 앉았다.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고, 저녁도 대충 굶은 것처럼 먹어서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공연이 시작되고 조명이 켜지고 음악이 울렸다. 내가 뭘 입고 있었던, 우리가 저녁으로 뭘 먹었던, 좌석에 앉은 우리 모두는 공평하게 무대 위 오케스트라와 그 너머 빛이 반짝이는 아말피 해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보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순간이 또 있을까?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이 무슨 음악인 줄은 몰라도 내 발가락 끝과 솜털 하나하나, 귓볼 뒤가 자르르르 떨렸다.


아홉 시가 훌쩍 넘어 공연이 끝났다. 근사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와 광장에서 칵테일을 마셨다. 우리는 라벨로의 분위기에 취해 술도 마시지 않고 술 취한 사람들처럼 살짝 느슨하게 거리를 걸었다.

“버스가 몇 시에 있지?”

“…?”

“지금 버스 타고 가면 한 한 시간 반쯤 걸리겠지?”

“….? 막차가 몇 시더라?”

우리는 생각이 없었고 막차도 이미 떠나고 없었다. 버스가 있어야 할 정류장에는 택시가 줄지어 있었다. 양복을 근사하게 차려입은 택시기사들이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살레르노요.”

“180유로요”

“네?? 180유로요?”

택시비로 그 돈을 쓸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우리 둘이 가진 현금을 다 합쳐도 그 돈이 안됐다. 아무리 흥정을 해도 100유로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어떡하지?” 배고프고 지친 나는 울상이 됐다.

“포지타노로 가자! 거기 호스텔이 있잖아. 도미토리가 30유로였던 것 같아.”

“거기까지는 어떻게 가?”

“걸어보자! 예쁘잖아! 봐봐! 달빛이 바다에 비치는걸!!”

뭔가 다른 대안을 내놓고 싶은데 정말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슬리퍼를 신고 걸어내려 갔다. 구글맵도 없이 우리가 맞는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걸었다. 도로표지판을 따라 걸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생각만큼 야경이 예쁘지 않았다. 찬란한 네온사인이나 야근하는 사람들이 켜 둔 조명이 없는 고요한 아말피해안은 어둡기만 했다. 배가 너무 고팠다. 샐리와 나는 걷고 또 걸었다. 슬리퍼가 닿는 발등이 까지기 시작했다. 터덜 터덜 걸으면 걸을수록 아킬레스건이 조여왔다. 바다 가까이로 내려오자 안심이 됐다. 그래도 아말피가 가까워진 것 같았다. 계속 걸었다. 익숙한 광장이 나왔다. 아말피에 오니 늦게까지 밤을 즐기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샐리는 히치하이킹을 시작했다. 살레르노나 포지타노로 가는 사람들을 찾았다. 지치고 무서웠던 나는 아무 말 없이 샐리 옆에 서있기만 했다. 결국 우리는 포지타노로 이동하는 부부를 만나 차를 얻어 탔다.


포지타노에 도착했다. 자정이 다 됐다. 샐리가 책에서 본 싼 숙소가 있다고 했다. 골목을 이리저리 뒤져 작은 호스텔인지 B&B인지 모를 곳에 도착했다. 대문은 열려있었지만 사람이 없었다. 현관 앞에 우리는 털썩 주저앉았다. 누가 나오겠지. 기다려보자. 우리는 B&B 현관 옆 벤치에 누웠다. 설마. 누가 나오겠지. 설마.. 설마… 누군가 우리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 드디어 체크인을 할 수 있겠구나! 어렴풋이 눈을 떴다. 날이 밝아 있었다. 현관 앞에서 웅크리고 잠이 든 사이에 하룻밤이 지나있었다.

“누구세요?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누가 문을 열어둔 거지? 괜찮아요?"

노숙을 하다니. 포지타노까지 와서 노숙을 하다니. 창피함과 당황스러움을 느끼기도 전에 온 몸이 아팠다. 아무리 여름이었지만 밤공기는 찼다. 콩벌레처럼 웅크리고 밤을 보냈으니 온 몸이 아플 만도 했다. 목이 칼칼하고 콧물이 났다. B&B직원에게 사과를 했다. 사정을 설명하고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아...! 여기는 10시 되면 체크인이 끝나요. 저런."

꼬질꼬질한 몰골로 B&B를 나왔다. 카페들은 이제 막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닷가 쪽에 앉아 카페가 열기를, 그리고 아말피를 거쳐 살레르노로 가는 버스가 운행하기를 기다렸다. 피곤이 밀물처럼 밀려와 온 몸 구석구석 내려앉았던 부끄러움을 썰물처럼 데려갔다.


"빵 세 개 먹을래. 카푸치노랑."

저녁부터 거의 굶은 나는 배가 고팠다.

"크로와상이랑 초코 들어있는 거랑 크림 들어있는 그 도넛? 그리고 숙소에 가서 좀 자고 점심은 맛있는 거 먹자. 살레르노에서 제일 맛있는 걸로. 신시가지 쪽 메인 광장에 사람들이 엄청 많던 식당이 있던데. 거기 한번 가보자."

분명 나랑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냈는데, 샐리의 눈에는 어디 식당에 사람이 많았는지가 들어왔나 보다.

"막상 살레르노를 많이 안 돌아다녔네."

"우리 호스텔 뒤편으로 있는 산에 올라가면 야경이 멋있데. 그리고 구시가지 안쪽에 보니까 빈티지 숍도 있고, 흥미로운 문구점도 있더라! 항구 반대편에는 사람들이 수영도 하고 태닝도 하던데? 그 요트 정박장 옆쪽으로 말이야. 지혜 너 나이 또래 남자애들이 많던데!! 오후에 거길 가보면 뭔가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 것 같지 않아?"

피곤한 기색이 없는 샐리의 눈은 또 잘 씻어둔 포도알처럼 빛났다. 샐리의 하루는 48시간이고 그녀의 시야는 360도일까. 무엇보다 나보다 나이도 한참 많은데 지친 기색이 하나 없었다.


여행사를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고, 바텐딩을 하고, 쉬지 않고 일을 하다 여행을 온 사람 치고는 정말 에너지가 넘쳤다. 누군가 이미 경험한 시선을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여행지에 있는 작은 가게나 풍경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가보지 않은 곳을 찾아다니고, 장소와 사람들에게서 의미를 찾는 것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늘 혼자 여행을 한다고 했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소통하며 혼자 하는 여행의 시간들을 채워갔다. 샐리는 아마 혼자 하는 여행에서 얻은 에너지로 지루하고 구질구질한 일상을 반짝거리고 아름다운 것으로 찾아낼 수 있는 힘을 얻지 않았을까? 샐리와 함께 갔던 곳이, 함께 먹었던 음식이 뭐 그리 특별했겠냐만은 13년이 넘은 지금도 나는 그 순간들을 특별히 추억한다. 샐리는 처음으로 혼자 여행길에 올라 혼자 있는 법도 모르던 나에게 여행의 방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었다. 샐리를 만난 이후로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몹시도 즐기게 됐고, 어디를 가야 한다거나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여행지에 던져진 내가 그곳을 어떻게 발견하고 즐기는지에 집중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그런 경험과 추억들로 처절하고 잔인한 일상들을 지낼만한 것으로 보듬었고, 무엇보다 지루한 장마와 코로나 팬데믹을 견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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