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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이 Apr 20. 2021

달리는 차 안에서 사진 찍기

엄마는 베스트 드라이버.

2021.04.17

아무리 밀린 일이 많아도, 주말만큼은 가족들과 드라이브를 꼬박 나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약 3주 전 내 발가락이 뚝하고 부러지는 바람에 내내 나가지 못했다. 게다가 시국이 시국인지라 바깥바람 쐬는 게 죄스러워 미뤄왔다.


하지만, 요즘 엄마의 공황장애 병세가 악화해 차 안에서라도 푸른 산을 봐야만 했다. (집 주차장 말고는 차에서 타고 내릴 일이 없다.)


약 3주 만에 다시 만난 산들은 울긋불긋하던 옷에서 새초롬한 옷으로 바꿔 입었더라. 구름들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을 반기듯 군데군데 연두색과 노란색 치장을 한 채로 반짝였다. 참으로 화려하지만 정적인 모양새였다.


2021.04.17

어릴 적부터 사진 찍는 걸 좋아해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도 모셔놨지만, 나처럼 아날로그한(컴맹) 사람도 필름 카메라를 다루는 건 꽤 어려웠다.


게다가 요즘 핸드폰은 필터 어플을 깔지 않아도 저렇게나 선명하게 잘 나오니, 나도 모르게 기술에 의존하고 백기를 들게 되더라.


하지만, 아직도 내 검지 손가락은 아날로그 카메라 셔터를 눌렀을 때의 손맛을 기억해내 입맛을 다신다.


내가 찍은 대게의 사진들엔 꽃과 나무, 하늘과 건물들이 차지하고 있다.


가끔은 쓰러져가는 기와집을 찍기도 하고, 오늘처럼 쌩하고 달리는 차 안에서 카메라 버튼을 연타하며 한 장이라도 건질 수 있길 기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장롱면허인 내 곁에는 늘 베스트 드라이버인 엄마가 계셨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론 차에서 내리는 게 부담스러워, 마스크를 낀 채 창문을 살짝 내려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 사진을 찍는다.


지나가는 차도 없고, 사람도 없지만 괜스레 바깥바람 맞는 것도 죄송스러워 그렇게 한다.


그럼 엄마는 늘 그래 왔듯 내 걸음에 맞춰 천천히 주행하거나 멈춰 주신다.


엄마에게 먼저 차를 멈춰달라, 지나가 달라, 천천히 가달라고 하지 않아도, 늘 먼저 내 걸음을 맞춰주신다.


어쩌면 오늘도 공황장애를 핑계로 드라이브를 가자며 내 손을 이끈 것도 날 향한 배려가 아닐까.


이 글을 쓰며 새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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