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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Jul 09. 2021

통영 중앙시장 스피크이지바에서

ENFP의 '흥'이라는 것이 폭발하고야 말았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 어디냐 물으면 남해와 통영의 한려해상국립공원을 꼽는다. 그냥 직관적으로 한려해상공원은 너무 아름답다. 어디든 올라가서 나지막하고 촘촘하게 모여있는 섬들을 내려다보면, 그 신비로운 절경에 넋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태리도 좋고 그리스도 좋고 다 좋지만, 우리나라 남해는 또 그만의 아련하고 서정적인 바이브가 있다. 차 없이 여행하기에 남해는 좀 불편해도 통영은 대중교통이나 택시가 차고 넘쳐서 어려움이 없다. 콜택시 앱을 이용하면 밤이고 낮이고 택시가 잡혔다.


통영시 로고 디자인하신 분 존경합니다. 한려해상공원 이렇게 직관적으로 잘 표현하다니!


회사에서 하던 프로젝트가 어그러지고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친구의 멘탈도 뭉개졌다. '일이 잘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지, 아예 안된 것도 아니고 한 달 밀린 건데 뭐 어때'라고 말을 하면서도 내가 뱉은 말들의 공허함에 내가 다 기운이 빠졌다.

"통영 갈래?"

"통영?"

"그냥 딱 1박 2일로. 꽉 채워서 갔다 오자. 짐은 가볍게."

ISFJ 내 친구는 이렇게 ENFP의 꼬임에 넘어갔다. 프리미엄 우등버스. 아직도 이 어마어마한 서비스를 경험하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꼭 한번 이용해 보시길 권하고 싶다. 아침 7시 서울에서 버스를 타면 점심때가 되어 통영에 도착한다. 버스 내부는 개인 칸이 따로 분리되어 있고, 치과 의자처럼 180도까지 펼쳐지기 때문에 서둘러 나오느라 덜 잔 잠을 채워 자기 아주 그저 그만이다. 지나치게 아침형 인간인 나는 통영을 간다는 생각만으로 벅차 신이 나있는데, 절대적 야행성인 데다 방금 회사일로 심하게 상처를 받은 친구는 마지못해 내 기분을 맞춰주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미륵산에서 내려다보는 한려해상공원. 봐도 봐도 안 질린다.

"인생이 이렇게 무료 해진 건, 내가 너무 마음을 닫고 살아서 그런 것 같아."

"뭔 소리야."

"그냥 어렸을 때 여행 가면 항상 누굴 만나서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이야. 어딜 가든 상관없이 결국 기억에 남는 건 그때 만났던 그 사람들이랑 그 사람들 때문에 우연히 일어났던 일들인데. 나이가 드니까 자꾸 나도 몸을 사리게 되는 것 같아. 이제 여행가도 호텔 잡아서 가잖아. 호스텔 도미토리 안 가고. 사람을 만날 확률이 일단 거기서부터 확 줄어."

"그지. 나이 들면 또 안전을 추구하게 되지. 난 근데 원래부터 그랬어."

"나는 막 그렇게 낯선 사람들을 만나서 친해지고, 그래서 무슨 에피소드가 생기고, 그런 기억들이 인생에서 제일 재미있는 기억들인데, 요즘 그런 게 좀 없는 것 같아. 무장을 해제해야겠어. 의지를 가지고."

"그게 뭐 그래야겠다고 되는 걸까. 그냥 자연스럽게 나이가 든 건데."

"그래도... 그냥 그게 너무 그리워."

"나는 한 번도 안 그래 봐서... 한번 그래 보고 싶기도 하고. 근데 아마 나는 못 그러겠지."

