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속에 토끼 13

13. 주문 (呪文)

by 황은화

그녀가 다시 외출을 하기까지 일주일이란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봄햇살이 내려오는 오후,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는 고약하고 당돌한 아이를 다시 만납니다.

아이는 책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여행용 캐리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너 어디 가니?”


아이가 말이 없습니다. 그녀는 물끄러니 아이를 쳐다봅니다. 누구에게 맞았는지 한쪽 뺨이 빨갛게 부어 있습니다.

“얼굴은 왜 그래?"

"몰라도 돼요."

“진짜 어디 가는 거 아냐?”

“몰라도 돼.”


그녀는 아이의 눈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가출했어요”

“왜?”

아이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사이.


두 사람은 다 말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둘 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립니다.


“부탁이 있는데요, 나 그 토끼 줄래요?”

“어?”

“아줌마 가방 속에 토끼 줄 수 없냐고요?”

“줄 수 없어.”

아이는 실망한 표정을 짓습니다.


“주고 싶지만 이젠 줄 수 없어.”

“왜요?”
“떠났거든.”


그녀는 조심스레 아이의 머리 위로 손을 얹집니다.

아이는 거부하지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이 녀석도 가출을 했나봐.”


아이는 한쪽 주먹을 꽉 쥡니다. 양손이 다 찢겨진 상처투성이입니다.


“다 죽어버렸음 좋겠어.”


오지 않을 것 같은 버스가 도착합니다. 아이가 버스에 올라탑니다.

아이는 왜 가출을 했을까요? 그녀는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줍니다. 아이는 멍한 표정으로 창밖에 그녀를 바라보지만 인사를 건네지는 않습니다. 외로운 아이가 탄 버스는 세상 저 끝까지 갈 것만 갔습니다. 어쩌면 어느 순간 날아오를 것만 같습니다. 활주로를 달리다가 비행기처럼.

버스가 서서히 시야에서 멀어집니다. 그녀가 기다리는 버스는 좀체 오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자 도로를 따라 만개한 벚꽃들이 그녀 위로 작은 원을 그리며 떨어집니다. 빛과 함께 부서져 내립니다. 그녀는 가야할 곳도 잊은 채 벚꽃을 온몸으로 맞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두 팔을 벌립니다. 천천히 날개짓을 해봅니다. 날아오를 것만 같아요. 정말로 날아올라요.





그녀는 직업을 구해야 합니다. 직업을 구하면 멋진 남자와 사랑에 빠져야 합니다. 멋진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일에 성공하면 그 다음에는 결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순리대로 아이 둘을 낳을 계획입니다.


‘아니! 더 이상은 아냐!!’


이젠 아닙니다. 그런 소망들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그녀는 우선, 날아야 합니다.

저 푸른 하늘로 높이 높이 날아가야 합니다.

몸이 가벼워지는, 새가 되는 주문이 필요합니다.

"어렸을 때 나는 토마토를 좋아했지. 감자도 좋아하고 민들레도 좋아했지. 토끼에게 줄 풀을 뜯으며 하루 종일 놀았지만 돌아왔을 땐 토끼는 없었어.

어렸을 때 나는 느티나무를 좋아했지, 버드나무도 좋아하고 대추나무도 전나무도 좋아했지. 종달새도 뻐꾸기도, 구름도 바위도 좋아했지. 토끼에게 줄 풀을 뜯으며 하루 종일 놀았지만 돌아왔을 땐 토끼는 없었어.


아빠가 말했지. '네가 사랑하던 토끼는 죽었단다.'


엄마가 말했지, '네가 아끼고 사랑하던 토끼는 죽었단다.'


나는 사라졌을 뿐, 토끼는 죽지 않았다고 생각했어. 어딘가로 멀리 갔다고 생각했어.

엄마와 아빠는 거짓말을 한 거야. 나는 죽은 토끼를 보지 못했으니까 말야.“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다가 어깨에 맨 가방이 떨어집니다. 떨어진 충격에 똑딱이가 열려 내용물이 쏟아집니다.

노란 탁구공이 도로 쪽으로 굴러가기도 합니다.


'저건 왜 가방에 들어 있었던 걸까?'


서른 살 여자의 가방 속에는 손수건과 수면제 두 알, 반짝반짝 립글로즈, 싸구려 향수와 파란 머리띠, 핸드크림과 핸드폰, 줄이어폰과 AAA 건전지 하나, 쿠폰과 로또, 파란 선글라스, 아스피린 두 알과 당근 두 조각, 그리고 어렸을 때 사진 한 장, 델리 스파이스의 3집과 기한이 지난 여권, 강박과 우울, 헛된 미련과 바램, 아멜리 노통의 신간 그리고 항공 정비사 자격증 기출 문제집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녀의 씁쓸한 미소 속에는 우리는 알지 못하는 비밀과 꿈이 있는 것만 같습니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아무도 뺏어가지 못할 그 무엇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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