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재욱 Aug 12. 2021

‘전쟁과 여성에 관한 모든 것을 다시 배워야 한다’

《함락된 도시의 여자 : 1945년 봄의 기록》

《함락된 도시의 여자 : 1945년 봄의 기록》
익명의 여성 지음, 염정용 옮김, 마티, 2019


이 책은 2차 대전의 막바지, 연합국에게 함락된 베를린에 거주했던 익명의 여성이 겪은 두 달 간의 기록이다. 도시가 함락당하면 도시에 거주하던 모든 존재도 함락 당한다. 하지만 모든 거주자가 동일한 함락의 양상을 겪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여성 한 명의 기록이지만, 여성이 집단적으로 겪어야만 했던 함락의 양상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흔히 전쟁은 남성 군인의 경험으로만 전유돼왔다. 하지만 “남자들은 조국을 위해 죽고 죽일 수 있는 특권이 남자에게만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 전쟁에서는 여자들도 그 특권에 가담한다”는 기록자의 말처럼, 이 기록 또한 그 자체로 강렬하고 구체적인 또 하나의 전쟁 경험이다. 실제로도 전시성폭력은 전쟁에서 항상 존재해왔다. 이 책의 배경인 2차 대전 시기 독일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전시성폭력(일본군 ‘위안부’)이 있었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심지어 1980년 5월의 광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기록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여성은 최전선에 위치한 남성의 후방에서 보호받아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함락된 도시에서 남성은 죽은 듯이 숨어 지냈다. “여자들은 사악한 적군으로부터 남자들을 숨겨주고 보호해주려고 사력을 다한다.” 남성은 여성이 몸을 대가로 얻어온 식량으로 연명했다. 반대로 “요즘 들어 나는 내 살갗만 봐도 구역질이 난다”고 고백하며, “몸을 내주고 먹을 것을 받고 있으니 지금의 나를 창녀라고 불러 마땅한가”며 갈등하는 기록자의 심경은 그 당시 모든 여성이 겪어야 했던 일이었다. 여성이 서 있는 곳이 바로 “최전선”이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의 전쟁경험은 경멸의 대상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전시성폭력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의 대부분은 피해여성이 당한 일이 오히려 여성의 자유의사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이 기록에서는 어떨까? 한 남성은 적군이 여성을 납치하려 할 때 자신도 해를 입을까봐 여성을 위험으로 내몬다. “제발 빨리 따라가요, 당신이 우리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잖아요!” 여성을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했던 남성성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리고 아마도 무너진 남성 중 한 사람이었을, 기록자의 연인이었던 게르트는 전쟁에서 돌아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암캐로 변해버렸어. 너희는 그 모든 가치 기준을 잃어버렸어.”


과연 남성이 말하는 그 ‘가치 기준’이란 무엇일까? 독일 여성을 강간하려는 러시아 병사는 “독일 놈들이 우리 여자들에게 한 짓을 생각해 보십시오!”라고 말한다. 그의 분노의 대상은 독일 남성 군인이어야 하지만, 그는 전혀 상관없는 여성을 강간한다. 그에게 ‘우리 여자들’이 입었던 피해는 여성 스스로의 피해로 해석되지 않는다. 남성은 여성의 피해조차 ‘우리 여자들’을 빼앗긴 자신의 피해로, 자신의 패배처럼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남성은 ‘적(남성 군인)의 여자들’을 강간하고 빼앗으려 한다. 빼앗긴 여성은 ‘적의 여자들’이 되어버리고, 경멸의 대상이 된다.


남성중심적인 가치 기준으로 여성의 피해를 해석할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가? 주한미군 병사에 의해 강간살해당한 윤금이 씨 사건 직후, 한 대학에서는 이런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양키들이여, 강간은 너희 나라에서’. 여성의 피해 경험이 공론화될 때조차, 그것은 피해여성 중심이 아니라 마치 ‘우리 여자들’을 빼앗긴 것처럼 받아들이는 남성중심적인 가치 기준으로 해석된다. 더 나아가 남성중심적인 기억은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기억으로서 스스로를 정당화하기도 한다.그래서일까. 여성 스스로 해석한 전쟁 경험은 대부분 여성 피해자 자신의 증언을 통해서 공론화되었다.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피해 여성이었던 김학순의 증언으로 공론화가 시작되었고, 유고내전의 전시성폭력 역시 피해여성의 증언으로 공론화되어 최초로 전시성폭력이 전쟁범죄의 항목으로서 재판받았다. 그전까지 전시성폭력은 전쟁의 수행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부수적 피해’로서만 받아들여졌을 뿐이다.


전시성폭력의 기억 자체도 다른 전쟁기억보다 훨씬 더 늦게 공론화되었다. 김학순의 증언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된 것은 일제가 패망하고 반세기 가까이 지나서였다. 이 책에서 기록된 베를린 점령기의 전시성폭력과 나치독일이 운영했던 수용소 유곽 등의 문제 역시 전쟁이 끝나고 수십 년 뒤에서야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육군의 기록에도 남아 있는 한국전쟁 시 한국군 ‘위안부’ 문제는 아직까지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여성이 억압당해왔던 사회적 구조 속에서 기인한 것일 테다.


“이때 나는 전쟁과 여성에 관한 모든 것을 다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십 년 전에 이 책을 기록했던 여성의 태도야말로 지금 우리가 새겨야 할 태도일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