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여 명의 대학 러너들과 함께 이뤄낸 꿈
작년 11월, 긴 계약직 생활을 마치고 다시금 학생으로 돌아가기까지 꽤 긴 시간을 공백으로 보냈다. 그래. 앞으로 다시는 없을 쉬는 시간인데 푹 쉬자. 정말로 밥 먹고 운동하고 놀고 그저 몸과 마음이 튼튼하면 그만이었던 시간들을 보냈고, 새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대학교 1학년, 잠깐 몸 담았던 사진 동아리에서 알게 된 H언니가 어느 날 재미난 스토리를 올렸다. 대회를 만든다는데 관심 있음 연락 달라고. 나는 당시 러너도 아니었고 러닝을 즐기는 인구가 그렇게 많은지도 몰랐다. 한 마디로 러닝에 대해선 백지장과 같은 수준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그 대회'가 현실로 이뤄질 것만 같았다. 인생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기도 했고, 23년 목표 중 하나였던 [안 해본 일을 해보자] 에도 아주 부합한 일이었다.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냅다 도전장을 내밀었다. 분명 어렵겠지만, 못할 이유도 없었다.
머릿속의 상상을 현실로 그려내는 것. 이것만큼 짜릿한 경험은 없지 않은가? 나는 새삼 샘솟듯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도 아니고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라 꿈도 꾸지 못했던 일. 또한 시간은 물론 에너지 낭비라 드는 일은 일절 관심도 없는데, 왠지 모르게 이들이 꾸는 꿈이 정말 가능할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니 오빠들이 꾸는 꿈에 날개까진 아니더라도, 깃털이라도 고이 빗어줘야지. 그런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마음과 조금의 부담감을 앉고 팀에 합류했다.
그렇게 우리는 2~3월 동안 '숨터뷰' 제작 및 발행을 시작으로 서울의 대학 러닝 크루들과 유대를 쌓기 시작했다. 엑스크루와 함께 대학 러닝 크루 저변 확대를 위해 캠퍼스런 도 기획했고, 한국의 3대 마라톤 중 하나인 서울국제마라톤을 앞두고 굿러너 컴퍼니와 함께 킥오프 세션도 열게 됐다. 작고 소중한 기회들과 시간들이 모였기에, 이번 숨 트랙 릴레이를 기획할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의 첫 대회 콘셉트는 트랙 릴레이였다. 주로를 개방하거나 서울 도심 한가운데 공원을 빌리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20대 그리고 '대학생'만이 누릴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를 찾다가 트랙을 선택하게 됐다. 또, 서울권 대학 중 단 두 군데만이 육상 연맹 정규 트랙을 보유하고 있는데, 서울과기대 러닝 크루 'STRC'께서 물심양면 잘 도와주셔서 장소 섭외를 잘 마쳤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트랙 위의 가장 빠른 대학 크루는 누구일까. 다소 자극적이지만 누구든 궁금할 이야기. 협찬사 공개 이후 대회 신청 마감일까지 모집 인원이 꽉 찰지 마음 졸이며 자정을 기다렸는데, 감사하게도 많은 학교에서 관심을 주셔서 자리를 꽉 채워 대회를 열 수 있었다.
대회 개최까지 우리는 각자 할 일을 쉼 없이 했다. 대회 개최 시점을 딱 중간고사 끝날 즘으로 잡았는데, 대회를 뛰지 않고 개최하는 대학생 이예랑은 시험기간에 줄곧 많은 일을 쳐내기 바빴다. 막학기라며 학점 끝장나게 잘 받아 보자는 새해 목표와는 전혀 다른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비록 모든 시험을 평균 이하로 봤지만, 준비하는 2주 동안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성취감에 휩싸여 지냈다. 저학년 때 열심히 공부한 내게 감사하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니 후회 없이 대회 준비에 몰두했다.