현재의 삶이 예전보다 지루하고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라테는'을 반복함으로써 내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나도 어느새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아무런 무장을 하지 않고 어디든 나를 던져놓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 말고 달리 이 지루함을 견딜 방법을 몰랐다. 내가 그리운 것은 이태리도 그리스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통영에 온 제1의 목적, 다찌로 향했다. 통영에 많고 많은 다찌 중에 현지인에게 직접 추천받아 엄선한 곳으로 갔다. 미닫이 샷시문을 끼익 소리를 내고 열며 들어갔다. 몇 개 없는 테이블을 주인분 혼자 운영하고 계신 듯했다. 인당 3만 원의 돈에 말도 안 되게 많은 신선한 해물요리와 청하 두병이 나왔다. 생으로 썰어서, 무쳐서, 조려서, 구워서, 탕으로 조리된 여러 음식들을 두고 나와 친구는 잔을 기울였다. 평소 취할 때 까지는 술을 잘 안 마시는 편인데, 여행을 왔으니 조금 나른해져보자 싶었다. 소주보다는 청하였다. 매일같이 얼굴을 보는 사이인데, 통영 다찌에 앉아 청하를 마시니 또 할 얘기가 그렇게 많았다.

아. 진짜.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파인다이닝이다. 그날 들어온 해산물들로만 내놓는 요리들과 각종 장류와 젓갈들.


"작가님 보러 오셨어요?"

옆 테이블에서 말을 걸어왔다. 알고 보니 통영을 기반으로 하는 작가님의 단골집이었나 보다. 얼마 후 그 작가님이 일행과 함께 가게로 들어왔다. 백화수복 1.8리터짜리를 품에 안고 오셨다. 우리 테이블과 팬이 있던 테이블에 백화수복을 나눠주셨다. 나눠주신 백화수복까지 감사히 마시고 친구와 나는 적당히 기분이 좋았다.


호텔로 돌아가려고 택시를 부르는데 작가님 일행도 가게를 나왔다.

"통영에서 제일가는 멋진 누나가 계신 곳으로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거기가 진짜 통영이거든."

친구와 눈을 마주쳤다. 서울에서 통영으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인생이 재미없어진 건 내가 사람을 경계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는 이야기를 해왔던 바, 나는 친구에게 '가자'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절대 그녀에게 얻을 수 없는 허락이었다. '미쳤냐.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어딘 줄 알고 따라가.' 호통을 들을 각오를 하는데 카카오톡이 왔다.

'가보자. 아 몰라. 가. 가.'

늘 모든 것을 계획하고, 돌다리를 두드리고, 신중하게 선택하는 내 친구에게서 이런 대답이 돌아오다니. 이건 정말 그녀가 잠시 흔들리고 싶다는 신호이자, 나를 다른 낯선데로 데려다 놔 달라는 부탁이자, 1박 2일 여행에서 찐한 에피소드 하나 만들어보자는 제안일 터. 그렇게 우리는 통영 중앙시장 골목에서 또 골목으로 들어갔다.


작은 가게에 도착했다. 드럼통처럼 생긴 테이블이 세 개쯤 있는 정말 작은 가게였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몇몇 손님들이 생선구이며 오징어볶음 같은 것에 소주 한 병씩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5명. 다 같이 앉을 테이블이 없는데?

"이리로."

작가님이 식당 안에 있는 쪽문을 하나 더 열었다. 문이 있는 것을 알아채지도 못했는데, 뭔가 비밀스럽게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기분이 들었다. 문 너머에는 아담한 방이 마련돼 있었다. 사각 테이블에 의자가 다섯 개. 그 자리가 우리 자리였다. 앉자마자 주문을 받지도 않고 주인분이 손바닥만 한 굴 다섯 개와 반건조 오징어를 구워 내 오셨다.

"저희 이거 안 시켰는데요?"

"우리 집 기본 안주야. 오늘은 물이 좋네. 여기는 뱃사람들이 많이 오는 데래서 외상하고 밥값을 그날 잡은 거를 막 주고 가. 어쩌겠어. 다 먹어야지 뭐."

타파스 델 디아 (오늘의 타파스). 연탄불에 지글지글 구워주신 왕굴과 반건조 오징어. 아. 정말 훌륭하다. 더 할 수 없이 훌륭했다.


"서울에서 왔어?"

주인분이 방으로 들어오셨다. 시장 안에 있는 식당을 운영하시는 여느 여 사장님들처럼 편안한 옷차림새였지만 뽀얀 피부에 화려한 귀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앞머리는 무스를 발라 구르푸로 말아둔 듯 봉긋하게 세워져 있었다. 웃는 모습이 마치 가수 혜은이를 닮은 듯도 했다.

"이모 피부 비결이 뭐예요? 아이고, 파리가 미끄러지겠네. 어쩜 이렇게 뽀얘요."

