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일기
1. 변화가 곧 성장이라는 생각
회사를 다닌지 1년이면 “꽤 다녔다”라고 여겨지고 2-3년이면 “고인물이다”라고 여겨지는 곳에 다니고 있다. 함께 일하는 팀 동료가 내일 당장 바뀔 수도, 3일 뒤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갑자기 쥐게 될 수도 있는 환경이 긴장되기도 하지만 내심 마음에 든다. 모두가 현재 상황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아서 더더욱 매 단계에 진심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변화’는 내게 긴장감과 안정감을 동시에 주는 애증의 존재다.
삶에 너무 중요한 부분이라 함부로 말을 못 꺼내겠는 단어들이 있다. 내겐 그 중 하나가 ‘변화’인데, 가장 상처받은 기억들과 가장 행복했던 기억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 무겁게 느껴지는 단어다. 어렸을 적부터 변화를 빼고선 설명이 어려운 성장 환경에서 자랐다. 각기 모종의 이유로 4살부터는 1-2년에 한 번씩 꼭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다녔다. 다닌 초등학교는 4곳, 중학교는 2곳, 고등학교 다닐동안 이사를 2번, 대학교 다닐동안은 이사를 4번. 오세아니아, 전라도, 수도권에서 생활하는 동안 너무나도 다른 세계들을 맛보는 행운을 누렸고, 그 대가로 한 세계에 서서히 스며들 때쯤이면 그 세계관을 벗어나 다른 세계에 나를 녹여내야 하는 고통에도 익숙해졌다. 이동이 잦은 성장배경이었기에 ‘고향’이나 ‘집’ 하면 바로 떠오르는 곳이 없다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대신 삶의 큰 변화들에 좀 의연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이를 한두살 먹을 때마다 생활의 변화가 늘 뒤따랐기에 변화와 성장은 늘 함께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교육을 한국의 경쟁사회에서 받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겠지만 새로운 걸 해봐야, 새로운 곳에 소속되어야, 기존과 다른 환경과 내 자신의 모습이어야만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변태 말고는 성장을 체감할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이상 일상에 큰 변화를 줄 필요가 없어진 대학교 시절에도, 스스로 일상 환경의 변화를 자꾸 만들었다. 이런저런 소속을 찾아다니면서. 강연기획 동아리, 사회공헌 활동, 학술지 번역, 데이터엔지니어링/코딩 공부, 환경 학회, 블록체인 학회, 앱 기획/운영 실무 등 그때마다 재밌어보이고 성장감을 느끼게 해줄 것들을 끝없이 쫓았다. 그 욕구를 끝까지 쫓아보고 느낀 두 가지. 첫 번째, ‘헤맨만큼 내 땅’이라지만 잘 갖춰진 근거지가 있을 때 더 즐겁고 전투적으로 땅을 넓혀갈 수 있다. 두 번째, 내 결정이 주변인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에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변화에 익숙한 내 기질과 성장욕을 성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성장감/변화욕에 중독되어있던 이 기간동안 “너는 참 입체적인 사람이구나”하며 나를 흥미롭게 봐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너 이런 면도 있었어?”하며 당황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함께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하며 내 변화무쌍함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겼다. 정말 내가 추구하는 변화와 성장은 어떤 건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2. 비가시적 성장
가장 강력하고 거의 유일했던 내적동력이었던 성장감/변화욕에 처음 회의감을 느꼈을 때 그 막막함의 크기를 잊지 못하겠다. “그 뒤에 뭔가가 있긴 할까”하는 생각과 함께 오랜 방황이 이어졌다. 나는 또 다시 다른 세계에 내 자신을 밀어넣어보는 것으로 고민을 이어갔고, 그러다가 만난 개발자들과 예술가들에게서 예고없이 큰 실마리를 얻게 됐다. 코딩의 ‘ㅋ’자도 모르던 내가 잠시 개발자 커리어까지 생각하게 되었던 데는 개발자 김씨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실력도 코칭도 너무 대단했지만 그걸 전부 떠나서 버그를 해결할 때의 집념이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 집념은, 수년간의 묵묵한 훈련과 무수한 삽질로 다져진 것이라 감히 흉내낼 수도 없는 독기 같은 거였다. 제주도에서 잠시 함께 살았던 그림 그리는 장씨에게서도 비슷한 기운을 느꼈다. 큰 삶의 굴곡들을 거치면서 내면을 수없이 망치질하며 단련해온 사람이다. 장씨의 생각, 글, 말, 그림은 늘 대담함과 위로를 품고 있어서, 예술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내가 이 사람의 창작물이라면 당장 달려가 감상하고 싶어졌다. 김씨와 장씨의 공통점은 수년간 겉으로 티나지 않는 고독의 시간을 거쳤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본인만의 아우라와 세상에 제공할 가치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존경스러웠다.