대회 날은 점점 다가오니 거짓말이 아니라 10분 아니 10초마다 생각이 변했다. 원체 감정기복이 없고 고민도 잘하지 않는 편인데. 내가 떠 올리는 생각들이 스스로를 예민의 극치로 밀었고 밥 먹듯 울리는 알람에 스트레스도 점점 누적돼 갔다. 걱정이 물밀듯 밀려오다가도 설레는 마음이 문득 들고 이미 대회가 끝난 상황을 상상하니 뿌듯하고. 웬 1년 동안 천천히 느껴도 모자랄 감정들을 2주라는 시간 동안 속성과외를 받다 보니 마음에도 멀미가 찾아왔다.
드디어 대회 날이다. 전날부터 빠진 물건은 없는지 두세 번 체크하고 오전 수업 하나를 들으러 학교로 나섰다. 당연히 수업시간 집중은 전혀 안되고 가서 어떻게 선수 체크인 할지, 현장에서 받을 리워드 품목 정리, 마지막까지 교체 선수가 있어서 잔잔한 일들을 하며 수업 시간을 보냈다. (엄마아빠가 내 브런치 구독 중인데 미안)
우리의 첫 대회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종합운동장에서 열렸다. 지난 4월 18일 11개의 대학 러닝 크루와 총 160명이 넘는 대학 러너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대회 시작 전 나이키에서 RHR버스를 지원해 줘서 대회 시작 전 선수들이 나이키 러닝화를 트라이얼 해 볼 수 있었고 테이핑 서비스도 진행해 주셨다.
그리고 스피드 레이스라는 점을 고려해 주셔서 평소 신고 달려보기 힘든 베이퍼와 알파 시리즈도 시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해당 대회에서 뛰는 선수들은 트라이얼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러닝화를 신고 대회에서 뛰어볼 수 있었다.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경험이 아닐까. 사실상 풋살화, 러닝화 같은 경우는 오래 뛰어봐야 좋은지 감이 오는데,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으니 아쉬운 점이 많았는데 이번 서비스를 계기로 카본화 구매를 생각 중인 러너들은 '나이키를 선택하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대회 시작 한 시간 전, 선수 및 응원단 체크인을 시작했다. 면책동의서부터 배번, 선수 단체 티 등을 나눠주고 응원단은 치어풀부터 원하는 상품을 가져갈 수 있도록 세팅해 뒀다. 순식간에 체크인 시간이 끝나고 단체사진 촬영 후 여성부 휘슬을 준비했다. 사실 여기부턴 정말 기억이 희미하다. 한 트랙 위 10명의 선수가 함께 뛰기 시작했고, 격차가 벌어질수록 꼬이는 바퀴 수. 그리고 주자 교체 오심도 없는지 현장에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걱정했던 팀 기록 계측은 사고 없이 마무리했고 더 다행인 건 아무도 다치지 않고 여성부가 끝났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스타트 라인의 안전사고를 가장 우려했다. 특히 남성부에서 큰 몸싸움이 일어나지 않을까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스타트는 스무스하게 진행됐다. 여성부와 달리 1 주자 간의 격차가 크지 않았다. 바퀴를 거듭할 때마다 선두 주자가 달랐고 아는 얼굴들이 많아서인지, 여성부 진행 때문인지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했다. 그리고 이후엔 기억이 정말 드문드문 나는데 카우온 주자들이 너무 빨리 지나갔던 것, 러너스하이 주자 분 중에 다리에 쥐가 올라와도 끝까지 절름 발로 달린 것. 그리고 피니시 라인에서 30분 남짓의 남성부 대회를 마무리한 것.
당시 주자들이 어떤 얼굴로 달렸는지,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영상과 사진을 보고 알았다. 오직 무사히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나길, 그리고 그들이 뛴 시간에 오류가 없길. 이 두 가지만 머릿속에 담고 이번 대회를 운영했다.
대회가 끝나고 여러 후기 글들이 올라왔다. 그걸 혼자 읽으면서 정말이지 너무 감사했다. 힘들 때마다 읽으려고 캡처도 했다. 주책이지만 진심이다. 난 그저 그들이 와서 잘 뛰고, 잘 즐겨줘서 고마울 따름인데. 되려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니 없던 동력이 하나 더 생긴 기분이랄까.
나 스스로도 정말 성장할 수 있었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해도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우리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다들 같이 숨차게 뛰어요. 서울대학마라톤의 숨 트랙 릴레이와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 다시 한번 감사하고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