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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이 Apr 20. 2021

화장실 청소를 꼭 엄마가 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요?

30살 먹은 아기가 여기 있습니다.

화장실 청소를 부모님이 하셔야, 그 집 자식들이 예쁘고 잘 된다더라는 속담이 있다던데 정말인가?


저런 속담은 엄마에게만 들어봤지, 30년째 금시초문이다. 하지만, 그런 속담이 있다며 끝끝내 화장실 솔을 뺏어가시니 믿어드려야 하나 고민스럽다.


현기증 때문에 넘어지셔서 팔뚝과 무릎에 큰 멍이 들어 속상했었다. 그게 불과 몇 주 전이다.


원래도 기립성 현기증에 시달리는 분이셨는데, 갱년기가 시작되면서 증상이 더 심해졌다. 그런 몸으로 미끄러운 화장실 청소를 한다니.


우리 남매는 정말 불효녀 불효자가 아닐 수가 없다.


무려, 장성한 딸내미 둘에, 아들 하나 거기에 중2병 학생 둘까지. 총 합 자식만 5명이나 있는데, 우리 엄마는 오늘도 당신이 직접 화장실 청소를 하고자 하신다.


하긴, 몇 년 전 일을 떠올리자면 엄마에게 나는 아직도 성장기 청소년이지 싶다.



26살에 감기 때문에 병원을 갔었다. 작은 개인병원인지라, 대기 환자도 많았고 공간은 좁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적막한 곳이었다. 처음 간 병원이라 키, 몸무게를 재야 했는데 그때 키를 재보니 학생 때보다 1센티나 크게 나왔었다.


그걸 본 우리 엄마는 그 사람 많은 곳에서 "어머, 우리 딸내미 1cm나 자랐네!"라며 자랑하셨다. 물론, 일부러 크게 말씀하신 건 아니겠다만 누가 들으면 정말 내가 1cm가 자란 아이로 보였을 정도로 해맑은 목소리였다.


그뿐이랴.


정수기에 뜨거운 물을 받을 때면 여지없이, "얘! 뜨거운 물이야! 조심해!!"라며 충고해주신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아파서 병원 갈 때마다 늘 함께 가주시고, 30살을 먹었는데도 집에 나 혼자 두는 걸 꺼려하신다.


사실 이런 스토리들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보살핌 뒤에는 엄마의 희생이 따르기에 불편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뜨거운 물을 내가 받아도 되는 걸 굳~이 엄마가 직접 받으시려 한다는 것. 혼자 병원 가도 되는 걸 굳~이 바쁜 엄마가 함께 가주시는 것. 혼자 집에 있어도 좋은데 굳~이 서둘러 어서 집으로 돌아오신다는 점.


이렇게 늘 숨 쉬듯 배려해주시고 보살펴주시니 마음이 불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젠 내가 엄마를 배려해드리고 싶고, 충분히 그래도 되는 나이인 거 같은데 엄마는 늘 그런 내게 철벽을 치신다.


도대체 내가 몇 살쯤 나이를 먹어야 화장실 청소도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럼 우리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시겠다.


"나이는 너 혼자 먹니? 네가 100살 호호 할머니라면, 난 123살 호호호호 할머니다!"


이래서, 브런치 글은 나와 독자님들만 보시게끔 할 거다. 우리 엄마가 보면 분명 잔소리를 여러 바탕하실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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