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개나리 꽃이 필 때가 산불이 가장 많이 나는 철이기 때문에 산림 관련 공무원들이 제일 싫어하는 꽃이 개나리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사실상 한국에서 산불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기는 3~5월로 이 기간 중 연간 산불 발생 건수의 78%가 집중된다고 한다. 미국, 캐나다 등의 나라에서는 낙뢰 등 자연적인 요인으로 인한 산불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산불은 대부분 사람의 부주의에서 시작된다고 하니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그나저나 산불은 산림 자원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막연히 식물은 산불에 수동적으로 피해를 입는 존재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오히려 산불을 이용하는, 아니 더 나아가 산불을 일으키는 식물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 식물은 놀랍게도 우리가 테라스나 베란다에서 많이 키우고 있는 식물이기도 하다.
산불을 역이용하는 이 놀라운 식물은 바로 코알라의 친구 유칼립투스다. 유칼립투스의 원산지는 오스트레일리아로 알려져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기후는 고온 건조해 산불이 많이 발생하는데, 유칼립투스는 화재에 무척 취약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산불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된다.
그 이유는 유칼립투스가 가연성 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칼립투스 에션셜 오일은 방충, 호흡기 질환 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는데, 사실 유칼립투스 오일은 휘발성이 강해 불이 붙기 쉽다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고온 건조한 기후 속에서 유칼립투스는 잎에 있던 오일을 공기 중으로 발산, 아주 작은 불씨도 대형 산불로 번지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게다가 유칼립투스 오일은 살균 효과까지 있어 바닥에 떨어진 낙엽이나 나무껍질이 쉽게 썩지 않아 산불을 크게 키우는 불쏘시개가 되고 만다.
그런데도 유칼립투스는 산불에 의해 쓰러지되 파괴되지 않는다. 줄기에 두꺼운 섬유질로 된 껍질이 있어 겉은 불에 타도 속에서는 새로운 싹들이 자라난다. 줄기가 다 타버려도 땅속에서 새로운 새싹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니 유칼립투스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척박한 기후와 산불에 완벽하게 적응한 식물이라 할 수 있다.
숲이 다 타고나면 빛이 잘 드는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다른 높은 나무들이 대부분 제거되어 충분한 햇빛이 보장되고, 잿가루가 섞인 영양이 풍부한 토양은 유칼립투스 새싹이 자라날 최적의 조건을 갖추게 된다. 산불도 어쩌면 유칼립투스가 그린 큰 그림의 한 부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식물에 대해 알면 알수록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든 적응하고, 오히려 그 어려움을 역이용하는 놀라운 사례들을 종종 보게 된다. 산불에 오히려 자신을 내던짐으로써 더욱더 번성하는 유칼립투스. 오늘도 식물에게서 한 수 배운다.
참고자료
1. 극한 식물의 세계 / 김진옥, 소지현 / 도서출판 다른
2. 나무 이야기 / 케빈 홉스, 데이비드 웨스트 / 한스미디어
3. 네이버 지식백과 '산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08492&cid=40942&categoryId=318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