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신들과 영웅들과 시간을 먹는다
일요일 아침. 엄마가 만든 파이를 먹었다.
그것을 4등분, 8등분. 마지막엔 16등분을 해서 나 혼자 다 먹었다.
거기에 엄마의 피가 섞여 있었다.
이틀후에 아빠는 나를 보고 내 얼굴이 이상해졌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고 아빠는 지방으로 내려갔다.
2년이 지났다.
엄마는 죽었고 다시 아빠와 살기 시작했지만
아침 일직 나가고 밤 늦게 들어오는 아빠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
아침마다 아빠가 마시고 비운 바나나 우유 컵이 싱크대 위에 있었다.
"넌 매일 이상한 일을 겪고 있어".
난 매일 아침 그 말을 50페이지 노트에 적고 엄마가 살아생전 막바지에 먹던 약을 한알씩 먹었다. 그건 위약이었다. 엄마가 직접 만든 약이었는데 재료는 뭔지 알 수 없다. 그걸 반도 섭취하기 전에 엄마는 죽었다.
장례를 마치고 나흘후 나는 엄마의 서랍에서 먹고 남은 위약이 가득 든 봉투를 발견했다.
그 이튿날부터 그 약을 한알씩 먹고 있다.
약효란 뭘까?
몸에서 드러나는 변화. 그 느낌을 반영하는 그날의 기분, 아닐까?
병원의 검사대 위에 눕기 전까지는 그 기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엄마는 뭔가 결심한 날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었고 다음날부터 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날 시작해서 엄마가 다시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게 될 때까지
엄마는 정말 많이 웃었는데, 그 시기는 내게도 '한 시절'이었다.
약을 먹고 틈날 때마다 한 손으로 척추를 더듬거리며 만져본다.
나에게 이 약에 효과가 있다면 그건 척추뼈에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신은 양말로 바닥을 한 번 훔치고, 아빠가 쓴 컵을 설거지하고 나도 바나나를 하나 먹는다.
우리는 항상 다른 방향으로 걷고, 그 끝에서 다다른 곳에서 조용히 각자 할 일을 한다.
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눈 적은 한번도 없다.
서로에 대한 무지가 우리에겐 상식이다.
이주일에 한번씩 함께 영화를 한 편 보는 것 말고는 아빠와 함께 한 집에 사는 데 쓸 만한 일정은 없다.
위약이 다 떨어지고 나서 혹시 엄마의 레시피 노트에 약 제조법이 적혀 있을까 기대하며 봤지만,
내가 한번쯤은 다 먹어본 식사 메뉴의 레시피 뿐이었다.
이제 약은 세 알이 남았는데 그것들은 꼭꼭 씹어가며 먹었다.
내 입으로 직접 뭐가 들었는지를 파악하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말 약재같은 걸 쓴거라면, 내가 혀의 미세돌기를 아무리 곧추세운다 한들 알 수가 있을까.
자신은 없지만 해볼 도리뿐이었다.
마지막 한 알 남았다.
그 앞에선 신중해질수밖에 없었다.
그때 처음 아빠를 생각했다. 내가 먼저 아빠를 생각했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작은 지퍼 비닐에 약을 넣고 메모를 하나 써 붙였다.
"이거 어떻게 만든거지, 먹어보시면 알겠어요?"
그렇게 포장한 것을 아빠의 방 앞에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