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명함이 있지만 없습니다

신입사원 일기

by 레룬

어쩌다 외국계 회사 신입생활 5개월 차가 되었다. 굳이 앞에 ‘어쩌다’라는 단어를 붙인 건 내가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낯설기 때문이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는 긴 방황 중에 있는 취준생이었고, 지금은 분명히 무언가가 달라졌지만 그렇다고 무언가가 되지는 않았다. 새로운 소속이 생긴 채로 여전히 헤매고 있는 사람이다.


첫 정규직 명함을 손에 쥐었다. 내 한 손으로 쥐기에 딱 맞는 100장 짜리 박스 하나를 받았지만, 사실 나는 명함을 쓸 일이 거의 없다. 입사 극초기에 주변인들에게 취업 소식을 전하면서 10장 정도 썼을까. 그리고 불과 3개월이 지난 지금, 그 사이에 회사 오피스는 이사를 갔고, 부서명이 바뀌었으며, 직무명도 불확실해졌고, 팀의 매니지먼트 구조까지 바뀌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난데없는 레이오프 가능성에 일주일을 마음 졸여야했다. 명함에 나와있는 정보들은 한 순간에 지워질 수 있으며, 내 이름 적힌 명함이 내 것이 아니게 되는 것도 순식간이라는 걸 여실히 느꼈던 25년 9월이었다.


명함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나를 설명할 수 있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나를 가장 빛나게 소개해줄 수 있는 것은 외부의 힘을 과도하게 빌리지 않은, 내 정직한 노력으로 한 땀 한 땀 빚은 무언가였으면 했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지금, 명함으로 설명되는 것들을 모두 제외한다면 내가 갖고 있는 가장 큰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일 터에서의 내 생각과 마음가짐만큼은 오롯이 내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회사와 나의 형식적인 관계는 어떻게 될 지 정말 한 치 앞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내 일 터에서부터 비롯되는 경험과 생각들을 내 안에 소중히 꾹꾹 눌러담으려 노력할 뿐이다.


<명함 대신 건넬 책>은, 명함에 적힌 피상적인 정보들을 넘어 누군가가 일 터에서 보내는 솔직한 하루를, 그리고 일을 대하는 태도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의지할 작은 종이 한 장 없어 불안하지만, 그 와중에도 보이지 않는 내면의 노력을 부단히 해나가고 있는 사람들과 미래의 나에게 작은 용기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다. 혼란한 지난 몇 달을 잘 겪어내어 결국 이 글 시리즈를 시작할 결심을 선물해준 회사 동료들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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