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일기
1. 정의감이라는 그림자
"레룬님, 혹시 정의감 있는 편이세요?" 입사하고서 동료에게 이런 질문을 받게 될 줄 몰랐다. 입사 과정에서부터 일 잘하는 사람으로 페르소나를 단단히 하는 데에 온통 집중하느라 잠시 미뤄둔 마음이었다. 아무래도 일단 회사는 일에 대한 계약을 맺은 곳이고, 내 개인적인 소망을 이루고 말고는 그 다음 이야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 예상 밖의 질문을 받은 순간 어떤 재생버튼이 눌린듯 수많은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눈물나게 반가운 질문이었다.
내 17살부터 23살까지를 가장 잘 요약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정의감"을 말할 것이다. 굳이 이 단어를 의식하면서 지내온 건 아니지만 크고 작은 선택을 할 때마다 늘 그림자처럼 뒤에 있던 존재였다. 중학교 무렵 UN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세계평화란 단어를 마음 속에 품었고, 그렇게 국제고등학교에 이어 국제학부 전공을 선택하면서 스무살이 되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학기마다 다른 모양으로 지냈지만 결국 모두 이 마음을 이래저래 쓰는 일들이었다. 소외된 존재들에 눈길이 가고, 불합리한 구석의 옳고 그름을 파고들고 싶고, 사회문제에 공동체적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건 내가 어찌할 수 없이 드는 마음들이었다.
2. 이론과 실무
대학생이 되고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실무의 세계를 접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세계 곳곳에 어떤 구조적 문제들이 있고, 각종 국제기구는 어떤 의미와 역할을 가지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들은 어떻게 나뉘는가 하는 학문적 주제들을 신나게 탐구했다면, 실무를 접하고서는 완전히 다른 선상의 고민들이 시작되었다. 실효성이란 녀석이 마음에 자리를 잡으면서 고민의 난이도가 높아졌다.
학교 수업을 수강하는 한 편, 다른 한 편으로는 봉사단체 - 비영리단체 - 스타트업 활동에 점차 빠져들었다. 환경과 빈곤 문제 완화를 미션으로 두고 현실의 자원을 써서 어떤 목표를 달성해보자는 일들이었다. 캠페인을 열거나, 사업모델을 짜거나, 제품을 만들었고, 어느새 나는 결과와 실행 중심으로 사고하는 세계에 익숙해져있었다. 실무는 완벽에 가까운 최선을 고민하기보다 특정 상황에서 가능한 것을 해내는 게 중요한 곳이었다. 또, 가시적인 성과를 내면서 ROI를 따지는 게 당연한 세계였다. 그러다가 학교 수업으로 돌아가서 현실의 작동보다는 세상을 이해할 틀 자체를 설계하는 학계를 맛볼 때마다 급냉탕온탕에 번갈아 잠수하는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각기 다른 맛으로 맛있는 두 음식을 먹어보고서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국제학 전공생/학술지 단체원으로서의 아카데믹 자아와 비즈니스적 자아 사이의 대결이 대학생활 내내 팽팽하게 지속되었다.
여러 실무자와 연구자들을 가까이 만나뵈면서 약 2년 간 끈질기게 고민을 이어갔다. 알아갈수록 나에게 너무나 중요한 정의감은 아무래도 아카데믹한 사고에 더 가까운 듯 싶었다.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고, 더 일관되고 정당하게 돌아가는 구조를 고민하게 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비즈니스 세계에서 속도감 없는 이상주의로 이해되기 딱 좋았다. 제각기 다른 동력으로 움직이는 동료들과 합을 맞춰 일하려면 내 정의감은 감춰두고 실용적인 언어로 치환해야 하는 노력을 매일 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결국, 나는 실무 세계에서 맛본 "구체적인 변화"의 손맛을 잊지 못해 학교 졸업 후 취업길을 선택했다.
3. 실무에서의 정의감
사기업으로의 취업길을 걷겠다는 결정은 내 인생에서 스스로 한 가장 길고 어려운 결정이었다. 당시에는 마치 십 년 넘게 쌓아온 성을 내 손으로 부숴버린 것 같은 느낌에 정말 고통스러웠다. 나는 그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약속들을 덧댈 수밖에 없었다. 실무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입장해서도 정의감을 놓아버리지는 않겠다고 단단히 약속하면서, 아카데믹 자아와 원만한 합의를 보려고 노력했다.
첫 번째, 사회 구성원으로서 나를 자주 인식하자고 약속했다. 내가 매일 책상 앞에서 하는 일이 이 기업이라는, 산업이라는, 시대라는 공동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고 일하자고.
두 번째, 그 연결고리가 잘 그려지지 않는 길들은 가급적 거부하기로 약속했다. 내가 하는 일이 어떤 구조 안에서 어떤 변화를 만드는지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길이라면 다시 돌아봐야 할 것이다.
세 번째, 나만의 일은 늘 하나쯤 지속하기로 약속했다. 일 터에서 실용적 질서를 따르면서 배우고 익힌 것들을 내 안의 정의감과 연결된 일을 해나가면서 이 이상적인 마음의 현실적인 구현을 실험해나간다.
UN에서 세계평화를 외치겠다던 열일곱의 나는 일곱 해가 흐르고서 한 IT 플랫폼 회사 운영의 티끌만한 조각 하나를 맡게 되었다. 매일같이 책상 앞에서 수십 개의 영상을 보고 라벨링하는 일상을 지내면서, 나는 플랫폼에서 돌아가는 알고리즘의 퀄리티를, 그 알고리즘에 닿을 무수한 유저들의 정서와 무의식적인 생각을, 정보의 홍수 시대에서 양질의 정보를 걸러내야 할 책임감을 자주 상기한다. 형태적으로는 열일곱 당시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그림일지라도 사회에 선하고 큰 일을 하겠다는 마음은 그대로인 채로.
가끔은 조금 덜 심각하고 덜 진지하게 살아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꼭 고민하고 힘들어한 깊이에 비례하게 모든 게 이뤄지진 않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큰 일을 하겠다는 버거운 마음을 다뤄온 긴 시간은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란 걸 안다. 일을 하다보면 언제 또 번아웃을 겪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번아웃보다 더 무섭다는 브라운아웃에는 조금 더 자신이 있다. 목적의식을 잃고 내적 몰입이 어려워지면서 속수무책으로 공허함을 느끼게 되는 건, 앞으로도 내가 직업인으로서 가장 경계하는 일이 될 것이다.