"엄마야. 내가 피부가 좀 곱제. 엄마야. 근데 이 아가씨한테 이런 말 들으니까 내가 부끄럽다. 근데 내가 어릴 때부터 피부 곱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어. 근데 우리 아가씨 루주 색깔이 너무 이쁘다"

"이모도 발라보세요."

"엄마야. 그럼 거울도 줘봐봐. 나도 한번 발라보자. 나는 항시 이런 거 중요하게 생각해. 아침에 일어나면 딱 머리에 구루프부터 말아."


사장님은 우리가 시켜두고 빨리 마시지도 못하는 막걸리를 거드시며 살아온 역사를 펼쳐내셨다.

"내가 열여섯에 시집을 온 거야. 나는 육지에서 태어났는데 섬으로 시집을 왔어. 엄청 외로웠거든. 시집살이도 말도 몬해. 그거 말해가 뭐해. 그래. 근데 내가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잘했어. 너네 그거 알아? 민요. 우리 노래. 내가 어릴 때부터 그걸 잘했어. 동네가 다 알았지. 동네만 알았겠나. 여기 막 이 섬 저 섬에 다 알았다니까. 그래 가지고 동네마다 섬마다 잔치가 있으면 내가 거기 가서 노래를 불러줬다 아이가. 그래. 가서 잔칫집 돌면서 노래 불러주는 사람이었어 내가. 내가 노래를 하면 막 잔치가 분위기가 달랐다 그때는."

사장님은 자연스럽게 수저통을 끌어다 앞에 두고 한 손에는 젓가락 하나를 들고, 다른 한 손은 손바닥으로 수저통 퍼커션을 치기 시작했다.

"늴니리야. 늴니리야아아 니나노 난실로 내가 돌아온다. 늴 닐늬리 닐니리야."

여기까지 나오면 응당 화답을 해줘야 한다. 에미넴 랩도 떼창을 하는 민족 아니었는가.

"늴니리야. 늴니리야아아 청사초롱 불밝혀라아아 잊었던 낭군이 다시 돌아온다. 늴 늴니리 늴니리야. 백옥같이 고운얼구울 - 햇빛에 그을리기 웬말인가아 - 늴 늴니리 늴니리야아"


"아니 근데 내만 부르나. 나는 목 아픈데. 서울에서 온 아가씨들 한번 불러봐라 왜."

"아니 지금까지 같이 불렀는데요 이모..?"

"주흑-도호-로혹 사랑하고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해. 보고 싶단 말도 한마디 전 하지 못한 채. 세월은 자꾸, 변해만 가는데. 잊으려고 애를 써도 못 잊고. 술자느흘- 붙잡고, 사랑의 노래를 붙잡고. 남자, 남자, 남자의 눈물이 미워요."

당황한 친구를 아랑곳하지 않고 내 바가지는 또 새고야 말았다. 이놈의 흥. 흥이 문제였다. 이 식당의 수저는 밥 먹을 때 쓰는 게 아니었나 보다. 사장님은 연신 젓가락을 두드리고 나는 숟가락을 들고 열창을 시작했다. 심수봉에서 주현미로, 나훈아에서 혜은이로. 통영에서 제일가는 멋쟁이 '누님'을 보러 온 작가님과 일행분은 잊혀진지 오래였다. 밤은 깊어갔고, 술은 자꾸만 깨서 맑은 정신으로 돌아왔지만 내 숟가락은 손에서 내려갈줄을 몰랐다. 평생을 잔치집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돈을 벌어 오는 무명 가수 생활에, 제사가 달마다 있는 가족의 시집살이에, 식당 영업에, 게다가 남편 밥상 차리는 일도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던 사장님. 우리는 그날 그 치열한 삶을 살아내고도 낯선 우리에게 노랫자락을 흔쾌히 들려주던 사장님께 흥으로 응답을 해드렸을 뿐이었다.


통영 중앙시장 구석에 있는 어쩌다 발견한 한국 전통 '스피크이지 바(Speakeasy bar)'. 우리는 잠시 무장을 해제함으로써 또 몇 년을 소여물 게워내듯 곱씹을 추억을 만들고야 말았다.


거봐, 무장해제를 해야돼 가끔! 그래야 웃긴일이 생긴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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