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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랑 May 08. 2022

[초상화] #1. 5월 8일, 어버이날

나의 거울에게 바치는 짧은 연서

어버이날 전 날. 길가 곳곳엔 카네이션이 진열돼 있다. 걸을 때마다 꽃 내음이 코를 찌르길래, 괜스레 나도 모르게 한 번 더 뒤돌아 봤다.


동네 꽃가게들은 너도 나도 분주히 ‘어버이날’ 문구를 내 걸며 각양각색의 다발들이 준비돼 있었다. 또, 강남역 역사 안 꽃가게는 준비하는 족족 다발이 팔리는지, 사장님은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지만 블록 한편에 앉아 카네이션 가지를 치기 바빴다.


퇴근길 신분당선에 내 몸을 맡기기 전, 한 손에 카네이션을 든 행인이 다수였다. 빈털터리인 내 손이 더욱 부끄러워진다. 꽃 한 송이를 전한 지 언제일까. ‘유치원 때 고이 종이로 접어 드린 게 마지막 기억인가?’ 싶을 정도로 오래됐네.


어릴 적부터 살갑지 못한 성격 탓인지, 마음을 뱉는 연습을 안 한 탓인지. 5월에 따스히 말을 전한 적이 없는 듯하다. (성격 탓이라는 핑계는 더 긴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둘러 댈 변명거리다.)

꽃은 전하지 못하니 사진이라도 보내려고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봤다
하고 싶으면 해

어린 내게 부모님께서 자주 하셨던 말이다. 내가 원하는 일은 거의 모두 하게 해 주셨다. 가령 미술학원, 태권도 도장 등등.. 그리고 선택엔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알려주시기도 했다. 학원 땡땡이를 자주 쳤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한테 거짓말을 했다. 물론 나는 거짓말을 하는 족족 걸려 매를 맞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거짓말을 한 죗값이자 내 선택의 책임을 지도록 그만큼의 무게를 배워갔던 거 같다. 뻔뻔하게 거짓말을 뱉던 내 모습을 돌이켜 보니 엄마는 100대는 더 때리고 싶었을 듯하다. 얼마나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을까. 아직까지 구라 친 내 모습이 선명해서 웃기다가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무튼 부모님께선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해 주셨다. 가장 첫 번째는 피아노를 배우게 한 것. 여섯 살 남짓 됐을 때, 내 친구 보미의 엄마이자 우리 엄마의 친구 희정이 이모가 동네에서 종합학원을 운영하셨다. 선명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린이집이 끝나고 가끔 학원 원장실에서 검은콩 우유를 마시며 엄마를 기다렸다. 그렇게 학원에 들락거리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질려할 때쯤이면 엄마 아빠는 늘 “나는 어릴 때 악보 보는 법을 못 배운 게 젤 아쉬워”라고 말하며 다독였다. 그 덕인지 나는 클래식, 재즈 등의 장르를 아직도 즐겨 듣고, 아직도 초등학생 때 합주 대회 간 추억을 친구들과 곱씹을 수 있으며, 조금은 더듬거려도 금방이라도 피아노 한 곡을 칠 수 있는 24살이 됐다. 본가 내 방엔 아직도 설 날 용돈을 모아 처음으로 산 피아노가 있다. 엄마, 아빠는 주말 아침 우리 삼 남매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좋아했는데. 아무튼 이런 이유로 우리 삼 남매는 모두 다 피아노를 5년 이상씩 배웠다.


두 번째는 여러 운동을 할 수 있는 것. 남동생이 둘인 덕인지, 활발한 부모님 덕인지 어릴 때부터 많은 운동을 했다. 맨날 유치원이 끝나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온 동네를 헤집고 자전거는 또 자전거 대로 끌고 나가, 물이 무섭지도 않았는지 7살에 자유형부터 접영까지 배우고, 오리발도 열심히 끼고 다녔다. 매년 여름엔 장장 여섯 시간을 달려 오션월드로, 겨울엔 비발디파크를 다니며 동하계 가릴 것 없이 동서남북을 쏘아 다녔다. 그래선지 운동을 하며 에너지를 얻고 활기를 얻는 거 같다. 엄마, 아빠 덕에 성인이 된 나는 여러 가지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됐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준 부모님께 감사하다. 주변인들이 자주 내게 묻는 질문 중 하나는 ‘어떻게 좋아하는 걸 찾았어?’였다. 지금 생각하니 자연스레 찾을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생 때 한 시간을 달려 사직 야구장에 데려간 아빠. 더운 날 땀을 뻘뻘 흘리고 작은 유니폼을 사줄 만큼 열정적이었던. 아저씨들을 따라 “마!”를 외치고 엄마가 묶어 준 주황 봉지 리본을 머리에 하고. 아직까지 입에 붙어 있는 이대호, 전준우 응원가를 부르며 안타, 홈런이 뭔지도 모르고 외쳤던 시간. 아직도 집에 가면 산처럼 쌓여 있는 우리의 2000년도. 캐논 하얀 카메라, 소니 슬라이드 카메라, 삼성 어쩌고 디카까지 매번 카메라를 바꾸며 기억의 조각을 남겨둔 엄마. 그리고 팝송부터 오페라, 클래식, 국악 뭐 가리는 거 없이 뭐든 틀어둔 엄마 덕에 누린 귀호강. 그리고 커피를 좋아하는 엄마, 술을 좋아하는 아빠.


부유한 경험 덕에, 스스로 헤쳐갈 수 있도록 보내준 무한한 지지와 응원 덕에 스물넷의 나는 이렇게 행복할 수 있나 보다. 23년 전, 어버이날엔 내가 태어나기 머지않은 순간이었겠지. 1999년 5월의 가장 큰 행복은 나였길 바라며. 둘 다 건강하고 오래 살아! 보고 싶다.


서울에서,

예랑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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