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춘기
학교에서 Parent Association 멤버로 같이 활동하는 미국인 엄마가 오늘 나에게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케이트, 난 정말 PA를 더는 못할 것 같아. 난 말이지, 19살에 남편과 결혼한 이후로 줄곧 아이들 키우고 살림만 해서 이런 환경과 일이 나에게는 모두 너무 큰 스트레스로 다가와. 난 말이지..... 무슨 일이든 기획하고 진행하는 데는 능력이 없다는 걸 여실히 느꼈어. 넌 어때?"
"응? 난 말이지. 항상 일을 왜 왔어서 이런 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기는 해..."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그렇게나 큰 스트레스라고? 웃음이 나면서도 어린아이처럼 징징대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귀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래.. 저런 인생도 나쁘지는 않겠다. 일하지 않아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좋은 집, 좋은 차를 타고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을 느끼는 인생 말이야"
나는 결혼한 이후로 일을 쉬어본 적이 없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는 3개월 만에 복직했고 둘째를 임신했을 때 배가 불러오면서 일, 살림, 육아에 너덜너덜 지칠 대로 지쳐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일 때문에 호주에서 말레이시아로 오게 되었다.
그 나의 너덜너덜했던 젊은 시절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치며 그녀의 해맑은 투정을 듣고 있자니 순간 부러운 생각이 나를 덮쳤다. 그럴때마다 내가 꺼내드는 카드가 하나 있다. " 넌 저런 인생에 만족할수 있어? 아니잖아. 정신차려" "그래, 난 저런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지. 그거 하나는 확실해. 난 힘들어도 내가 잘나야 행복한 사람이야"
여기서 잘 났다는건 내가 성공했다는 뜻은 아니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딸을 넘어서 온전히 나란 사람 하나로 10년전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오랜 지인을 만나 점심을 먹으며 또한번 현타가 왔다. 그녀는 전업주부로 꽤나 편안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는듯 보였고 또 다시 현타가 나를 때렸다. 무엇 때문에 내가 이리 아등바등하며 사는가? 또 필살기를 꺼내 든다. "넌 저런 생활에서 딱 3일 행복할거야. 정신 차려"
현타가 나를 때릴 때 난 메타인지를 데려온다. 내가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지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다고 믿는다. 그것이 나를 현타에서 꺼내줄 유일한 동아줄이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워킹맘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