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일기
1. 취업한 소감
실제로 여러 번 비슷한 질문을 받았지만 제대로 답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주로 “좋긴 좋지만 그냥 그래”라는 무미건조한 말로 나름의 겸손을 표현해보곤 한다. 취업 이후에는 또 새로운 어려움과 고민들이 물 밀듯 들어오기에 마냥 설레지만은 않다는 게 아주 거짓말은 아니지만, 취준기와 다르게 마음 속 어디 한 구석이 든든해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나에게는 두둑한 월급이나, 전문성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타이틀이나, 마음 편히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안정된 자리가 생긴 건 아니다. 월급은 인턴생활 하던 때보다 살짝 오른 수준이고, 직무명을 있는 그대로 말해서는 열에 아홉이 되묻기 일쑤인 데다, 내일 당장 해고 통보를 받더라도 그리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든든한 구석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2. 취준 감옥
몇 달이 지나고 내 직무를 스스로 이해하기 시작할 즈음에, 그것의 정체가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취준기에 구직자를 괴롭히는 요소가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정직하고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성향 탓에, 내가 자소서와 면접에 쓰는 내용들은 모두 내 스스로 충분히 설득되고 정리된 것들이기를 고집했었다. 아무리 취업난의 심각성에 대한 뉴스와 자소서를 기계적으로 난사할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도 나를 파고드는 걸 멈추게 하는 건 없었다. 그 간의 경험, 내 성향, 자질, 가치관에 대해서 납득이 될 때까지 설명해야한다는 강박은 스스로 만든 감옥이었다. 점점 치열해지는 기업 채용 절차는 감옥 탈출을 더더욱 어렵게 했다.
기약 없는 감옥 생활동안 지금까지 해왔던 선택들과 그로부터 벌어진 일들을 계속해서 되짚어봤다. 취준생을 다른 말로 하면 자소설 작가. 본인 경험을 소재로 스토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게 취준생의 과업이라 받아들이며 여러가지 버전으로 자소서를 써내려가다가도, 그 과업과는 별개로 정말로 솔직한 설명을 스스로에게 요구하면서 내 자신을 배로 괴롭혔다. 그 고문 끝에 터져나온 건 “나는 사실 자주 직감을 따라 선택해왔다”는 외침이었다. 그러니까 학과든, 수업이든, 동아리든, 친구든, 그 어떤 대외활동이든, 우선적으로 느낌이 좋아서 선택한 거였다. 순수하게 궁금하고, 막연하게 즐거움이 예상되고, 왜인지 하면 좋을 것 같은 끌림에 반응한 것 뿐이었다. 간혹 이성이 시켜서 한 것들은 주로 목적이 달성되면 금방 나에게서 희미해졌으므로 결국 내게 중요하게 남은 것들은 직감에 솔직했던 선택들이었던 것이다. 설명을 요구하는 사회와 내 자신에 익숙해져 차마 잊고 있었다. 어른의 선택에는 늘 이유와 현실적인 계산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남에게도 어느정도 그럴싸하게 들려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마주하면서 셀프 감옥생활은 끝이 났다.
취업에도 직감을 써보자고 마음 먹었다. 뚜렷한 드림컴퍼니나 직무가 없어서 방황했는데, 그걸 정하는 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왜인지 호기심이 들고, 즐거울 것 같고, 입사 후가 더 잘 그려지는 공고들이라면 지금 당장 논리적인 설명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지원을 결심했다. 겉보기에 연결고리가 뚜렷해보이지 않아도 강한 직감에는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 나의 직감을 먼저 존중해주고, 내 직감을 회사관계자분들에게도 잘 전달한다는 마음으로 서류를 준비하니 더 이상 내가 픽션 작가처럼 느껴지지 않기 시작했다. 자연히 합격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입사 지원할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만큼 현재 너무나 만족스러운 회사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3. 직감을 다루는 일
나는 매일 새로운 영상 콘텐츠들을 보는 일을 한다. 영상들이 플랫폼 운영 정책에 맞는지 검수하고, 검수팀과 결과를 비교해가면서 정확한 검수가 이루어지도록 프로젝트를 관리한다. 결국 검수의 '정확도'를 높이는 게 일인데, 그러러면 정책이 잘 마련되어 있어야 하고 정책에 대한 검수팀의 높은 이해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매일 어떤 영상 콘텐츠가 나올지 모른다는 점이 여기에 엄청난 변수를 일으킨다. 콘텐츠 운빨이 적용되기 때문에 예측이 어려워진다.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어도, 기미가 느껴질 때부터 바로 대처해야 해요". 프로젝트를 인수인계 받은 한 달 뒤쯤인가, 갑자기 지표가 곤두박질 쳐서 당황하던 내게 선배동료가 해주신 말씀이다. 초반에 지표가 잘 나와서 기세등등하던 참이었는데, 단순히 가시적인 지표만을 믿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사실은 나도 정책에 빈틈이 있다는 것을, 검수팀과 더 의논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은 깔끔한 지표에 잠시 숨었었다. 그러면서 프로젝트가 잘 되어가고 있다고 흐뭇해했었다. 콘텐츠 운이 내 편이 아니게 되자 순식간에 들통나버린 것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어디에 있고, 얼마나 있고, 그 여파가 얼마나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수많은 지표가 늘 측정되고 있지만 그걸로 설명되지 않는 게 태반이다. 그래서 더더욱 내 직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일이다. 하루하루 쌓아가는 경험들로 리스크를 잘 감지하고 성실하게 액션을 취해야 하는 긴장감이 흐르는 곳이라 좋다. 어디에 보여지지 않더라도, 나만이 아는 작은 신호들에 집중하면서 내 안의 판단 기준을 정교하게 해나가야 함을 매번 상기시켜주는 이 일이 좋다.
4. 설명을 강요하지 않는 사람
취준기에 합격 수기를 수십 개 넘게 읽으면서 대개 참 깔끔하고 선형적인 여정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누구는 어떤 전공을 살려서 어디로 취직했고, 어느 기업에서 인턴 경험을 쌓아 어디로 취직했다는 수기를 보면 군더더기 없이 납득되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실제로 겪어보니 고민과 결정의 과정들이 그렇게 지저분할 수가 없었다. 사후에 잘 정돈해놓은 글이 잘 보이는 것 뿐이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일 수록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고 감히 설명할 수도 없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좋은 결정은 그 얽힌 덩어리 속에서 감지되는 무언의 신호로부터 나온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니 얼키설키 어려운 고민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논리의 잣대를 함부로 쓰지 않아야겠다.
설명을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은 어떤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게 아니다. 충분한 설득력과 설명력을 갖추되 필요할 때만 사용하고, 설명하려는 마음이 강력한 직감을 방해하게 놔두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한눈에 이해되는 매끈한 도형을 화려하게 여기지 않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신 내면의 소리에 충실하느라 수많은 굴곡을 그려온 사람들의 용기와 아름다움을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서로를 이해시키려는 세련된 설명보다 서로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주는 회포가 더 잘 들리는 사회를 소망하면서,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 함부로 설명을 강요하지 않겠다고 다시금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