앞서 걸었던 선배들이 많고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는 길들은 대개 가시적인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다. 왜 유명한 등산로들에는 잘 포장된 계단길과 이정표들이 항상 있지 않은가. 반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수풀길이라면 그저 엉킨 잡초들을 파헤치고 한 발씩 딛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어야 계속 걸어갈 수 있다. 김씨와 장씨가 보여준 '고유한 아우라'는 이름없는 수풀길을 꾸준히 걷는 사람들에게서만 느껴지는 기운 같았다. 드디어 다음으로 갖고 싶고 쫓고 싶은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러 세계에서의 생존법을 익히느라 유니크함을 우려낼 겨를이 없었던 내겐 이제 그 타이밍이 온 것 같았다.
성장감/변화욕을 내려놓은 뒤로 쫓게된 건 고유함이었다. 이게 무슨 마이웨이 하겠다는 클리셰적인 결말이겠냐만, 모든 고민의 해답은 간단하고 그 간단한 것조차 머리로 수긍하는 것과 피부로 체감하여 삶에 적용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일 것이다. '내 인생에 어떤 변화를 줄지'가 아닌, 내 마음과 생각을 정돈하는 고민에 의식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어디까지가 고유한 내 생각이고, 어디서부터가 남의, 사회의, 시대의 암묵적 영향인지를 구분해보려 노력하면서, 또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떻게 마음 먹을지 정리해보면서. 사실 고유한 내 생각을 발라내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운 일이라 끝없이 즐거운 일이다. 그걸 반복하다보면 예상에 없던 일에까지 상상력이 닿게 되고 일상이 자연스레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더라. 굳이 변화나 성장을 생각하지 않는데도 하루하루가 나다운 행위와 마음으로 꽉 차서 충만해지는 거다. 내가 추구해야 할 변화는 어떤 외부적인 게 아니라, 내 생각과 마음을 더 건강하고 성숙하게 키워나가는 것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걸 지속하는 한 겉으로는 변한 게 하나 없어도 매일을 색다르게 보낼 수 있다.
3. 아무래도 변화를 좋아한다
변화 자체가 목적이었을 때는 자꾸만 불안감과 회의감이 들었지만, 내 고유함을 우려내는 걸 목적으로 삼으니 변화를 온전히 애정할 수 있게 됐다. 더 이상 물리적인 변화를 고집하진 않아도 내 상상력이 닿는 곳을 존중해주고 싶어서 여전히 변화에 대비한다. 지금의 환경에서 고유하게 살기만 해도 충분하지만 혹여 더 나답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방법과 장소를 알게 된다면 그땐 거침없이 향하고 싶으니까. 새로운 변화를 거리낌 없이 환영하고 즐길 대비를 해두려고 노력한다.
본능적으로 그 대비를 하고 있었던 걸까, 지금까지 해왔던 주요한 선택들은 늘 변화를 긍정하고 장려하는 곳에 나를 두는 결정들이었다. 전공으로 택한 국제학과 사회혁신학,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IT업계와 프로젝트 매니징은 모두 다른 결로 비슷한 메세지를 주입해준다. 세상엔 정답이 없다고, 그래서 우리 용감하게 변화하며 살자고 말해주는 것 같다. 국제학과는 세상은 너무나 넓고 한 지구 위에 무수한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사회혁신은 현재의 세상이 완벽하지 않아서 우리의 주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줬다. IT업계는 기술로 가능해진 최저 한계비용으로 고객에게만 존재하는 정답을 무수한 실험으로 찾아나가자고, 프로젝트 매니징은 모든 게 불확실한 속에서도 최선의 방향성을 제시해보자고 말했다. 탐험하듯 살고 싶게 만들어준 외침들이다.
좋은 선택이란 내가 계속 믿고 싶고 좋아하고 싶어하는 것들을 향유할 수 있는 곳에 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변화를 당연시 하고 변화를 잘 다루기를 요구받는 이 회사와 자리를 찾아 온 게 참 잘한 선택인 것 같다. 실질적으로 내 삶에 얼마나 큰 변화가 찾아올지, 또 얼마나 미동조차 없을지는 상관 없다. 변화란 녀석을 긍정하는 상태가 좋은 것이니 어떻게 되든 아무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